내 잣대와 편견
'와장창!' 설거지를 한바탕 개운하게 하고 내가 좋아하는 글라스락을 정리하다가 가장 묵직한 것 하나를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떨어지면서 유리 용기의 귀퉁이가 조리대 모서리에 제대로 들어맞았는지 크고 작은 파편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너무 놀라서 놀랍지도 않았다. 나는 큰 일 앞에서 초연해지는 경향이 있다. 왜 놓쳤을까.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은 이런저런 구상에 마음이 빼앗겼는다는 거다. 덤덤히 유리조각을 치우고 있는데 발등이 시릿하다. 멀건 도화지 같은 발등에 빠알간 얇은 선이 2cm 정도 배어 오른다. 유리조각이 스쳐 피부가 조금 벌어졌다. 물로 헹구고 아는 대로 드레싱을 한 후 강아지가 다치지 못하게 3중, 4중 유리조각들을 치웠다.
"밥 먹자!"
다음 날, 식탁에 마주 앉은 남편이 내 발등에 붙은 커다란 밴드를 봤다. 다른 데서는 잘 안 그런 거 같은데 요상하게 남편 앞에서는 덜렁거리는 캐릭터가 되는 나다. 뭐 다친 건 좀 이례적이긴 해도 우리끼리는 곧잘 있어 왔던 (주로 나의) 사건 사고인지라 서로의 얼굴에 웃음 시그널을 보내며 '눈으로' 말했다. 발이 아픈 건 나니까, 아끼는 유리 용기가 깨져서 속상한 것도 나니까 이쯤에서 끝내도 다 알아먹는다고 나는 강한 신호를 쐈다. 밥을 먹기 전이라 전파가 너무 약했던 걸까?! 나는 결국 남편의 몇 마디를 들어야만 했다. “조심 좀 해. 안 다쳤으면 다행인데 그것도 아니고, 매번 이래. 어쩌고 저쩌고...”
여유로운 토요일이었다. 강아지 미용 예약이 오랜만에 잡혀 있었다. “보호자님 미용 끝났습니다. 데리러 와주세요." 전화를 끊고 나와 남편은 강아지를 모시러 출동했다. 말끔히 미용을 마친 강아지와 우리 부부는 주변 산책을 하기로 했고, 그러다 자연스레 애견 용품샵에 발길이 놓였다. 강아지 엄마인 나와 강아지 당사자 둘 다를 만족시키는 유기농 간식 한 봉지를 샀다.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 동안 우리 둘은 간식으로 행복한 시간을 즐겼다. 바로 그때, 그 모습을 본 남편에게 나는 또 한마디를 들어야만 했다. “그만 줘. 한 번씩만 줘야지, 간식 있을 때는 막 먹이고 없을 때는 안 주고.”
나는 슬슬 그의 말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 날 저녁이었다. 지금 아무리 눈을 감고 생각해봐도 무슨 일인 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한 사소한 일이었다. 분명한 것은 강아지에게 간식을 평소보다 많이 줬던 것 정도의 일이다. 남편은 내게 비슷한 뉘앙스로 한마디를 던졌다. 듣던 나는 마침내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고야 말았다. “알았어~ 잔소리 좀 그만해! 언제까지 할 거야." 분명히 웃으면서 툴툴댔다. 그렇지만 의사표현은 정확히 담긴 말이었다. 그때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난 그릇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남편은 내가 어떤 표정과 어떤 뉘앙스로 말을 전한 건지 디테일을 파악하지 못했나 보다. 왜냐하면 “근데 왜 짜증을 내.” 푹 내뱉는 한숨과 휙 싸늘하게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남편의 행동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곧바로 “짜증 낸 거 아닌데?”라고 덧붙였지만 남편은 뒷모습으로 말했다. “뭘 안내. 다 내놓고."
남편이 그럴 때 참 못마땅하다. 어떻게 저렇게 잘 삐질까? 유치하기 짝이 없다. 급기야 나는 이 말을 투척했다. “삐졌어? 돌프야, 아빠 삐졌다. 이리 나와. 혼자 있으라 그래.” 남편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 안 해도 될 말을 기어이 한다. 상대편이 들으라고 심어 놓은 심지를 놓칠 리 없는 남편이다. “삐진 게 아니라 화난 거니까 말 걸지 말고 조용히 있어."
‘삐지다'라는 표현이 화의 원인인 것을 나도, 그도 알고 있다. 우리는 이 실랑이의 방점을 찍을 주인공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한 마디씩 더 주고받고서야 침묵에 들어갔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빨래를 개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잘 삐져? 방으로 쪼르르 들어갈 만한 일이야?' 불만이 담긴 입으로 중얼거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할 일을 좀 하다 보니 불쾌한 기분이 차츰 누그러들었고 소중한 주말과 이 냉전의 불협화음이 서서히 느껴졌다. 나는 안방으로 살금살금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는 남편 등에 코알라처럼 매달려서 평소같이 지내자는 의미로 쫑알댔다. 그러나 내 기분과 달리 아직 그는 냉랭했다. “그냥 좀 가만히 두라고.” 나는 순식간에 생각이 바뀌었다. '와, 어마어마하게 쪼잔하네.' 얄미운 그의 심기를 약간 건드리는 말투로 "알았다. 알았어!"라고 말하며 방을 나왔다.
평소에 이런 일이 생기고 각자의 시간을 가질 때 보통 나는 이쯤의 사유를 한다. ‘본인도 기분 나쁜 포인트가 있으니 저러겠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냉전이 별로기는 해도 쪼잔하다, 삐진다, 유치하다는 사고관이 참 내 기준이다. 방에 들어가 남편 등에 매달려 화해를 청했던 진짜 내 마음의 절반은 남은 주말을 같이 해피하게 보내고 싶은 것과 나머지 절반은 그만 좀 유치하게 굴고 이쯤에서 풀어라. 툭툭 건드리는 심산이었다.
우리는 대충 안다. 상대가 나에게 어떤 의도와 감정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삐졌다고 생각하는 건 순전히 내 판단이 아닌가. 그는 삐진 것도, 유치한 것도, 쪼잔한 것도 아니다. 그냥 '기분이 좋지 않은' 거다. 삐지다 라는 어휘를 선택한 주체조차도 나다. 내 사고방식에서 골라 내린 정의에 불과하지 않나. 그가 유치한 걸 했다고 생각하는 내 편견을 보고 나니까 이쯤에서 풀자느니, 뭐 하고 있냐느니 추근덕 대는 내가 내 생각밖에 할 줄 모르고 있는 게 보였다. 한쪽만 생각하고 다른 쪽은 생각하지 못하는 게 편견이기에 나는 내 시각만을 투영해서 편견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오늘 일 뿐 아니라 정말로 뭐가 쌓여있는데 말을 않고 혼자서 정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나는 안방 옷장에 볼일을 보러 들어가서야 책을 읽고 있는 그에게 “기분 좀 괜찮아졌어?” 물었다. 장난기를 싹 빼고, 내 고집을 거두고 진심이지만 가볍게 건넸다. 남편이 그 말투를 알아채기도 했겠지만 이미 시간의 덕을 봤을 터다. 그도 미안한 듯 미소가 스민 얼굴로 “그래"라는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작은 방에서 주중에 못한 맥북 하드디스크 정리를 하며 2년 전의 홍콩 여행 사진을 봤다. 나는 거실에서 최애 프로그램 아는 형님을 보며 강아지랑 같이 배꼽을 잡고 뒹굴었다. 따로 또 같이의 평화로운 주말 저녁이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