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사랑 연습

그렇게 안살아와서 말이지

by 토희

물이 점점 불어나면 언젠가 밖으로 넘쳐흐르듯이 나도 그렇게 되길 연습한다. 스님을 비롯해 나 아닌 누군가의 도움 덕에 배운 이 평안이 결국은 세상에 쓰이는 모습이길 바란다. 세상 덕분에 얻은 이 마음이 무한으로 가치 있어질 모습은 아무리 봐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쓰이는 것이다. 봉사를 실현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고 멋지다. 그러나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길 꿈꾼다. 꿈꾸는 내가 현 지점에서 만나는 건 한 없이 귀여운 내 마음 그릇이다. 어찌나 작고 좁은지 뭐 몇 개만 품을라 치면 비좁다고 야단이다.


하루에 소액씩 모은 돈을 100일에 한 번 남을 돕는 곳으로 보낸다. 현재 수입이 남편에 비해 적은 내 권유로 우리는 각자 버는 돈을 각자 관리하기로 했지만 (번 만큼만 쓰자) 한 집 살림일 때에도 남편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내 용돈으로 하려 했다. 나눔에 대한 견해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단체에 송금을 할 때는 메모장 속 위시리스트에 대한 미련 때문에 '이 돈 이면...?' 하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다. 보내기 버튼을 누를 때면 나눔 자체가 딴 세상 사람들, 특정 사람이 하는 행동 같기도 했다.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씩 마음을 내다보니 슬금슬금 수월해졌고 보내던 곳이 아니라도 제법 신경을 쓰게 된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 칸에 붙은 가슴이 미어지는 광고나 TV 캠페인 속 병든 자연을 보면 금액 상정으로 잠시 짱구를 굴려보긴 해도 결국 전화번호를 누르게 된다. 글 첫 줄에 나눔을 연습한다고 표현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냥 있어선 움직이지 않던 행동이 연습을 하다 보면 되는 모양새로 바뀌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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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중요한 가치가 달라 어렵게 느끼는 대상도 다를 것이다. 연습을 하다보니 내게 금전을 나누는 건 '그나마' 수월한 나눔이었다. 그보다도 주변에서 고충을 털어놓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간혹 혼란스러웠다. 특히 아끼는 사람일수록 그랬다. 상대의 마음이 편해지도록 잘 돕고 싶은데 선을 넘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을 어떤 식으로 들어주는 게 알맞은 걸까 지혜가 딸리기도 한다. 때때로 상대에게는 도움이 안 되고 있는 것 같은데 돕겠다는 내 욕심인가 하는 복잡함도 들고, 극복한 내 경험을 그를 위해 내놓는 게 아닌 자랑하고 싶은 푼수끼로 깜빡 발현되기도 한다.


종종 마음을 꺼림칙하게 만드는 또 다른 주범은 나의 시간과 마음이다. 타인의 요청에 다양한 모습으로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나는 돕고자 마음을 냈다면 거기에 내 시간과 마음을 붓고, 가능한 한 정성을 담는다. 마음이 이쯤에서 마무리되면 돕는 것에 어려움도 없고 내 마음도 참 보람 있을 터인데 현실은 종내 이런 것을 기대한다.


'상황이 나아진 상대의 모습을 보고 싶다.' 혹은 '이전보다는 수월해진 건지 알고 싶다.' 이 두 가지가 충족된 게 맞는지 아리까리 의구심이 들 때면 내가 헛짓을 했나? 준 마음에 본전이 생각난다. 이 시간에 내 일을 했으면? 내가 들인 시간에 수지타산을 셈하게 된다. 나눔이 어려운 이유는 대부분 이쯤에서 걸려 자빠져서다. 나는 도대체 '내 시간'과 '내 마음'이라는 것에 얼마나 대단한 관념을 씌어놓고 살기에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동동 거리는가~' 극복하고 싶은 수행 과제다. 그리고 자주 발생하는 마음은 아니지만 그도 저도 아닐 때 최악은 이것이다. '삐.지.기.' 삐질 때를 보면 어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세상에 진짜 어른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거다.


예전엔 돕고 나서 칭찬의 유무에 마음이 들쑥날쑥했다면 그것에는 제법 자유로워진 듯하다. 경험을 해보니 나눈 것에 돌아옴을 바라지 않는 게 좋겠다. 좋은 마음으로 도왔다 하더라도 바라는 마음은 늘 뒤끝을 꿍하게 만든다. 그래서 도운 것을 헌신처럼 버리는 연습 중이고 연습이란 하면 할수록 조금씩 쉬워진다.


내게 연습이 덜 필요한 봉사는 유기견 보호소 일이다. 나누면 마음이 뿌듯하다는 감정을 유독 그곳에서 돌아오면 느낀다. 나의 종족에 의해 아픔을 겪는 아이들이 걸려서인지 마음의 숙제를 지워나가는 기분이다. 유기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면 가장 좋겠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도 한다. 1시간을 도우면 그만큼 뭐라도 도움이 되리라는 소망이 두렵던 마음을 가볍게 움직이게 한다. 일을 하는 중에는 그들에 대한 미안함이 잊히고 집에 와서는 따뜻함으로 마음이 찬다.


그러고 보면 나눔 역시 '지금 여기에 깨어 있는 마음' 만큼이나 내 삶을 행복으로 가꾸는 힘찬 도돌이표다. 위에서 말한 어려운 나눔도 결국 이런 마음 때문일 꺼란 기대를 품으며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연습한다. 세상 일이 전부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려울 게 없다는 스님 말씀이 참 마음에 남는다. 나와 너를 명확하게 구분 짓고 네 것 내 것을 칼 같이 자를 때는 아무리 행복한 들 그 크기에 한계가 느껴졌다. 그래서 자꾸만 뭘 더 찾게 되고 쥐고 싶었던 걸까. 아무런 대가 없이 줄 때의 기쁨이 있다. 준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내가 받은 것을 갚는 것일 거다. 서툴지만 조금씩, 꾸준히 이 길을 걸어가 본다. 사랑을 자유롭게 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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