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탄력성을 탑재한 삶
인생은 꽃길만 걷는 것이 아니라, 꽃 같은 순간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무너지는 상황은 계속해서 찾아오는 것 같다.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8화에서는 울면서 아팠던 과거의 마음을 그려내는 주인공 단이의 대사가 나온다.
나는 가끔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그 때의 내가 너무 불쌍해.
그랬던 내가 너무 안 됐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단이여서
펑펑 울 줄 아는 단이여서
그렇게 힘든 일을 겪고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 험난한 세상에서 꼭 키워야 할 능력은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토익이나 영어스피킹 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 하나는 무너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회복탄력성이란 어떠한 형태로든 예측하지 못했던 재해가 닥칠 경우에도 그에 맞게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힘든 일을 만나는데, 이 때 중요한 개인차는 ‘어떻게 다시 평상심으로 돌아올 수 있는가’에서 드러난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의 경우, 힘든 일을 겪고 그에 따라 힘든 감정을 느끼는 것은 똑같지만, 그 힘든 일을 겪고 난 이후에서 차이가 난다. 힘들어도 다시 복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건강한 삶을 살고 싶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무너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너져도 다시 일어날 힘을 기르는 것에 집중해보는 것이다.
여성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셰릴 샌드버그가 자신의 역경을 회복해나가는 스토리를 담은 책 <옵션 B>에서는 회복탄력성이란 타고난 성격 특성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구축해야 하는 자질이라는 점을 명확히 짚으면서, 아동기부터 개발했으면 좋았을 네 가지 핵심 신념에 대한 심리학적 개념을 소개했다.
- 자신의 삶에 대해 통제감을 갖는다.
- 실패에서 배울 수 있다.
- 자신은 인간 존재로서 중요하다.
- 자신에게는 의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진정한 강점이 있다.
우리는 위의 네 가지 신념을 배우지 못했다.
- 내 삶은 내가 자유롭게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 실패해도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게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 나는 아무 이유가 없어도 존재만으로 이미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 나는 의미 있는 강점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 네 가지는 그냥 외워도 좋겠다. 이건 이미 많은 심리학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밝혀진 내용이다. 이 신념을 어릴 때부터 배우지 못했기에 아무리 좋은 말 같아도 의심하게 된다. 의심하는 데 내 인생을 더 낭비할 순 없다. 이 네 가지를 지금이라도 획득한다면 내 삶은 견고해질 수가 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작업은 이렇게 나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일이다.
‘아기처럼 굴지 마’
‘아기처럼 굴면 안 돼’
이런 말을 듣고 자랐다면 부모님에게 인정받는 행동을 하기 위해 빨리 성숙하게 되지만 철저하게 혼자 버려진 채 자랐기 때문에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만다.
<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 다미 샤르프>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느낀다. 대놓고 ‘아기처럼 굴지 마’라고 부모님이 얘기한 적은 없지만, 나는 그냥 분위기 상 ‘아기처럼 굴면 안 될 것 같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첫째 딸인 나는 태어난 지 2년도 안 된 시점에 연년생 둘째 여동생이 태어나는 걸 목격했고, 부모님 등에 업혀있어야 할 때 혼자서 기고 혼자서 걸어 다녔다고 한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늘 미안했다고 내가 20대가 다 되었을 때 말해주었지만, 그 말을 그 시절의 나는 듣지 못한 채 자라버렸기에, 어린 시절의 나는 늘 혼자라고 느꼈다.
‘그 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여동생을 쳐다봤을까?’
‘그 때 내가 어떤 마음으로 부모님을 바라봤을까?’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은 나지 않지만, 느낌적으로는 기억이 날 것 같다.
‘그 때의 나는 더 오래 업혀있고 싶지 않았을까?’
‘더 애처럼 굴고 싶지 않았을까?’
속마음은 그랬을 것 같다. 그렇게 마음으로만 징징거리고 싶었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게 참 어려웠다. 습관적으로 나 혼자 참 많은 것을 책임지려 했다. 내가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버렸다.
힘들면 도움을 요청하는 게 자연스럽다.
나는 도움은 절대로 받으면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20대 내내 했다. 내가 갖고 있던 수많은 절대명제(Must, Should) 중에 하나였다. 그렇게 모든 문제는 내가 혼자서 완벽하게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하며 나를 옥죄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스스로 고립시켰다. 그러나 이젠 그렇게 살지 않는다. 이제는 도움 받는 것, 도움 주는 것 모두 다 필요한 상황에 적절하게 요청하고 요청받고 그렇게 살면 된다고 느낀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내가 자존심 상해할 일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라는 걸 이젠 안다. 내가 모든 문제를 다 혼자서 처리할 필요도 없다.
작년 겨울, 방송인 허지웅의 암투병 소식을 기사를 통해 보았다. 그는 이렇게 남겼다.
“지난주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함께 버티어 나가자'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삶이란 버티어 내는 것 외에는 도무지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마음속에 끝까지 지키고 싶은 문장 하나씩을 담고, 함께 버티어 끝까지 살아냅시다. 이길게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6개월 전, 암진단을 받았던 내가 떠올랐다.
살면서 암에 걸릴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나
왠지 피곤한 것 같은데, 그냥 일이 많아서 그런 거겠지...그냥 넘겼던 나
그러다 암세포가 가득한 MRI사진을 보고 충격 받았던 나
암처럼 무시무시한 사건이 찾아오면 더더욱 감사하지 않으면 별 도리가 없다. 살고 싶기에 감사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역경이 찾아왔을 때, 그 즉시 감사한 마음을 갖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현실 이탈을 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그 마음이 당연하다.
너무 무서워서
믿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
슬퍼하고 싶지 않아도 슬픈 감정이 들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에 우리는 또 괜찮아질 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역경에도 감사할 포인트를 찾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안의 탄력성은 꺼내 쓰면 쓸수록 우리가 이 위기에서 탄력적으로 튀어 올라 결국에는 극복해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우리 안에는 긍정적 측면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 힘을 자주 꺼내 써보자. 그런 우리가 될 수가 있다. 어떤 역경이 찾아와도 우린 결국에 다시 웃을 수가 있다.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작업을 하다보면 지금의 내가 갖고 있는 하나하나에 대해 더 충실히 느끼고 감사할 수 있는 내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결국 ‘어떠한 역경이 와도 나는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자기개념을 확보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세상에 무서울 일이 별로 없어진다.
살면서 힘든 일은 또 올 걸 안다. 그렇다 하더라도 수많은 기쁨들은 존재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는 나라는 걸 이젠 알아서, 오늘의 나는 오늘을 충분히 살아가는데 집중할 수가 있다. 그것만이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서. 그러니 우리, 1cm정도만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할 때 내가 필요로 하는 만큼 최선을 다해 행복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기르면 좋겠다. 소확행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가끔만 숨 쉬고 가끔만 자유를 허용하면서 눈치 보며 사는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한 순간에 자유를 선택할 수 있는 나로 살면 좋겠다.
몽실몽실 구름, 꼬소한 라떼, 예쁜 꽃, 시원한 바람, 편안한 음악, 그 무엇이든 좋다. 내 영혼이 기쁘다면 그 기쁨을 맘껏 누리면 좋겠다. 매일 그런 시간을 나에게 주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그렇게 죽는 날까지 조금씩 더 성숙해지며, 조금씩 더 편안해지며 점점 더 살만한 삶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난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잘하지 못하는 인간은 쓸모없다고 자책하고 열등감에 빠져 나를 잃어버리고 살기에는 우리 삶이 너무나도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