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변화하기로 선택한 이유
내 안에도 크고 작은 상처들이 많이 있었다. 그 상처가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보기 두려울 정도로 회피하며 지냈던 시간들이 많았다. 무서운 걸 피하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이라서. 그런데 점점 그런 회피라는 방어기제가 나에게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들이 많아지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변해야했다. 변화나 성장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생존이 목적이었다.
‘이대로 살면 너무 괴로워서 죽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살다보면 버티지 못하겠다.’
그런 생각이 많아지는 시점이 왔다. 그래서 나는 변하기로 선택했다. 더 이상 회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는 나의 방어기제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누구나 고통에 대처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를 갖고 살아온다. 나를 포함하여,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갖고 있던 가장 흔한 방어기제는 ‘회피’였다.
‘보기 싫은 건 안 보고 외면하기’
방어기제는 어린 시절부터 내 안에 자리 잡기 시작해서 어른이 되어서도 자동적으로 힘든 순간에 작동해버린다.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전략으로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쌓여서, 고통의 순간을 안 볼 수 있게 도와주었던 회피가 습관이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 오면 회피만으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 내가 너무 회피만 하는구나, 알아차리는 순간이 온다. 그 타이밍에 잠시 멈춰서 생각해보면 좋겠다.
나는 앞으로도 회피하며 살 것인가?
나이와 몸만 어른이 된 채, 내 안의 아이가 여전히 나를 지휘하는 상태로 살아가는 삶은 고통스럽다. 내가 바라는 그 다음으로 나아가는 데 내 발목을 잡는다. 문제는 그대로 있고 해결은 되지 않는다. 술과 음식으로 도망가도 그 때 뿐이다. 결국 내 몸에 해로운 행동의 결과만 흔적으로 남는다.
삶의 어느 시점에서 나의 방어기제를 업그레이드 해 줄 때가 찾아온다. 그 타이밍을 포착했다면, 이제부터 나는 안 하고 싶은 행동, 그동안 피하고 싶었던 행동을 하나씩 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근본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어린 시절부터 사용해 온 ‘미성숙한 방어기제’인 회피는 불편한 문제 상황을 가리기에 최적이라, 그냥 두면 50대가 되어도 60대가 되어도 그대로 남아있다. 계속해서 불편한 상황에 회피 기제만 사용하다보면 내가 직면해야 할 일에 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게 되며, 나는 늘 하던 대로 늘 살던 대로 살게 되면서 미성숙한 성격으로 고착(fixed)된다.
내가 원하는 삶은 이런 모습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좀 더 편안하고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다행인 사실은 사람의 성격은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 마음 속에 내가 나를 돕고 싶은 마음이 존재한다면 변화는 가능하다. 누구에게나 트라우마는 존재한다. 스트레스 사건에서 우리는 다음의 반응 중에 선택한다.
freeze vs. flight vs. fight
(얼어붙기) vs. (도망가기) vs. (싸우기)
트라우마 반응도 극심한 스트레스 사건으로 정의되는데, 만약 어떤 특정 사건이 내 안에 트라우마로 남아있다면 나는 그 때 freeze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젠 fight 반응도 만들 수가 있다. 공격받으면 싸우기를 선택할 수가 있다. 너무 억누르고 너무 참지 않는 삶을 내가 살기로 선택한다면 나는 변화할 수 있다.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원천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이다. 우리가 하는 경험의 모든 측면을 정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느끼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 결코 나아질 수 없다. 자기 몸의 현재 상태를 본능적인 욕구 측면까지 모조리 인정할 수 있을 때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다.
<몸은 기억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
미디어에서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남발한다. 신경정신과에서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라는 라벨링(진단명)을 갖다 붙이고 약 처방을 남용한다. 그런데 이건 트라우마로부터 고통 받고 있는 당사자를 회복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아닌 수동적인 존재인 ‘환자’로 만드는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약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해줄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우울증도 공황장애에 쓰이는 약도 마찬가지다. 약에게 나의 전부를 맡긴다면 나는 나를 괴롭히는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나는 나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내가 보고 싶지 않아왔던 것을 보고자 한다면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시간들이 진짜 나를 구할 것이라는 점을 꼭 말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건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기’이다. 회피라는 방어기제도 나 자신을 속이는 데 기여해왔다.
‘없는 걸로 치자’
사실은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을, 내가 보기 싫다고, 두렵다고 ‘없는 셈 친 것’이라는 점부터 인식하고 시작하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 질 것이다. 그렇지만 보기 싫었던 그 마음을 부정하거나 혼내진 말자. 그 때는 그럴만해서 회피했던 것이라는 점을 꼭 알아주고 가면 좋겠다. 그만큼 무서웠던 내 마음을 내가 알아주지 않으면 누가 알아주겠는가. 그러니 나는 지금까지 무서워서 회피했구나, 그렇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무력하지 않은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걸 인식해보면 좋겠다. 나에겐 그럴 힘이 있다.
“심장이 아파요.”
“위가 자꾸 뒤집어져요.”
“두통을 달고 살아요.”
심리상담을 하면서 이런 말을 참 많이 듣는다. 이런 상태로 꽤 오랫동안 20년, 30년을 살아온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만약에 당신도 이런 신체증상을 달고 산다면, 이건 나의 몸이 마음과 소통하고 싶다는 신호로 해석해보면 좋겠다. 선천적으로 심장이나 위장이 약한 것이 아니라면, 이런 증상은 내가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는 감정을 신체감각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니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다. 미완된 스트레스 사건(크고 작은 트라우마)이 해결되길 바라고 있는 내 몸의 신호라고 해석하고, 이제는 만성스트레스로 남아있는 내 안의 그것을 바라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면 좋겠다.
트라우마는 내 탓이 아니다.
내가 못나서 그런 일이 생긴 게 아니며
내가 외상 자체가 아니고
외상은 나의 일부다.
무력했던 나를 그대로 방치한 사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판이다. 내가 지금까지 생존해냈다는 사실이 나는 용감한 사람이라는 반증이다. 나는 이제 내 삶을 통제할 수 있으며, 이제는 내가 침묵해왔던 것을 깨뜨려 볼 힘도 키울 수가 있다. 내가 나를 위한 공간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다.
회피나 차단, 부정, 억압 등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고립을 유지시키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효과가 없다. 오히려 독이 된다. 지금까지 만들어오고 유지해 온 방어기제를 업그레이드하는 일은 한 순간에 되는 일도 아니며, 쉽지도 않다. 지금까지 관성으로 익숙해진 대처방식을 바꾸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더 성숙해지고 싶기에 변화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우선 내가 트라우마로 여기고 있는 그 일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일부터 시작해보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씩 내가 새로운 방어기제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커져간다면 조심스럽게 그 일을 있는 그대로 직면해보는 일, 그 누구도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안전하게 경험해보면 좋겠다. 내가 믿는 누군가와 이야기해보거나, 말하기가 두렵다면 글로 내 마음을 풀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렇게 다시 현실에서 진짜 자기로 살아가기로 스스로 선택하는 일을 해보면 좋겠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꾸준한 연습이며 훈습(working through)이다. 멀리 보면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