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의 기분, 감정, 바람,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안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상대방과 대화할 때 그 사람의 비언어적 신호(눈빛, 표정, 제스처 등)이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그 사람의 상태를 살피는 게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다면, 그리고 그 상태에 따라 내 행동을 맞추는 데 익숙해져 있다면 자신이 타인을 정확하게 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생각해보면 좋겠다.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상태를 온전히 다 알 수 있겠는가. 오류의 여지는 언제나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정확히 타인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피곤해진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인하여 타인의 진짜 마음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내가 해석한 바를 믿게 되고 이는 곧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방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내가 다 안다면,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없게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놓고, 나는 그 형상에 맞게 행동하고 생각하고 대응한다. 진짜 그 사람의 실체보다는, 허구의 존재가 탄생하는 것이다. 가짜 존재를 만들어 놓고 나는 그 사람을 잘 안다고 착각한다. 이미 너무 많은 오류가 존재하고 있는 상태에서 관계가 이어지는 것이다. 그 관계가 나에게 이로울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진다. 그런 와중에 그 사람으로부터 평가나 비난을 듣는다면? 그 상황에서 받아치지 못하고 자책하는 나는 또 셀프킬링하는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눈치 보는 나에게 필요한 건 대인민감성 조절장치 만들기
대인민감성: 타인의 욕구와 감정을 민감하게 알아채서 파악하는 정도
눈치 보지 않는 삶은 가능하다. 즉, 타인에게 민감하게 안테나를 세우는 나를 조절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대인민감성의 조절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대인민감성을 조절하게 되면, 내가 필요한 순간에만 대인민감성을 꺼내 쓸 수 있게 된다. 필요하지 않은 순간에 무작위로 켜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의 누수를 막을 수 있게 된다. 대인민감성이 너무 높아(너무 눈치를 자주 보느라) 피곤하다면, 대인민감성의 조절장치를 만들기 위해서 다음의 연습을 해볼 수 있다.
1) 일단 내가 대인민감성을 풀가동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1-1) 내가 원하는 것이 사람과의 친밀함인가?
(다시 말해, 그 사람과 친밀함을 주고받고 싶어서 대인민감성을 풀가동하는가?)
- 이 경우에는 내가 유전적으로 친밀함을 원하는 정도가 높게 타고났을 수 있다. 일단 타고난 건 바꾸기 매우 어렵다는 점을 인지하고 시작해보자.
- 그리고 생각해보자. 내가 현재 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이 그 사람과의 친밀감 유지에 도움이 되고 있는 측면과 도움이 되지 않는 측면은 무엇인지 구분해보자.
도움이 되는 측면은 살려두면 된다. 그러나 도움이 되지 않는 측면은 내가 원하는 목표(친밀감) 달성과도 연관이 없으며, 나를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그 측면을 줄여나가도 된다는 의미다. 일상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 나도 모르게 나타날 때, 그 행동을 알아차려 멈추는 연습을 해보자.
1-2) 내가 원하는 것이 친밀함이 아니라, 그 사람의 좋은 평가인가?
(다시 말해, 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혹은 비난받기 싫어서 대인민감성을 풀가동하는가?)
- 이 경우에는 내가 후천적으로 타인의 평가에 민감해진 면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을 수 있다. 타고난 건 바꾸기가 매우 어렵지만, 후천적으로 학습한 내용은 훨씬 바꾸기가 쉽다. 이 부분이야 말로 내가 개발해낼 수 있는 측면이 크다.
- 생각해보자. 내가 현재 그 사람의 눈치를 봄으로써 그 사람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 측면과 도움이 되지 않는 측면은 무엇인지 구분해보자. 조금 더 장기적인 측면에 집중해서 생각해보자.
나는 인정을 바라고 있지만, 사실 더 큰 맥락에서 장기적으로 보면, 나는 인간으로서 사는데 필요한 유능감을 획득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성과를 내고 싶은 것이다. 그 사람에게 인정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만 살려두자. 그러나 도움이 되지 않는 측면은 내가 원하는 목표(성과) 달성과도 연관이 없으며, 나를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그 측면을 줄여나가도 된다는 의미다. 일상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 나도 모르게 나타날 때, 그 행동을 알아차려 멈추는 연습을 시작해보자.
내가 ‘눈치보기’를 그만두면, 단기적으로는 나를 못나게 보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순간적으로는 내가 어느 집단에서 찍힐 수도 있다. 쟤는 왜 저러냐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진짜 나로 사는 삶을 선택하는 게 더 가치 있지 않을까? 순간적으로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봐 늘 주눅 들고 눈치 보며 수동적으로 사는 삶이 아닌, 보다 주체적으로 내가 원하는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삶. 그런 삶을 만드는 것이 더 가치있지 않을까.
더 편안하게 성과를 내며 살고 싶은 나에게 필요한 건 ‘사고 능력’의 강화, 즉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다. 저 사람이 하는 말이 다 맞을 수도 없고, 나랑 다 같을 수도 없다. 그런데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나는 나의 생각을 들어볼 틈조차 허용하지 않게 된다. 그냥 그렇구나, 특히 권위자가 말한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나의 주장은 모습을 감춘다. 몰라도 ‘알았습니다’하고 넘어가며, 혼자 끙끙 앓게 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가 원하는 결과물은 더 못 내도록 가로막는 셈이다.
누가 나에게 어떤 말을 했다면, 특히 어떤 말이 나에게 상처가 된다면 ‘이게 말이 되는가?’ 검토해보는 습관을 키우면 좋겠다. 객관적으로 말이 되는지? 사실과 정보에 기반한 말인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사가 나에게 비난의 말을 했다고 치자.
너 왜 그렇게 일하냐?
이 때 자동적으로 움츠러들 수 있다. 주눅들 수 있다. 내가 뭘 잘못했구나 싶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때 우리가 잠시 멈춰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여기서 그렇게 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문제가 되지? 그 문제는 왜 발생한 거지? 지금 상황에서 뭘 하면 이 문제가 수습되지?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닐 때 가장 신선했던 단어는 바로 Critical Thinking(비판적 사고)이었다. 캐나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수가 하는 말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생각해봄으로써 나의 생각을 확립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나? 근거는 무엇이지? 등등을 내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아웃풋을 내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훈련받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국민이 익숙한 방식은 4지선다형, 주입식 교육이다. 4지선다형, 5지선다형 암기형 문제에는 왜 답을 골랐는지 적는 칸이 없다. 찍어서 맞추든, 알아서 맞추든, 맞추기만 하면 점수는 같다. 옳은 답을 선별해 내면 문제해결은 끝이 난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해결은 이러한 프로토콜(protocol)과는 매우 다르다. 특히 우리의 마음이 관련된 문제는 더더욱 정답을 골라 낼 수가 없다.
나 또한 이 세상에서 최초로 경험했던 교육은 주입식 교육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모든 현상을 비판적으로 보라는 말은 그 동안 내가 갖고 있던 프레임을 깨라는 말과도 같았다. 처음에는 당연히 쉽지 않았다. 내 생각을 내가 만들어내는 것, 그것을 꺼내도 되는 것, 그런 문화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캐나다에서는 4개 중에 하나의 답이 있는 형태의 시험 보다는, 주관식으로 나의 생각을 기술하는 시험이 주를 이뤘다. 대학교수가 제시한 의견에 대해 학생은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말하도록 훈련받았다. 사람은 모두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 존중되었다. 그래서 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사실로 존중받았다.
특히 내가 전공으로 선택한 심리학에서는 Critical Thinking을 더 강조하였다. 사회과학 방법론을 토대로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인 심리학에서는 늘 오류의 가능성을 인지하도록 훈련받았다. 아무리 저명한 교수가 발표한 논문이라도 critic할 포인트를 찾아 나의 생각을 생산하는 훈련이 중시되었다. 틀릴 수 있어야 과학이다. 절대 틀릴 수 없는 것은 그 자체로서 과학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틀릴 수 있고, 틀리는 것은 당연하며, 누군가가 보완해서 develop해나가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접근, 우리의 마음에도 적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말해왔던 것, 특히 절대권력자가 말했던 것, 그리고 현재 내가 눈치보는 누군가가 말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움츠려드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critic해보는 것이다. critically think하는 프로세스를 장착하는데 시간을 들인다면,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비판적사고력은 후천적으로 충분히 개발가능한 영역이다.
비판적 사고패턴 만들기 프로세스
비판적 사고패턴 만들기 프로세스
이렇게 문제해결지향적으로 상황을 다각적으로 분석해서, 근본원인을 찾아 문제해결에 집중해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다음과 같이 생각하다보면 무력감, 무능감에 빠지게 된다.
‘아 내가 일 못 하는 걸 들켰구나.’
‘나 찍혔구나.’
‘나 무능한 사람으로 보겠지.’
절대 내가 모르는 걸 말할 순 없다고 생각하며, 질문하는 건 내가 모르는 걸 들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배울 수 있는 기회조차 버리게 된다. 내가 물어봤던 걸 또 물어보면 상사는 나를 무능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잘 모르지만 모르는 채 혼자 끙끙 앓게 된다. 그렇게 문제가 있어도 혼자 끙끙 앓고, 구멍을 그대로 둔다면 그 문제는 나중에 더 큰 구멍으로 발견될 리스크를 그대로 두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 능력 있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진짜 능력 있는 사람으로 발전하고 싶다면, 모르는 건 물어보는 게 맞다.
진짜 나로 살기 위한 새로운 행동을 시작해보자. 기존의 비효과적이며 셀프킬링했던 프로세스를 끊어내고, 나에게 이로운, 더 건강한 프로세스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더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 연습하면 가능하다.
비판적 사고패턴 만들기 프로세스의 적용 예시
비판적 사고패턴 만들기 프로세스의 적용 예시
비판적으로 생각하면 절대명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힘이 생긴다. 즉, 그 동안 나를 장악해왔던 Must, Should로 점철된 수많은 절대명제들 검증해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그들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는 의미다. 말이 안 되는 소리까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내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나와 그래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가 충돌한다. 비판적 사고력은 나를 지지하는 생각이 힘을 발휘하기 위한 무기다. 우리 이제 무례함을 무례함으로 받아칠 수 있는 삶을 살면 좋겠다.
#알아차림 #멈춤 #비판적생각 #새로운행동
제 글을 읽어주시고, 라이크 눌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편하게 댓글이나 편한 방법으로 의견 남겨주세요. 도움이 되는 글로 만들어보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