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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지 Mar 11. 2023

사랑하는 메리골드에게


연재를 기획할 때부터 언젠가 꼭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글로 옮길 용기가 나지 않아 계속 미루어왔습니다. 제 마음 속에서 후회와 상실로 얼룩져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시리고 아픈 이야기입니다. 그 아이와 처음 만난 건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진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얼마간의 모금 활동을 통해 모은 돈으로 책과 학용품을 구해 몇몇 팀원들과 함께 네팔에 방문한 때였습니다. 아직도 한겨울 특유의 잔잔하게 퍼지는 햇살과 그 햇살만큼이나 해사하게 빛나던 미소가 생각납니다. 오래 입은 것인지 살짝 닳아있었던 교복의 옷깃도, 정갈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까지도 하나하나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눈치도 철도 없었던 제가 멋대로 실수를 연발하고 혼자 풀이 죽어 틀어박혀있을 때 익살스럽게 미소지으며 함께 춤추자고 손을 잡아 끌던 아이. 축제 음악에 맞추어 신나게 춤을 추다가도 또래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유독 씩씩하고 골목 대장 같던 아이. 내년 축제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지만 그 약속은 아쉽게도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 아이는 골육종 판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종종 네팔에 갈 때마다 단체에서 모금한 돈을 전달하기도 했지만 수천만원에 달하는 수술비를 모으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이는 해가 지나며 만날 때마다 서서히 야위어갔습니다. 


결국 그 아이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제가 영국으로 건너가 석사 공부를 하던 때였습니다. 그 날 도서관의 유독 서늘하게 내려앉은 공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저는 아마도 네팔의 보건 시스템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혹은 네팔 아이들의 영양 상태와 식량 안보에 관한 발표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사실 제가 도대체 뭘 발표하려고 했었던 것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논문과 그래프와 차트들이 산산하게 부서져 흘러내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럴듯한 학위를 위한 3,500만원짜리 공부가 이제와서 다 무슨 소용인가 싶습니다. 저는 한 아이를 지키지 못한 것은 물론 그 아이를 위한 최선의 노력조차 다하지 않았는걸요. 



모금된 돈을 받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모아 내밀던 그 아이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도무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역 신문에도 수차례 소개 되었다고 했습니다. 모금을 받기 위해 작은 행사들을 전전했었다고도 들었습니다. 무엇이 그 아이를 고개 숙이게 만든것인지, 지금까지 몇차례나 이런 일을 반복해 온건지 알고 싶지 않은데도 이미 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동시에 그 아이를 위한답시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들고, 절절한 문구를 생각해내던 과거의 제가 떠오릅니다. 



사실 그 죽음의 무게는 저에게 전혀 현실감있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마음 한 켠에서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한 해가 지날 때마다 혹시 기적처럼 병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혹은 한 아이의 병원비로 수천만원을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아이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맞다고 그 삶의 무게를 제멋대로 달아 견주었던 것도 같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결국은 제 학업과 직업이 우선이었기에, 그 상실을 오롯이 마주하게 된 지금, 한없이 오만한 생각을 해왔던 저를 차마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길가를 거닐다 가지런히 놓인 노란 빛깔의 메리골드를 마주할 때면 불연듯 그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메리골드에는 여러 꽃말이 있는데 하나는 헤어진 친구에게 보내는 마음, 또 다른 하나는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고 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행복이란 것이 있었던거라면 그건 제 작은 친구의 몫 이어야 했었다는 미련을 떨쳐내기가 어렵습니다. 얼마 전 카페에서 글을 쓰다 탁자에 놓인 신문 기사를 보았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특집 기사였습니다. 죽음은 상실과 소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마음에 남은 이야기라는 표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몇 마디의 애도를 더 보탠다고 해서 확정적이고 불변한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명제가 달라질 일은 없겠지요. 그럼에도 아마 제가 앞으로 마주할 시리도록 건조한 네팔의 겨울 공기와 잔잔하게 번져가는 햇살 사이 그 어딘가에는 영원히 그 아이를 위한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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