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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유럽자동차여행] Day 10

토리노에서 맛본 볼로냐 가정식

2019년 4월 26일


샤모니를 끝으로 10일간의 프랑스 동부여행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날. 11km를 달리는데 무려 45유로(6만 원)나 하는 명성 높은 몽블랑 터널을 지나자 국경을 통과해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샤모니에서 피렌체로 향하는 길엔 토리노를 거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 이곳에서 두 밤을 지내기로 했다. 토리노 하면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만 떠올릴 만큼 토리노에 무지했던 나는 샤모니에서 토리노에 가기 전 사전학습을 했다. 토리노는 로마, 밀라노, 나폴리에 이은 이탈리아의 4대 도시(인구수 기준)로, Lavazza 커피의 고향이자, 유벤투스 축구팀의 홈구장이 있는 곳이었다. 이집트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이집트 박물관이 있었고, 몰레 안토넬리아라는 영화박물관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사전공부한 지역 중에 어느 곳도 가지 않았다. 이 모든 곳을 방문하지 않았지만, 토리노에서 예정한 이틀보다 하루를 더 연장해 총 3일을 머물게 됐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머문 에어비앤비 숙소 덕분이었다. 


토리노(Torino)에서 머문 에어비앤비 숙소 마당에서 바라본 전경. 저 멀리 토리노 시내가 보이고 뒤에는 설산도 함께 볼 수 있는 멋진 정원이 있는 집.


토리노 시내에서도 차로 20분을 더 넘게 달려야 하는 숙소에 도착하자 전형적인 이탈리아 청년 스테파노가 우릴 맞이해주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6년을 일하다 회의감을 느끼고 일을 그만둔 후, 가족들이 살던 집을 에어비앤비로 꾸며 운영하는 그는 이탈리아 국경을 넘은 지 갓 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우리 부부에게 에스프레소를 진하게 내려주었고, 토마토 파스타와 와인까지 대접해주었다. 그것도 아무 대가 없이 무료로. 프랑스 트루아(Troyes) 엘케아주머니 집 다음으로 받은 호의였다. 


(왼쪽) 아침 일어나자마자 모카포트에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던 스테파노, 그 덕에 우리도 모카포트 에스프레소에 빠져버렸다.

    

이탈리아의 맛을 진하게 느끼고, 방에서 쉬며 여독을 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옆 방에서 묵는 이탈리아 네 가족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분주히 움직였다. 주방과 거실을 함께 사용하는 에어비앤비 특성상,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러 가는 길에 저녁으로 파스타를 요리하는 프란체스카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어느덧 분위기가 저녁으로 함께 파스타를 맛보는 것으로 흘러갔다. 이탈리아에 도착하자마자 이탈리아 현지인들이 요리해주는 파스타를 두 접시나 얻어먹다니, 이 맛에 에어비앤비에서 묵는구나 싶었다. 

    

볼로냐에서 휴가를 왔다는 프란체스카 아주머니와 남편 니콜라, 초등학교 1학년인 큰아들 조르죠 그리고 개구쟁이 7살 조반니와 함께 짧은 영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함께 와인과 파스타를 나누었다. 아주머니가 만드신 파스타는 바로 로마에서 구할 수 있는 치즈인 페코리노 로마노(양젖을 응고시켜 만든 치즈라고 한다)를 갈아 만든 파스타. 아주머니는 굉장히 쉽고 서민적인 요리법이라며 부끄러워하셨지만, 현지인이 만들어준 파스타는 더할 나위 없이 맛있었다. 


이 정 많은 이탈리아 가족은 2차, 3차로 토미노치즈와 살라미까지 내어주셨다. 염치없이 얻어만 먹는 것 같았는데 다행히 볼로냐 가족들은 처음 본 한국인들에게 한없이 잘해주셨다. 특히 이탈리아도 한국인들처럼 학교에서 아무리 열심히 영어를 배워도 써볼 환경이 되지 않는데, 아주머니는 영어로 대화하는 이 상황이 아이들 교육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며 좋아하셨다. 아주머니가 중간에 영어-이탈리아어를 통역해주셔서 축구를 좋아하는 세 남자와 이승우 선수가 있는 볼로냐 축구팀 이야기를 핑계로 벽을 허물어갔다. (특히 작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을 이겨 16강에 진출하지 못하게 한 것을 꽤 좋아하셨다) 낯을 가려 우리 부부와 눈도 잘 못 마주치던 두 사내아이도 나중에는 드문드문 영어 문장을 뱉으며 대화를 시도했고, 함께 셀카도 찍어주었다.


(왼쪽) 니콜라 아저씨와 개구장이 막내 조반니에게 내가 이승우 선수를 보여주며 축구로 하나되고 있는 모습 (중앙) 이탈리아 정통 볼로냐 가정식.
우리가 라면과 만두를 대접하자 (왼쪽) 스테파노는 다음날 정통 파스타 요리를 만들어주었다.


우리가 에어비앤비가 아닌 일반 호텔에서 묵었다면 이렇게 이탈리아인들과 생생하게 교류할 수 있었을까. 서로의 음식을 나누고, 언어가 완벽하게 통하지 않아도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은 에어비앤비에서만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토리노 여행은 이탈리아인들과 부대낀 따뜻한 시간으로 충분했다. 무엇보다 일면식 없는 한국인들에게 아낌없이 음식을 내어준 아주머니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다행히도 우리의 마음이 볼로냐 가족에게도 전달이 됐는지, 이튿날 헤어지는 날 따뜻한 볼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안녕을 기원했다. 이곳을 떠나면 다시 밤의 한기를 견디는 캠핑장생활을 한다는 우리 부부가 걱정됐는지 아주머니의 안부를 묻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곳에서 만난 볼로냐 가족들 덕분에 토리노에서의 기억이 한층 더 따뜻해질 것이다.


스테파노의 두 반려견. 큰 덩치와 다르게 애교쟁이였던 검은 댕댕이 핵토르와 독립적인 성향이 강했던 하얀 마야.
(왼쪽) 저녁이 되면 한껏 더 분위기가 살아나는 거실 (오른쪽) 늘 집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문 앞에서 문 열리기만을 기다리던 헥토르와 그런 그를 바라보는 마야


<90일, 유럽자동차여행> 일곱 번째 도시. 이탈리아 토리노(Tor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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