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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유럽자동차여행] Day 34

고양이 집사가 되다

2019년 5월 20일


코토르(Kotor) 숙소 첫째 날, 방에 들어와 창문을 여니 이제 막 태어난 지 한 달쯤 되어 보이는 새끼 고양이가 잔디 위에 앉아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에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을뿐더러 만져본 적도 없지만, 새끼 고양이의 귀여운 모습에 무장해제되어 밖으로 나가보았다. 창문으로 보이는 숙소 뒷길에는 새끼고양이 세 마리가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니 세 녀석은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우리가 첫째라고 명명한 셋 중에 제일 덩치가 크고 엄마 고양이를 닮아 갈색 털을 가진 녀석은 우리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첫째만큼 컸지만, 하얀색 털을 가진 둘째는 우리가 만지려고 하면 물러나면서 경계했고, 가장 덩치가 작아 우리가 막내라고 부른 녀석은 우두커니 잔디에 앉아 우리를 쳐다보았다. 


(좌) 덩치가 가장 작고 애교가 많았던 막내 쇼티 (중앙) 나무도 잘 타고 잘 생긴 둘째 (우) 가장 먹성이 좋던 첫째와 둘째

    

고양이를 길러본 적이 없는 우리 둘은 처음엔 고양이들에게 무엇을 줘야 할지 감이 없었다. 얼핏 짠 음식과 초콜릿은 주면 안 된다고 들었던 기억이 나서 그 두 개를 피하려고 하니 생각보다 줄 것이 마땅치 않았다.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음식은 짜거나 달거나(초콜릿) 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우리가 아침에 먹는 시리얼과 우유를 주면 어떨까 해서 가져가 보았다. 처음엔 경계하던 녀석들도 배가 고팠는지 우유와 시리얼을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사흘 동안 우리는 새끼 고양이들의 집사가 되었다. 두어 번 밥을 주자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나타나면 어디선가 나타나 우리 앞에 나타나는 귀여운 아기들이었다. 엄마 고양이도 새끼고양이 주변을 늘 배회했는데 우리가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자 더는 경계를 하지 않았다.  


사흘 동안 우리는 새끼 고양이들의 집사가 되었다

세 냥이 중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가장 많이 뺏은 건 막내였다. 몸집이 첫째(갈색고양이)와 둘째(흰색고양이)에 비해 월등히 작아서 쇼티(Shorty)라고도 불렀던 아이는 늘 음식보다는 우리 다리 위로 올라오는 걸 좋아했다. 처음엔 잘 먹는 듯 하다가도 금세 배부른지 늘 우리 다리 위로 올라와 잠이 들었다.     

늘 우리 무릎에 올라오기를 좋아했던 귀염둥이 막내 쇼티

   

여행은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되는 거라고 했던가, 우리가 고양이를 이렇게 귀여워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코토르에서의 3박을 마치고 보스니아로 떠나는 날 우리는 쉽사리 숙소를 떠나지 못했다. 이 귀여운 고양이들을 더는 돌봐주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우리 숙소 옆집 아저씨는 우리보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마리 데리고 가라고 할 정도였다.     


떠나는 날, 녀석들에게 처음으로 특식을 줬다. 우리가 먹으려고 산 소시지였다. 밋밋한 시리얼에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녀석들도 소시지는 냄새를 맡자마자 번개처럼 달려드는 모습이 코끝을 찡하게 했다. 이 녀석들은 이게 우리가 주는 마지막 식사라는 걸 몰랐겠지. 막내는 우리가 차로 걸어갈 때까지 뒤를 졸졸 따라와서 하마터면 차에 실어 갈 뻔 했다.     


그리운 세 고양이들, 지금도 씩씩하고 건강하게 코토르에서 자라고 있기를 희망해본다


지금쯤 ‘왜 오늘은 집사들이 아침밥을 안 줄까’ 하며 우리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녀석들이 벌써 그립다. 우리가 언제 몬테네그로를 다시 여행할지 모르지만, 다시 코토르에 방문했을 때 우리 막내가 너무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오늘도 여행을 통해 몰랐던 취향을 발견한다.


집 앞에 앉아 고요한 호수와 노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코토르 여행


<90일, 유럽자동차여행> 열다섯 번째 도시. 몬테네그로 코토르(Ko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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