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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물의집 Aug 20. 2018

사랑일뿐이야

사랑은 정말 일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찬찬히 보면

하나같이 다르고 특이한데,

그런 개성보다 더 특이한 점은 

하나같이 잘 듣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나는 무슨 복이 이렇게 많아

이토록 잘 들어주는 사람을 곁에 두었나 싶다가도,

어쩌면 항상 경청만반의 준비가 된 채 나를 만나는 이 사람들 때문에 주절주절 나만 말이 많아진 것 같아 그들을 탓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진심어린 눈망울과 적당한 리액션 더 적당한 호기심으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숭은 자주 이야기듣다 말고 "ㅇ ㅏ, 이거 적어야해!" 하며 바로 핸드폰을 꺼낸다. 지난 주에도 어김없이 그런 찰나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의 한 토막이 숭을 통해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by 숭 

https://brunch.co.kr/@lovebrander/65


숭의 글, 특히 브런치에서의 숭글을 무척무척 좋아하는데.

현실과 이상이 최고의 균형감으로 버무려진 요리가 아닌가 싶다. 낭만적인 주제를 가지고 실용적인 해설을 붙인다거나, 현실적인 소재를 가지고 감상적인 풀이를 깃들이는 묘오한 안정감이 있다. 


아무튼 사랑은, 

내 인생의 유일한 화두이다.

자주 생각하고 늘 고민한다.


어떤 연애를 하고 있던 시기. 집에 가려고 엘르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동네 아주머니께서 통화를 하고 있는 채로 다가와 가까이에 섰다. 

"얘, 사랑에 노력이 필요하면. 그게. 사랑이니?"

나한테 하는 말도 아닌데 나는 그 순간 너무 아팠다. 아팠다기보다.. 뭐랄까... 깊이 애렸다. 한없이 느낌대로 살고싶어하는 나였는데 사랑에 노력을 하고 있다니... 그럼 이건 사랑이 아닌건가? 결국 그것이 촉매제가 되어 이별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그때의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이 아줌마 뭘 모르시네, 사랑은 9할 9푼이 노력입니다요.' 속으로 피식_ 하고 넘겼을 것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사랑을 정의하는 내 관점이 달라진 것이다. 바꼈다기보다는 넓어졌다. 


사랑에 노력따위 필요없다고 생각했을 때, '노력'은 '구걸' 비슷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마주하게 된 '노력'은 '관찰' '이해' '인정' '포기' '배려' 등등등 아주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노력과 노력과 노력과... 노력의 이어달리기로 사랑은 마라톤을 달리는 것이다. 언제 이 경주가 끝나는 것일지 우리는 알 수 없기에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해야만 하는 것은! 계속해서 사랑의 끈을 이어가는 것. 당연히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사랑의 첫 단추만큼은

감히 아무것도 노력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사랑의 시작은 천재지변이고 지각변동이다. 내 마음의 화살과 상대의 화살이 정확히 만나 스파크를 튀긴다는 것은 인류가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기적 아닐까? 그 일을 감히 노력으로? 노력이 쌓여있다 한들 불이 지펴지는 그 순간만큼은 순결한 사랑 그 자체 뿐이지 않을까. 


기적으로 사랑이 시작되면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노력함으로 첫사랑의 수명을 연장한다. 


사랑은 오래참고. 

성경은 수-많-은- 표현 중 '오래 참는다'는 것을 사랑의 첫번째 정의로 내리고 있다.

이 정의에 대해 매일같이 곱씹는다.

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일까?

꼭 이렇게 현실적인 표현이어야 했을까?

하지만 이내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그냥 참는 것도 힘든데 "오래" 참는 일, 그것이 마침내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오래오래 사랑했으면 좋겠다.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이유이고

그것을 온전히 누릴 때 

오래 참는 모든 것이 

사랑이 되는 기적 다음의 기적도 경험하니까.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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