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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가재가 노래하는 곳]

  전형적인 슬픔이 허락되지 않은 삶은 외롭다. 자신이 원한 적이 없는 탄생의 이유를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다면 삶은 고단하다. 자기에 옆에 있다가 사람들은 모두 떠나갔지만 오직 자연에게 울분을 토했던 독특한 이가 있다면 그 이야기에서 위로를 받게 된다. 


 일흔의 동물학자인 저자는 1960~70년 미국 남부 해안가와 습지를 배경으로 가장 자연과 가까웠고 사람과 멀었던 '카야'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썼다. 물론 카야가 습지에 살았기 때문에 자연에 살았던 것은 아니다. 카야와 함께 했던 생물학적 가족은 6살 이전에 그녀를 모두 떠나갔다. 2차 대전의 상흔을 가족에게 투사했던 아빠, 그를 못 견디던 엄마, 언니, 오빠들 모두 떠났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폭력적이던 아버지는 맨 마지막으로 카야를 떠났는데, 그가 가장이라는 허울을 지키려는 마지막 방책일 수 있으며 특별히 다른 곳에 가서 그만한 대접을 받을 수도 없다는 것도 암시한다. 몰락한 백인은 인종과 계급을 넘어서 '더러운 취급'을 받게 되며, 습지의 판잣집에서 머물던 카야는 평생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국가와 제도가 포섭하지 못한 경계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사회의 몇몇은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돈 셈하는 법을 알려주며 조금 웃돈을 주는 여성이, 쓸모없는 물건을 가치가 있다고 하며 혼자 사는 아이에게 생필품을 건넸던 차별받는 이들이 있었다. 카야의 기억 속에 없었지만 언제나 카야에 옆에 있었던 한 사람도 있었다. 도망간 오빠 조디의 친구 테이트였고, 그는 학교도 가지 않는 카야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고, '자연과 장막이 없는' 카야에게 생물학 책을 가져다주며 학습할 용기를 주었다. 


 당연스레 소설은 사건이 등장하는데, 곧 그 동네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이다. 홀로 남겨진 카야의 판잣집에는 불청객들이 방문하게 되는데, 남성들의 성인식 장소로 판잣집의 문을 두드린다던지, 주로 흉흉한 소문을 퍼트리는 사람들도 생긴다. 그들 중에서 주인공 카야와 결혼까지 약속했었던 인기 많았던 백인 체이스였고, 살인 사건이 발생하며 용의자가 검거되어 재판에 돌입하는 시점과 카야가 고단한 삶을 이끌어가는 시점과 병렬식으로 소설은 구성된다. 


 가족, 연인 어떤 이들도 자신을 떠나간다는 무력감과 무뢰한 침입이나 문명화된 풍습은 '카야'에게 사람에게 의지하지 못함으로 결부되며, 이는 읽은 독자들이 언젠가는 한 번쯤 겪었을 대중 속의 외로움,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는 양날의 거울, 사랑하는 관계에서의 실패라는 다양한 경험과 만나서 울림으로 작용하게 된다. 문명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세계 최고 여행지의 영상이 낮은 언덕에서 불어오는 바람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연과 호흡하며 기러기들이 반겨주고, 고양이가 옆에 와서 눕고, 근대적 지표로써 설명할 수 없는 해류를 몸으로 알고 있는 주인공의 사뭇 동질감과 경외심을 갖게 한다.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사슬


 

 미국 남부의 자연환경, 습지의 모습에 익숙지 않더라도 저자가 말했듯이 '장면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도록' 고려한 저술은 자연이라는 공통 경험에서 다양한 빛깔로 만나 감동과 개연성을 확보하게 된다. 자연에서 수컷의 교미에 대한 갈망이 죽음까지 몰고 가게 되는 사례, 약하지 않게 보이려다가 깃털이 삐져나오고 뒤뚱뒤뚱 걷게 된 조류의 사례 등을 들어가면서 조금 더 교양 있을 뿐 어떤 면에서 자연스러운 몸에 대한 욕망과 상상은 통용되는 논리임을 느끼게 된다. 


 옛 연인을 기다리기보다 유사한 몸의 감각을 탐닉한다거나, 사랑하지만 현실에서의 성공과 인정에 갈급했던 모습을 평생 후회한다거나, 하룻밤 즐기려고 했다가 일어나는 마음의 복잡함을 어찌하지 못하거나, 어떠한 이유에서건 자신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이 '자연과 가장 사슬로 엮인' 인물에게서 드러나며, 인물과 서술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외로움과 떠남이라는 감각은 그만큼 강력한 매개체이며 '관계'의 괴로움이다.

  

 한나절에 다 읽을 만큼 유려했는데, 아마도 그것은 내 삶에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잠시나마 찾고 싶었던 도시인의 떨림 때문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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