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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즈쭈꾸미 Mar 02. 2024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취미부자 이야기

“언니는 뭘 제일 잘해요?” 식물을 잘 키우는 이웃 동생의 집에 놀러갔을 때 들은 이야기다. 좁다란 베란다를 초록으로 가득 채운 그녀의 솜씨에 연신 감탄하다 질문을 들었을 때 뭐라 대답해야 할지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갑자기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 찼다. ‘....???’ , ‘뭘 제일 잘했더라???’ 웃기게도 “글쎄 생각해보고 나중에 알려줄게.”라고 말했다. 



‘아니 뭘 생각해보고 알려준다 말인가?’ 하지만 그날 이후로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내가 뭘 잘하지?’ 어렸을 때 나는 잘하는게 많은 아이였다. 글쓰기 상을 받으면 글쓰기를 잘했고, 줄넘기 상을 받으면 줄넘기를 잘했다. 학력우수상을 받으면 국어도 수학도 한문도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는 '잘한다는 것'의 기준이 상을 받는다거나 등수였던 것 같다. 화홍문화제에서 서예 대상을 받았을 때, 나는 마치 수원시에서 가장 서예를 잘 쓰는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어른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니 무언가 잘 한다는 것은 고작 등수나 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 세상에는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 반'이라는 작은 세계가 기준일 때와 달리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니 함부로 무언가 잘한다고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졌다. 어른이 되어 우물 밖으로 나온 개구리는 더 이상 자신만만하게 뭘 잘한다고 하기가 어려워졌다.


사회적으로 겸손함을 학습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지 시야가 넓어졌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제 더 이상 뭘 잘한다고 하기 쉽지 않다. 그럼 어른이 된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놀랍게도 잘하는 것이 없어진 대신 좋아하는 것이 많이 생겼다.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은 예나 지금이나 흔하다. 어릴 적엔 이 질문에 딱히 대답할게 없었다. 


주어진 학교생활 위주로 살기도 했고 좋아하는게 뭔지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잘하는 건 없어도 좋아하는 것이 무지 많다. 수영인이라고 생각할 만큼 수영을 좋아하고, 줌바 파티에 참석할 만큼 줌바댄스를 애정한다. 사진 감상하는 것도 좋아하고 글쓰기도 좋아한다. 심지어 영어 공부하는 것도 즐겁다. 



이러한 변화는 어디서 왔을까? 문득 생각해보니 사회도 변했고 나 자신도 변했다. 과거에는 남보다 무언가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즐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애정하는 줌바댄스의 경우 3년도 넘게 배웠지만 잘 못한다. 하지만 못해도 즐겁다. 어떤 것을 좋아하기 위해 필요한건 남보다 잘하는게 아니라 그 활동이 나를 즐겁게 만드냐 이다.


예전에는 무언가 잘하는게 중요했다면 이제는 어떤걸 좋아하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남보다 잘하는 것'으로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로의 이동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다. 마흔이 넘어선 어느 날, 나는 취미부자가 되어 있었다. 잘하는 걸 말하자면 바로 생각이 안나지만 좋아하는게 많아 행복하다.  아마도 “언니는 뭘 제일 잘해요”라는 질문 역시 표현의 차이였을 뿐 “뭘 제일 좋아하냐”는 의미였던 것 같다. 



다음에 만난면 묵혀둔 대답을 해줘야겠다. 

“언니는 사실 취미 부자야” 

"줌바도 수영도 사진도 글쓰기도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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