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삼 Oct 03. 2017

서른셋 미혼의 여자에게 추석이란

그 흔해빠진 얘기

추석. 일반적으로 명절 하면 치를 떠는 건 기혼의 여성들이지만, 내 경우는 철저히 "여자만" 일을 하는 집안의 딸이기에 그에 못지않다. 남자는 부엌 문지방 넘으면 고추가 떨어진다는 할머니 지론이 있었다. 고추 좀 떨어지면 어떠랴 싶지만, 남자들은 그게 아닌지, 혹시라도 진짜 떨어질까 봐 무서웠던 걸까, 할아버지부터 어린 사촌 놈과 조카 놈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부엌에서 스스로 물 한 잔도 따라 마시는 법이 없다. (가끔 계속 못들은 척 하면 유세하듯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가는 경우가 33년에 몇 번 있기는 했다, 그래)

그런 집안에서는 여자는 모두 노예 신분으로 전락한다. 거실에 상을 커다랗게 펼쳐놓고 어린 사촌 놈이 "누나, 물" 하면 나는 물을 대령한다. 외국 생활 좀 한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을 때 아빠는 사촌들이 아직 어리지 않느냐며, 쟤들도 크면 다 할 거라고 어르고 달랬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났지만, 걔들은 아직 크질 않은 건지, 아직도 그때와 똑같이 "누나, 물"을 외친다.

그래서 나는 명절이 싫다. 말해 뭐하나, 입만 아픈 한 공간 안에서의 불공평한 역할 분담 (남자는 방바닥에, 여자는 부엌에)도 그렇지만, 그에 불평불만을 갖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는 남자들의 시선이 가장 싫다. 

아니, 그거 뭐 대단하다고 일 년에 며칠도 못해? 

한국의 문화인 건데, 너가 뭐 특별하다고 딴지를 걸고, 너만 안 한다고 유난이야? 

당연한 것에 대해 왜 옳고 그름을 따져? 

마치 그들에게 여자인 내가 부엌에 있는 것은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당위적인 팩트와 동급인 듯 말한다. 일생에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그들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면, 대화는 종결된다. 내가 맞는 말을 해서가 아니라, 너는 구제불능이라는 결론으로. 


올해는 나보다 세 살이 어린 사촌동생이 둘이나 결혼을 발표했다. 그리고 둘 모두 추석을 맞아 각자 배우자를 데리고 와서 가족들에게 인사를 시키겠노라 했다. 현재 상황, 나는 집안 사촌들 중 장녀이며, 나만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 사촌들 중 나와 한 녀석만이 여자인데, 그 여자애가 시집을 간다는 거다. 그 소식에 여태껏 참았다시던 할아버지께서도 결국 엄마에게 입을 여셨다, 서른셋의 내가 걱정이 된다고. 이젠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다고.

이번 추석의 그림은 겪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나는 숱하게 상을 차리고 치우고를 반복할 것이다, 숱해동안 그래 왔듯. 아침상을 차리고, 다과를 내가고, 아침상 설거지를 하고, 곧이어 점심 식사 준비를 하고, 상을 차리고, 남자들이 메뚜기떼처럼 쓸고 간 식탁의 잔반으로 점심을 먹고, 그들이 발라먹고 식탁 위에 내동댕이 친 갈비뼈들을 맨손으로 치우고 또 설거지를 한다. 다시 슬슬 출출하다는 조름에 다과상을 내가고, 커피를 끓이고, 과일을 깎고, 과일 껍질과 씨에 붙은 살점을 두 손으로 뜯어먹으며 다시 저녁을 준비한다. 그렇게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술상까지 내가고 치우기를 반복하고 나면 할아버지 댁 청소기를 돌리고 그제야 집으로 향한다. 올해는 특별히 사촌동생들의 배우자에게 차도 내어주어야 한다. 새파랗게 어린 사촌동생들의 배우자 앞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착한 사촌언니 코스프레를 하며 가족이 되는 것을 축하하고 환영해주어야 한다. 그러니 옷을 단정하게 입고 오라는 당부를 들었다. 부엌에서 다 먹은 갈비뼈나 치우고, 과일 뼈대 살점이나 뜯어먹는 내가 대체 어떤 복장을 해야 하는 것인지도 혼란스럽지만, 이미 바닥나버린 자존감과 존재감은 영원히 보살펴질 수 없다는 피해의식만 점점 증폭된다.

올해만큼은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 어른들은 나를 두고 못났다고 했다. 못났다, 언니가 돼가지구는. 가족들의 손가락질 혹은 동정의 대상이 되는 건 정말 싫다. 특히나 지금처럼 일도 연애도 잘 못하고 있는 서른셋의 장녀인 올해는.


아직도 나는 내일을 두고 고민을 하고 있다, 가출을 해야 하나.

서른셋에 내 통장 잔고 고작 천만원을 들고 대체 가출은 또 어디로 한단 말인가. 

점점 숨통이 조여 온다.

내일이 영영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