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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삼 Dec 20. 2017

30대의 소개팅 2

사랑에도 나이가 있구나

두 번째 만남은 그를 처음 만난 후 2주 만이었다. 그는 고대한다는 듯, 만나기 전부터 하루하루 자꾸만 다음 주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은 내가 정했는데, 대학 시절 이야기를 나누다 당시 자주 찾았던 추억의 닭갈비집이었다. 내가 닭갈비보다 볶은밥을 좋아한다니 그가 맞장구를 쳤었다.


첫 만남에 지각했던 것이 미안해 나는 급히 택시를 잡아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는데, 도리어 그가 15분쯤 늦게 도착했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닭갈비를 먹었는데 독립을 하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알아보던 차에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고충들을 나누니 그가 공감을 하지 못했다. 자신은 이미 그 현실의 벽을 어린 시절부터 겪어왔다는 듯한 답변이 몇 차례 돌아왔다.

그가 술을 잘 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적당히"라고 대답하곤 닭갈비 먹으면서 소주를 두병 해치웠다. 괜찮으냐는 말에 괜찮다고 하고 2차로 다시 소주를 마시러 갔다. 내 주문대로 참치타다끼를 시켜 소주를 마시는데 취기가 올라 나는 제법 말이 많아졌다. 그가 "어, 술이 좀 올랐네 이제"라며 웃었다.


사실 그를 만나기 전, 나는 처음 만난 '공무원'이라는 직종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간 나는 정말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만났지만 공무원은 처음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이 직업군에 관해 주변 지인들이 각자 할 말들이 많아 보였다. 소개팅을 했는데, 공무원이라고 하면 다들 한 마디씩 자신들의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일적으로 만나는 공무원들에 관한 이들의 이야기였는데, 종합해보자면 갑질 근성이 강하며 보수적이고 속물적이라는 소리였다. 그러니 너도 조심하라는 것.

하물며 그의 부서와 협업이 많은 친구는 내가 그와 소개팅한 이야기를 해주기가 무섭게 내게 물었다.

"삼삼아"

- 응?

"너네 집, 부자야?"

- ㅋㅋㅋ 보면 몰라, 아니잖아.

"그럼, 안돼........"

농담 같아 웃었지만, 그녀는 농담을 하고 있지 않았다. 실제로 공무원 남자들이 혼테크에 대한 열망이 크다며, 미리 알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을 정도. 그러고 보니, 그가 내게 첫 만남 때 자신의 집안이 꽤 힘들다는 이야기를 몇 차례 했던 것 같다고 하자, 그녀는 더더욱 잘 이야기를 해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가 내내 마음을 꿍 누르고 있었던 차에 술까지 마시고 나니 필터 없이 그의 앞에서 나는 술술 얘기를 해버렸다.

"근데요, 제가 들은 얘긴데요"

- 네

"친구들이 그러는데, 공무원들은 엄청 속물 이랬어요. 특히 그쪽 부서가..."

말하는 동시에 스스로도 번개 맞은 듯 놀랐는데, 그의 대답이 더 놀라웠다.

- 네, 맞아요.

"네?" 하고 놀라자 그가 다시 한번 쐐기를 박듯, 친구가 정확히 보셨다고 답했다.

- 저도 혼테크 제안받았었어요. 뭐 몇십억 정도. 부동산은 얼마, 현금은 얼마.

"현금? 현금은 왜..."

- 봉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우니까요.

"아....... 그럼 그건 어떻게...'

- 종신이죠.

공무원다운 대답이었다. 처가에서 받는 돈도 연금 개념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쯤 되니 그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기... 혹시 저를... 그렇게 생각......... 왜냐면, 저희 집은 아니거든요. 아니 못... 해주거든요."

내가 두 팔을 교차하며 배시시 웃자 그의 답이 더 가관이었다.

- 아, 사실 삼삼씨 만나기 전에 이런 얘긴 들었어요. 엄청 여유 있는 집이라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눈치가 없는 데다 술까지 취한 탓에 폭소를 하고는 그 자리에 그냥 앉아있었다. 맨 정신이었다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거나 일침을 가했어야 할 것 같으나, 그러질 못하고 바보같이 그가 화장실에 간 사이 2차 술값까지 계산하고 멀뚱멀뚱 앉아있었다.


그가 자리에 돌아와 계산을 하셨느냐고 좀 놀라며 묻길래 그렇다고 하자 그가 "아,,,"라고 답했다. 지금까지 나의 남자친구들은 마초 근성이 강해 여자가 계산하는 모습을 보길 싫어했다. 그래서 남자친구들은 밥값 같은 걸 내지 말고 대신 언제 놀러 갈 때 차에 주유를 해주는 것으로 대신해달라고 하곤 했었다. 과거 기억들이 떠올라 그에게 조심스럽게 혹시 기분이 나쁘셨냐고 묻자 그가 오히려 그 말이 더 의아하다는 듯 아뇨?라고 말했다.


집에 바래다주겠다며 자신의 집과는 좀 다른 방향인 우리 집에 택시로 날 내려주곤 그와 커피 한 잔을 더 마셨다. 바로 그 택시를 타고 갔으면 몰라도, 굳이 문 앞까지 바래다주는 남자에게 무언가는 대접해야 할 것 같아 내가 커피를 마시겠냐고 했다. 편의점에서 커피 한 잔씩을 사서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그는 집으로 돌아갔고, 나도 집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서니 갑자기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어째서인지 나는 그가 꽤 괜찮은, 그리고 솔직한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술김에. 그래, 그의 가정형편이 어렵다면, 만나는 여자에게 경제적 여유를 기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솔직한 모습이 맞으니까. 우린 30대고, 사랑만으론 살 수 없으니까.


그러나 이후로 더 이상 보지 않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선택이었다. 통보는 아니었고 어찌 저찌 일이 그렇게 되고 보니, 내가 무언가 단단히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필로그]

한 달 쯤이 흐른 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대박사건!"

- 무슨 일이야?

"지금 통화 가능하지? 얘기가 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데."

모임 중이었지만 일단 궁금해서 얘기를 해보라고 하자 친구가 말했다.

"나 지금 아는 언닐 만났는데, 그 언니가 소개팅을 했대."

- 공무원님이시니.

"어!"

- 바쁘시구나. 목표가 뚜렷하시니까, 난 그분 정말 잘됐으면 좋겠는데. 그 언닌 돈이 많대?

"아니. 그래서 언니도 고민이래. 사람은 괜찮은 것 같은데,라고 말문을 열었어. 너무 웃기지?"

사람은 괜찮은데, 라는 말은 내가 그를 만나고 친구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러나 집이 많이 어려워서 도와줘야 할 것 같으나 내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고.


"더 웃긴 건, 언니도 그를 만난 지 3주쯤 됐는데, 두 번 봤대. 너도 3주 동안 2번 봤잖아. 회사 일로 바쁘다고 한 주를 건너뛰었고, 만나던 첫날, 집이 좀 힘들다고 운을 떼더니, 두 번째 만남에 다시 집이 많이 어렵다고 말했대. 너무 패턴이 똑같지 않아?"

다소 슬펐지만, 친구에게 말했다.

- 취중에 맘에 쏙 든다고 고백도 했냐고 물어봐봐, 나 진짜 그땐 좀 설렜단 말이야. 그것도 대본이었으면 나 나가 죽을라구.


30대에도 속물 남자의 잘 짜인 시나리오 대본 한 줄에 놀아나는 노처녀만큼은 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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