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비뱅커 Jun 09. 2024

영화 <드림시나리오>

현실 같은 악몽, 악몽 같은 현실

꿈이 현실에 미치는 현상

고등학교 시절 뜬금없이 같은 반 여학생 꿈을 꾼 적이 있다. 가끔 매점 자판기에서 동전 몇 개 빌려주는 사이에 불과했지만, 꿈에서는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는 내용이었다. 현실에서 그녀를 마주했을 때 나도 모르게 뒤돌아갔던 귀여운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만약 모든 사람들이 같은 사람의 꿈을 꾼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 <드림 시나리오>(2024, 크리스토퍼 보글리)는 모두의 꿈에 나타나는 평범한 아저씨의 급작스러운 인기와 몰락을 상상력 넘치게 그려낸 작품이다.

나락 가기 쉬운 세상

얼마 전 ‘개통령’이라 불리던 유명 반려견 훈련사의 갑질 논란이 화제였다. 사건이 터지자 대중은 그의 과거 행동을 끄집어내며 ‘개통령’을 나락으로 몰아갔다. <드림 시나리오>(2024, 크리스토퍼 보글리)도 이 사건과 궤를 같이 한다. 소심하고 존재감 없는 대학교수 ‘폴’(니콜라스 케이지)이 모든 사람의 꿈에 나타나면서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되고, 그 꿈을 통해 추락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영화는 진실보다는 자극적인 소재에만 집착하는 현대인의 군중 심리와 구조적 폭력을 풍자하며, 자신을 속박하는 허영심과 인정욕구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관종과 집단군중심리

영화 속 사람들이 같은 꿈을 꾸는 현상은 SNS에 같은 음식, 같은 여행지, 같은 공연, 같은 브랜드의 제품 사진들로 해시태그 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보와 의견이 빠르게 확산되는 현대사회에서는 누구나 하루아침에 유명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실수나 부적절한 행동이 순식간에 퍼질 수 있으며, 이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 급속히 확산될 수 있다. 소셜 미디어는 익명성을 제공하여 사람들의 공격성과 무책임한 행동을 부추긴다. 군중 심리는 이러한 익명성 아래에서 더욱 강화되어 현대판 마녀사냥과 캔슬 컬처 현상을 초래한다. 영화는 진실에는 무관심하고, 이유 없는 추종과 익명성에 기대어 근거 없이 타인의 삶을 난도질하며, 자신의 불만을 전가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한다. 영화 속 폴의 지인은

  “사람들이 진짜 교수님 꿈을 꾼다고 생각해요?”

 라는 뼈 있는 질문을 던지며, 관종에 빠진 개인과 군중 심리에 빠진 집단을 동시에 비판한다.

미움받을 용기

영화 속 폴은 학자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이는 타인에게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다. 폴은 학자로서 인정욕구에 목마르지만 스스로 책을 집필할 결심은 없다. 그는 과거 동료의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달라고 부탁하거나, 유명세를 이용해 쓰지도 않은 자신의 책을 출판해 줄 에이전시를 만나기도 한다. 이는 본래 모습보다 좋게 타인으로부터 갈채를 받으려는 허영심이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허영심이 타인의 마음에 기대하는 희망이라면, 자긍심은 자신의 마음에서 자신에 대해 내리는 직접적인 높은 평가다. 즉 타인의 인정과 호감을 얻기 위해서는 허영심을 없애야 된다. 결국, 이 어긋난 욕망은 하늘 끝까지 올라간 폴의 유명세를 지하 끝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만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정욕구의 허영심으로부터 구원받는 길을 이렇게 설명했다.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다.


메타세상에서는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니콜라스 케이지, 좌절감으로 승화하다

MZ세대에게 니콜라스 케이지는 영화보다 우스꽝스러운 인터넷 ‘밈’으로 더 익숙한 배우가 됐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드림 시나리오> 대본을 보고 자신이 ‘밈’화 되었을 때의 “혼란, 좌절, 자극의 감정을 드디어 폴 매튜스에게 적용할 수 있을 거 같다”라고 했다. 이렇게 현대 사회에서의 문화적 현상과 배우와 역할 간의 유머러스한 연결이 흥미롭다. 고흐의 그림이나 베토벤의 음악을 감상할 때는 그들의 굴곡된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영화 속 폴도 니콜라스 케이지 자체일지도 모른다. 90년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와 <콘에어>, <페이스오프> 등의 작품으로 그를 기억하는 영화 팬이라면 이 영화를 감상하는 관점이 다르다는 말이다. 이 영화가 재미없었거나,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대배우에 대해 잘 모르는 관객이 있다면 최소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나 최근작 <피그>(마이클 사노스키, 2022)를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원더랜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