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여 명의 관객이 야외에서 숨 죽인 채 영화를 본다. 그러다 일제히 환호를 터뜨리고, 엔딩 크레딧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킨 뒤 기립 박수로 해운대의 가을밤을 뒤흔든다. 부산국제영화제 야외극장 프로그램 ‘오픈시네마’ 풍경이다. 특히, 10년 전 오픈시네마에서 처음 만난 <위플래쉬>는 부산의 야외극장을 위해 태어난 듯했고, 밴드 콘서트의 열기를 방불케 하는 아드레날린을 선사했다. 단연코, 지금까지 부국제에서 경험한 어떤 영화적 순간보다도 강렬했다.
재즈 드럼 연주를 소재로 한 <위플래쉬>는 10년 전 처음 본 이후 매년 반복해 관람해 왔지만, 이번 재개봉에서는 유독 액션 스릴러에 가까운 긴장감이 피부에 와닿았다. 야외에서 실내로, 단지 공간만 바뀌었을 뿐인데, 같은 영화가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왔다. 그렇다면 내가 다시 경험한 이 감각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위플래쉬>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빠른 쇼트 전환이다. 드럼 연주 장면마다 화면은 불꽃이 튀듯 쉼 없이 교차한다. 즉, 이 영화의 편집은 음악의 리듬에 실려 정교하게 흐르며, 시각과 청각이 하나의 박동으로 이어진다. 클라이맥스 연주 시퀀스에서는 드럼의 강렬한 비트마다 쇼트가 맞춰지며 관객의 심장박동을 쥐락펴락한다.
극 중 플레쳐의 ‘내 템포에 따라오라고!’라는 외침처럼, 영화 역시 관객에게 자신의 박자에 맞춰 따라오라고 지휘하는 듯하다. 편집은 완급 조절을 통해 긴장의 파고를 만들고, 고조되는 순간엔 숨을 돌릴 틈을 주는 듯하다가도 곧장 폭발적으로 몰아치며 관객을 끌고 간다. 이 편집 리듬은 단순한 화면 전환을 넘어, 스릴러 못지않은 몰입감과 긴장감을 영화 전반에 불어넣는다.
또한 클로즈업으로 포착된 피와 땀, 일그러진 얼굴은 완벽을 좇는 집념이 남긴 상처와 대가를 적나라하게 비추며, 그 광기의 본질을 관객의 뇌리에 선명히 각인시킨다. 예컨대, 피가 흐르는 앤드류의 손이 떨어져 나갈 듯 쉼 없이 드럼을 내리치는 장면이나, 분노와 집착으로 일그러진 플레쳐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순간들은 그들의 광기와 고통을 대사 없이 이미지 감각만으로 드러낸다. 관객은 이러한 디테일을 통해 인물의 심리적 압박과 긴장감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이러한 편집 기법들은 영화의 서사 전개와 주제 의식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빠른 컷과 리드미컬한 전환은 관객을 주인공의 긴장 속으로 끌어들여 그의 압박감을 함께 경험하게 만든다. 편집 속도 변화에 따른 긴장감의 파동은 이야기 전개에 박진감을 더해 관객을 완벽 추구의 광기 어린 여정에 깊이 몰입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연주가 정점에 이른 순간, 플레처와 앤드류 사이의 긴장과 신뢰, 갈등과 교감을 응축한 눈빛이 교차한다. 이어서 카메라는 두 사람의 지휘와 연주를 따라 숨 돌릴 틈 없이 빠르게, 그리고 집요하게 패닝 한다. 드럼 스틱의 움직임, 손끝의 떨림, 지휘자의 손짓까지 한 호흡으로 휘감으며, 관객을 그 질주하는 리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다. 이 숨 가쁜 패닝은 단순한 화면 전환을 넘어 감정의 클라이맥스를 시각적으로 구현해 낸다. 마침내 영화는 그 폭풍 같은 패닝과 함께 감정의 소용돌이를 마무리하며, 관객의 심장을 울리는 마지막 한 박자를 남긴다.
그러니까 10년 만에 다시 본 <위플래쉬>는 속도의 리듬, 상승과 하강의 운동성, 클로즈업과 롱쇼트의 강약의 대비를 통해 마치 한 편의 스릴러처럼 긴장감을 조율한다. 결국, 이 영화는 편집이 만들어낸 리듬과 서스펜스의 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