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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Jun 06. 2024

살기 위해 숨 참기 연습 중입니다

살기 위해 숨 참기 연습 중입니다.

지난 5월의 나를 정의하기에 가장 적절한 한 문장이다. 이 무슨 역설법의 예시 같은 말장난인가 싶겠지만 2024년 5월 4일, 프리다이빙 체험 수업을 듣고 난 이후의 나는 정말로 그랬다.




언젠가부터 나는 '취미'에, 혹은 소위 '덕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떠한 것에든 열렬히 에너지를 쏟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언가 탈출구를 마련한 듯 보였던 그들이 현명해 보였고, 열정의 대상이 있다는 게 부러웠다. 어쩐지 그런 것쯤 하나 있어야 인생을 잘 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이래저래 관심을 가졌던 것도 나름 적지 않았고 이것저것 새로운 경험을 종종 해 보기도 하였으나, 몰두할 만한 대상이 없다는 것이 일종의 결핍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랬던 내가 올해의 어린이날 전날, 프리다이빙 체험 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우리 반 학생과의 누적된 마찰로 인해 학생들에 대한, 그리고 학교에 대한 마음의 문이 크게 닫힌 지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시작은 친한 지인의 영업(?) 덕분이었다. 스쿠버다이빙을 경험해 본 이후 프리다이빙을 배워 보고 싶어 하던 지인의 말에 내가 관심을 보이면서, 우리는 함께 프리다이빙 체험 수업을 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체험 수업을 며칠 앞두고 학교에서 소란스러운 일이 발생하면서, 나의 마음은 새로운 취미를 찾는 사람 치고는 사뭇 진지했고 상당히 절박했다. 병가나 병휴직을 쓰지 않고(혹은 쓰지 못하고) 어떻게든 이번 학년도를 버텨 나가려면, 학교 생활과 내 일상을 '강제로' 분리시킬 만큼 강력한 관심사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프리다이빙에 적합한 신체 기능이나 운동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남들보다 아주 못하지는 않을 만큼만 내 몸이 따라 주기를 체험 수업 전부터 간절히 바랐다. '나'라는 사람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고자 신이 나서 움직이고, 남들보다 혹은 내 스스로의 기대만큼 못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기 때문이다. 이는 '나'를 지금의 나로 이끌어 준 가장 강력한 동력이지만, 동시에 떨치려고 노력해도 여전히 해소하지 못한 끈질긴 단점이기도 하다. 이런 성향을 알고 있는 나이기에, 나는 내가 보통 수준만큼은 되기를 소망하며 잠실종합운동장 제2수영장으로 향했다.




프리다이빙을 하기 위해서는 숨을 참아야 한다. 자기 자신이 숨을 참는 만큼, 잠수해서(물론 잠수를 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더 깊이 더 오래 물속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에 깊에 들이마신 숨을 최대한 천천히 느리게 소비하기 위해서는,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뇌를 쉬게 해야 한다고 (강사님에게서인지 다른 자료에서인지) 들었다. 한 마디로 상념을 멈추고, 잡생각을 털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종종 영향을 받는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스포츠가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요가나 필라테스 수업을 들을 때조차도, 내 머릿속에서는그날 있었던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재생되거나 아직 못다 한 일들이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무(無)의 상태로 있을 수 있는 방법이 없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프리다이빙을 잘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라도 그런 상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내심 이 시기에 프리다이빙을 경험해 보게 된 것이 나름 운명적이라고 결론지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생각보다 숨 참기를 어려워하지 않았다. 체험 수업에서 강사님의 지도하에 처음 시간을 재 보았는데 2분 넘게 숨을 참을 수 있었다. 결과에 초연하지 못하는 나이기에 기록 자체가 나쁘지 않아 당연히 기뻤지만, 그보다 더 기분 좋았던 것은 물속에서 보냈던 무념무상의 순간이었다. 프리다이빙 마스크를 통해 보이는 풀장의 계단, 프리다이버 혹은 스쿠버다이버가 만들어 내는 물소리와 뽀글뽀글한 물거품 소리, 물속에서 울리는 사람들의 말소리. 그 속에서 나는 멍하니 한곳을 응시하며 수면 위에 떠 있을 뿐이었다. 가득 채워진 물속에서 아주 오랜만에, 무언가가 가볍게 비워지는 느낌이었다. 가뿐했다.



   

    나는 물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처음에야 수심 5M의 잠수풀이 주는 공간적인 압박감을 당연히 느꼈지만, 부력 때문에 웬만해서는 몸이 가라앉지 않고 뜬다는 것을 직접 겪어 보고 나서는 불안함이 많이 줄었다.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 어떤 분들은 첫날부터 잠수를 위한 동작도 잘 따라하시고, 압력평형(물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고막이 안쪽으로 밀려서(?) 귀에 통증이 오게 되므로 고막을 밀어내어(?) 귀를 아프지 않게 해 주는 기술. 흔히 '이퀄라이징(equalizing)'이라고 부른다.)도 얼추 되셔서 5M 잠수풀 바닥을 짚고 오시기도 한다던데, 나는 당연히 그러지 못했다. 나와 함께한 지인도 엇비슷했다. 그래서 더 편하게 우리의 실력에 대한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다이빙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둘 다 여전했다.

   그렇게 나와 지인은 그 이후에 5월에만 잠실종합운동장 제2수영장을 한 번, 성남 종합스포츠센터 아쿠아라인을 한 번, 올림픽수영장잠수풀을 한 번 방문했다. 심지어 프리다이빙 관련 용품을 작은 것부터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하면서, 들고 가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로 운전을 해서 다녀왔다. 못해도 지금 운전 실력의 5할은 프리다이빙 덕분일 가능성이 높다.

   이 정도면 나도 남들에게 당당히 내 취미라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긴 듯하여 기뻤던 것도 잠시, 솔직히 고백하자면 기대만큼 나아지지 않는 내 실력이 어느새 약간의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이제 겨우 한 달 된 '프린이(프리다이빙+어린이)' 주제에 욕심이 많은 것은 알지만, 이 취미를 잃고 싶지 않다 보니 잘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진다. 이를 어찌할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나와는 달리 매사에 덤덤하고(혹은 덤덤한 듯 보이고) 격려와 칭찬에 능하며 물속을 즐기고자 하는 든든한 '버디(프리다이빙에서의 짝꿍)'가 있다. 어제는 평일이었음에도 물이 고팠던 우리는 퇴근 이후에 함께 잠실로 향했다. 차가 그렇게 막힐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호기롭게 운전대를 잡았던 나는, 잠실까지 가는 데에만 1시간 반을 소요했다.

   그렇게 도착한 풀장에서는 또다시 이퀄라이징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5M 수심이 익숙해졌는지 물속에서 연습을 하면서도 '아, 계속 여기서 막히면 어떡하지? 이러다 그만두고 싶어지면 어떡하지?'와 같은 잡생각 조금씩 들었다. 생각을 비울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 내가 프리다이빙에 꽂히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는데, 실력도 아주 천천히 느는 판국에 무념무상의 순간도 더 이상 경험할 수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던 찰나, 갑자기 풀장의 일부 조명이 꺼졌다.

   그 순간 수심 1~2M 정도 깊이에서 잠영을 하고 있었던 나는, 내가 가르고 있던 물의 색깔이 (굳이 비유하자면) 명랑한 하늘색(혹은 파란색)에서 운치 있는 짙은 남색으로 변하는 순간을 온몸으로 목도했다. 순간 감격이 밀려왔다. 숨을 참고 있던 중이라 입을 열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아, 이거지!'라는 한 마디가 머릿속에서 튀어나왔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더 높은 레벨까지 올라가서 언젠가 광활한 바닷속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도 강렬하게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프리다이빙을 접한 지 딱 한 달만의 일이었다.



   

   어제의 감동이, 지금의 마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이러한 글을 써 놓고 그렇게 빠른 시간 내에 흥미를 잃었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히는 때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던 것은, 너무나도 버겁고 힘들었던 지난 5월을 버티게 해 준 것이 프리다이빙이라는 사실만큼은 명확하기 때문이다. 숨을 참고 물속에 들어가 있었던 시간들에, 그 시간들을 기다리고 고대했던 나날이 더해져 5월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살기 위해 숨 참기 연습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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