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달팽이 밥 좀 주면 안 돼?
생명에 대한 책임감
"엄마, 내가 가지고 온 화분에 새싹이 났어!"
"잡초 아냐?"
"아니야, 옆에 새로 똑같이 생긴 게 조그맣게 나왔어! 이거 중학교 1학년 때 가지고 온 건데, 와 대단하다! 안 죽고 살아서 새싹까지 나는 거 보니!"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막내는 연신 싱글벙글이다. 작년에 이사 오면서도 버리지 않고 고이고이 가지고 온 화분이다. 다른 화분들은 다 버렸는데 이것은 자기 것이라고 버리면 안 된다고 막내가 우겨서 지금은 거실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그래도 잊어버릴만하면 막내가 한 번씩 물을 줘서 죽지 않고 살아있다. 식물은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 꽃을 피우거나 씨를 퍼뜨린다고 한다. 정말 가끔씩 물을 주니 종족보존을 위한 본능이 발동이 되었나 보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엄마의 뿌리 옆에 똑 닮은 새끼 잎들이 뾰족뾰족 돋아나 있었다.
이 화분 옆에는 또 막내의 소유물이 되어버린 달팽이집이 있다. 이 달팽이는 한 삼사 년 전에 남편이 얻어온 것이다. 처음에는 두 마리였는데 한 마리는 가지고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만 죽어버렸다.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쨌든 달팽이는 막내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달팽이 키우는데도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 흙도 갈아줘야 되고 가끔가다 똥도 치워줘야 된다. 먹이도 챙겨줘야 되고 피부가 딱딱하게 굳지 않게 분무기로 물도 뿌려줘야 된다. 그리고 가끔씩은 답답한 플라스틱으로 된 집에서 꺼내서 운동도 시키고 환기도 시켜줘야 된다. 이 모든 일을 막내는 벌써 몇 년 동안 묵묵히 해오고 있다.
이제는 베테랑이 돼서 맨 손으로 달팽이 똥도 쓱쓱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나는 비위가 상해 도저히 못할 것 같은데 막내는 얼굴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아무렇지 않게 배설물들을 처리한다. 달팽이집에 깔아줄 흙이 없으면 차를 타고 시장에 가서 사 오고, 물을 뿌려줄 분무기도 멋진 딸기 모양으로 사 와서는 주기적으로 물을 뿌려준다. 그래서 나는 막내가 달팽이를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줄 알았다. 참 독특한 취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하루는 성질이 발동했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히스테리를 부렸다.
"아, 달팽이 징그러워! 엄청 커져가지고 돌아다니고! 맨날 똥만 싸고! 엄마, 저거 가져다가 버리자!"
"저기 공원에 가서 버리고 올까?'
"안돼, 생태계가 파괴돼!"
"....."
나는 무어라고 답을 해야 좋을지 몰라 막내의 화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막내는 혼자 한참을 씩씩거리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며칠 뒤 또 아무렇지 않게 달팽이에게 밥을 주고 흙을 갈아주었다.
이제는 막내가 가끔씩 나에게 달팽이 주도권을 슬쩍 넘기려 한다.
"엄마, 달팽이 밥 좀 주면 안 돼?"
나는 애써 못 들은 척한다. 내가 한 번 밥을 주기 시작하면 달팽이도 내 차지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식물, 달팽이 외에도 또 다른 생명체가 있다. 바로 순둥이라는 반려견이다. 순둥이는 반려견을 넘어 중요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일터에서 혹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식구들은 모두 다 하나같이 순둥이부터 찾는다.
"순둥아! 엄마 왔다!"
"순둥아! 누나 왔다!"
하지만 순둥이의 밥을 주고 아침과 저녁 산책 담당은 바로 나다. 가끔은 막내가 하기도 하지만 얼마나 생색을 내는지 모른다. 그리고 다들 학교와 학원 가느라 바쁘기 때문에 가장 스케줄이 없는(?) 나에게 모든 의무가 떨어진다. 여기다 달팽이 돌봄까지 나에게 돌아온다면 생각만 해도 어깨가 무거워진다.
막내야! 생명체를 거두고 함께 산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다. 지금까지도 잘 해왔으니 앞으로도 잘해나가리라 믿는다. 막내와 달팽이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