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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둥맘 Jul 19. 2020

나도 금슬 좋은 부부가 되고 싶다!

산책 길에 꼭 만나는 부부가 있다. 남편분과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다. 우리 동네 근처에 사셔서 자주 만나는 편이다. 이 분들은 항상 부부가 같이 산책을 다니신다. 서로 일심동체라도 되는 듯이.


남편분: "왜 혼자 나왔어요? 딸내미라도 데리고 나오지?"

아내분: "강아지하고 같이 나왔잖아요. 강아지 있으면 됐지!"

나: "........"


혼자 순둥이(우리 집 반려견)와 함께 산책하는 나의 옆구리가 더욱 시렸다(지금은 한여름인데도 말이다!).  지금 가장 부러운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바로 말할 수 있다. 금슬 좋은 부부라고! 


아파트 대출금 때문에 모델하우스에 간 적이 있다. 신혼부부, 연세 지긋한 노부부 할 것 없이 모두 부부가 함께 와서 대출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서류를 작성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나만 혼자 온 것 같았다. 새 아파트를 분양받는데 대한 두려움에 더해 외로움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는 주말부부! 우리는 삼대가 덕을 쌓았나 보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남편의 직장 혹은 나의 직장 때문에 신혼 초부터 시작됐던 주말부부는 이제 숫자를 헤아리길 포기할 정도로 반복되는 일상이 되었다. 


남편은 아주 무딘 사람이었다. 머리만 대면 코를 골면서 깊은 잠에 빠지는 사람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면서 한편으로는 그렇게 세상 걱정 없이 자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 남편이 변했다. 부부는 서로 닮아간다고 했던가? 나의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이 남편에게로 옮아간 것은 아닌지? 남편은 요즘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한다. 평일에 숙소에 들어가면 통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는 주말에 집에 오면 계속 잠만 잔다. 집에서는 너무 편하게 잠이 잘 온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이렇게 차츰 예민하고 까칠한 나를 닮아가는 반면, 나는 점점 남편의 무딘 모습을 닮아가는 것 같다. 요즘은 머리만 대면 잠이 드는 날이 대다수다. 이렇게 부부는 점점 서로를 닮아가는 모양이다.


남편이 불면증이 심해지니 병원에 찾아갔나 보다. 딱히 약을 써도 잘 듣지 않자 의사 선생님은 우울증을 의심했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이유 없이 불면증이라면 우울증이래!"

"........"

"부인하고 사이가 어떤지 물어보던데."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복수를 해주고 싶었다. 언젠가 책에서 본 내용이 생각난다. 복수에는 적극적인 복수와 소극적인 복수가 있다고. 적극적인 복수는 완력, 독설적인 언어 등으로 직접적인 복수를 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소극적인 복수는 침묵, 무시 등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남편에게 끊임없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과 다투거나 서운한 일이 있을 때 나는 항상 침묵이나 무시로 일관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우리 부부 사이의 대화는 없어져갔다. 그리고 그렇게 수다스럽던 남편은 점점 말이 없어져 갔다.


재작년 교구의 주교님이 부활절을 기념해서 우리 성당을 방문하셨다.

"이웃을 사랑하세요!"

"........."

"이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곁에 있는 남편, 부모, 자녀가 우리 이웃입니다. 남편에게 부모님, 그리고 자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겁니다. 이웃을 사랑하세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귀가 따갑게 듣던 말이었다. 이웃을 사랑하세요! 네네, 그래서 저는 월드비전에도 매달 돈을 내고 있어요. 그리고 직장에 가면 화도 거의 안 내요. 경비아저씨에게도 꼬박꼬박 인사도 잘하고요! 


그런데 그 이웃은 지구 반대편의 얼굴도 모르는 아프리카 아이, 직장동료, 경비아저씨이기도 하였지만 남편이 내 이웃이 될 수 있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소심한 복수의 방편으로 걸핏하면 말 무시하기, 침묵하기로 일관하였었다. 너무 찔렸다. 주교님이 꼭 나를 향해 하시는 말씀 같았다.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남편은 나로 인해 점점 말수가 없어지고 잠도 잘 못 자는 속앓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열쇠는 내가 쥐고 있다.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주중에 내려가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네가 웬일이냐? 전화를 다하고!"

"히히, 그냥"

주말에 올라온 남편에게 이것저것 말을 붙인다.

"같이 산책 갈래?"

"아니!"

첫 술에 배부르냐! 차근차근 한 단계씩 해보는 것이다. 금슬 좋은 부부 되기 프로젝트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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