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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둥맘 Jul 20. 2020

불량 아내라 미안합니다!

고장 난 드라이기

남편이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혁신도시로 본청이  다 내려갔기 때문에 지방발령이라기보다는 본청 진출인 영전인 셈이다. 남편은 혼자서 짐을 다 샀다. 이불이며 옷가지 다리미까지! 나중에는 다이소에 가서 숟가락과 젓가락, 그릇까지 다 사는 눈치였다.


남편은 아주 독립적이다. 다른 집을 보면 아내가 남편의 모든 것을 챙겨주는 듯하다. 내가 몇 년 동안 승진시험을 준비하면서 거의 독서실에만 박혀있을 때부터인가 보다. 그즈음부터 남편은 나에 대한 기대를 접는 듯했다. 주말에는 나 없이 애들을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다. 주말에도 여전히 공부하는 나에 대한 배려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심통이 나면 이렇게 쏘아붙였다.

"내가 홀아비냐?"


내가 몇 년 전 아프고 나서부터는 나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듯했다. 그래서 이번 지방발령 짐 챙기기도 남편 혼자서 다 하는 것이었다.

"내가 뭐 도와줄까?"

"됐어!"

속으로 나는 쾌재를 불렀다. 나도 이것저것 직장 다니랴 집안 살림하냐 애들 신경 쓰랴 힘든 차였다.


지방으로 가기 며칠 전 다급하게 남편이 문자를 보내왔다.

"수건이랑, 빗, 드라이기 챙겨라."

집에서 쓰던 수건 몇 장이랑 빗을 챙겨서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안 쓰고 옷장 속에 박혀있던 드라이기를 꺼내서 가방에 욱여넣었다.


저번 일요일에는 남편이 당근 마켓에서 드라이기를 검색하는 것이었다.

"왜? 드라이기 사려고?"

"고물 드라이기 때문에 감전당해서 죽을 뻔했거든!"

"ㅋㅋㅋ"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찔리는 구석이 있었다. 그때 귀찮더라도 마트에 가서 새 걸로 번듯한 놈으로 하나 장만해서 넣어줄걸! 후회가 되었다.


"아, 이 동네까지 가서 드라이기 받아오려면 너무 먼데!"

남편이 고민하고 있길래 옷장 정리하면서 드라이기를 여러 개 본 기억이 나서 말했다.

"집에 안 쓰는 드라이기 있어!"

"그래? 그럼 그거 가지고 가지 머!"


그런데 막상 남편이 갈 채비를 하고 빨리 드라이기를 가지고 오라고 성화를 하는데 옷장을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 내가 착각을 했었나 보다.

"아유, 미리 확인 좀 하지!"

남편은 화를 냈다.

"누가 마트 가서 드라이기 사 올 사람?"

".........."

딸이 세 명이나 있어도 모두 묵묵부답이다. 남편은 삐쳐서는 식구들의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그냥 가버리는 것이었다.


몇 시간 뒤 문자가 날아왔다.

"아빠! 도착! 드라이기 삼!"

"당근 마켓에서 샀어?"

"엉, 15000원!"


고장 난 드라이기처럼 남편을 향한 나의 마음도 고장이 났음에 틀림없다. 불량주부에다 불량 아내다. 고장 난 드라이기로 외로웠을 남편의 마음이 떠오른다. 지독히도 무심한 불량 아내와 사는 남편의 애환이 느껴진다. 무심한 불량 아내 덕분에 감전사까지 당할 뻔한 남편의 쓸쓸한 마음이 느껴진다. 오늘은 전화라도 한 통 해줘야겠다. 불량 아내라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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