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어른들, 2편.
나는 꿈이 있었다. 부드럽고 다정하지만, 마음의 심지는 아주 꼿꼿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 그저 착하고 온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물렁물렁하고 물러터진 사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갈등을 회피하는 사람.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아 잘못된 일에 입을 닫는 사람.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늘 화가 나있는, 날카로운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분노가 필요할 때를 분별하여 단호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단호해져야 하는 상황에서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그런 상황들을 분별해 내는 시선도 있어야 하며, 단호할 수 있는 내면의 힘도 있어야 한다.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도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 아니, 이건 어떻게 가능할까?
꿈은 꾸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삶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럭저럭 살던 어느 날, 그렇게 사는 사람을 만났다. 부드럽고 단단한 사람, 지영. 곁에 있는 이들에게 한없이 포근한 사람이지만, 삶에 대한 태도와 그 마음은 어찌나 곧고 단단한지. 그 두 가지 면모가 어쩜 저토록 한 사람 안에 잘 녹아있는지.
지영은 내가 결혼을 결심하는 데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본디 결혼을 그리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때문에 내가 결혼소식을 주변에 알렸을 때, 많은 지인들이 나의 결혼소식을 ‘의외'로 여겼다. ‘결혼 안 할 것 같이 생겨가지고’, ‘네가 결혼을 할 줄은 몰랐네’, ‘너 비혼주의 아니었어?’와 같은 말을 많이 들었다. 모두 일면 사실이었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결혼제도가 가지고 있는 분명한 한계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결혼제도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결혼제도를 택했을 때 내가 감내해야 하는 것들을 상상했다. 태생적으로 가부장적인 그 제도 안에서 내가 어떻게 온전하게 살 수 있을지 흐릿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결혼을 하기로 결심했던 건, 결혼제도 안에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멋들어지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개개인의 온전함이 유지되는 멋진 커플들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그 커플들 중 단연 내가 애정하는 커플이 지영과 남편 종진이다. 소국 한 다발로 맺어졌다는 지영과 종진을 때로는 멀리서, 때로는 가까이서 지켜보며 ‘저런 것이 결혼이라면 해볼 만 해.’라는 생각을 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소문난 일꾼이자 능력자인 지영, 사진치유작가이자 ‘곁지기'로 불리는 종진. 그 둘은 결혼을 하고 별빛 같은 아이를 낳고 살아내는 순간들 속에서 각자의 존재로 끊임없이, 그리고 온전히 존재했다. ‘결혼을 한 여성'이기 때문에 지영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지영은 국제개발협력 일터에서도 여전히 아주 중요한 역할들을 근사하게 해냈고, 남편 종진과 있을 때 아이처럼 맑게 웃었으며, 아이 리솔이와 있을 때는 보들보들 정다웠다. 지영은 엄마로서, 아내로서, 연구자로서, 활동가로서, 여러 가지 역할들을 넘나들며 유영했다. 물론 삶이 흘러감에 따라 기쁨과 슬픔, 환희와 고통들이 그들의 삶에 속속들이 스며들기도 했다. 하나, 그것은 삶의 희로애락일 뿐 ‘결혼’ 그 자체가 지영의 존재를 해치지는 않았다. 되려 지영은, 남편 종진과 딸아이 리솔의 곁에서 더 맑고 더 아름다워졌다. 저런 것이 ‘함께 살기'이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지영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정말로 눈물이 났다. 게다가 그냥 암이 아니라 표적치료제가 없는 아주 곤란한 암이라고 했다. 신이 원망스러웠다. 신은 왜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을 아프게 내버려 두는지 화가 났다. 그때 지영이 나에게, 그리고 세상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번뜩 알아차렸다. 지영이 있어서 세상의 곳곳이 풍성해지고 있는데, 신은 그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게 아닐까 싶었다.
‘암투병'이라는, 나는 상상할 수 없는 그 고된 여정을 지나가며 지영은 최소한의 항암만을 진행하고 철저한 자기 관리로 암과 싸워내기로 결정했다.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지켜내고, 그 삶을 오롯이 실천해 내는 지영은 역시나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즈음 지영의 집에 방문했을 때, 나는 지영의 집 벽에 붙어있는 하루일과 시간표를 보았다. 철저하게 관리된 식단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그 이후에 호흡, 명상, 산 걷기, 운동 등이 가득 차있었다. 나는 그 시간표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 암과의 싸움을 해내겠다는 의연함과 자신감, 그 틈에 스치는 불안함과 초조함 같은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멸되지 않은 지영의 멋짐과 우아함, 그리고 삶에 대한 애정과 용기 같은 것들. 나는 그 하얀 에이포 용지에 그려진 일과표에서 그런 것들을 보았다. 불안과 희망 사이에서 고되고 외로웠을 투병 시간을 견뎌내고 싸워내며, 때로는 남편과 주변이들에게 되려 한껏 웃어 보이며 이들을 안심시키기까지 하는 용기 있고 단단한 사람이 지영이었다.
용기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살면서 ‘용기'라고 하지만, 그 용기가 나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탓에 결국에 아집과 고집에 불과한 경우들을 많이 보았다. 비좁은 용기는 나와 곁에 있는 이들을 상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삶에 꼭 필요한 용기만 갖고 살자고 생각했다. 지영은 그런 용기를 보여줬다. 아무 데나 엄하게 용기 내지 않고, 꼭 필요한 곳을 향해 흐르는 용기를 말이다.
사실 암투병과 별개로 지영은 진작부터 이러한 용기를 꼭 필요한 곳에서 뽐내는 사람이었다. 국제개발협력 영역에서 지영은 잘못된 제도와 정책, 문화 등에 대해서 날카롭고 엄중하게 비판의 날을 세웠다. 아주 촘촘했고, 논리적이며, 또 끈질겼다. 동시에 사람과 세상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깃든 비판들이었다. 그저 좋은 게 좋은 ‘따뜻한 사람'이 아닌, 꼭 필요한 곳에 날 선 용기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암투병의 과정에서도 드러났을 뿐, 지영은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다.
지영의 보드라움과 단단함이 함께 얽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지영과 지영의 아이 리솔이, 그리고 다른 이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리솔이가 낯을 가리는지 부끄러워서 지영의 뒤로 숨어 칭얼거렸다. 저녁식사 위에서 오고 가는 어떤 대화 중, 누군가가 물었다. “리솔이가 예민한 편인가요?”. 지영이 대답했다. “리솔이는 예민한 편에 속하죠.” 그리고 잠깐의 침묵 후, 지영은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사실 예민하기보다는 섬세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요즘 세상을 보면, 예민하지 않은 것보다 예민하게 사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아요. 내 곁에 있는 것들을 더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나는 그 장면을 아주 진하게 기억한다. 리솔이를 향한 따뜻한 사랑, 보드라운 마음. 지영은 아이의 기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기질을 고유하게 받아들이며 세상을 사는 법을 이야기해 주었다. 누군가가 “예민한 아이"로 이름 짓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던질지도 모르는 순간, 지영은 그것을 우아하게 “섬세한 아이"로 재조명했다. 그렇게 리솔이는 세상을 섬세하게 대할 줄 아는 아주 멋진 아이가 되었다. 누군가를 향한 단단한 사랑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렇게 바꿔내는 힘이 있었다.
이 글을 쓰며 떠오르는 시 한 편이 있다. 노르웨이의 시인 올라브 하우게의 <야생 장미>이다. 하우게는 그의 시에서 이렇게 썼다.
꽃노래는 많으니
나는 가시를 노래합니다.
모두 꽃을 향해 노래할 때, 가시를 바라보는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 동시에 따뜻한 마음으로 가시를 향해 노래 한 곡 불러줄 수 있는 사람. 가시를 향한 지영의 노래가 아주 오래오래, 그리고 여기저기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