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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안녕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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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May 23. 2024

선재야, 나도 그래...

세상을 살면서 가장 후회되었던 순간. 

요즘 여기저기 선재가 난리다. 그 인기를 실감하듯 어제, TV 프로그램 유퀴즈에 선재역을 맡은 배우 변우석이 출연했다. 요즘 그에게 푹~ 빠져있는 내 친구 나리의 비명 소리가 저 멀리 거제도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변우석은 모델일을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의 서사를 쭉 들려주었다. 형편이 좋지 못해서 좁다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있는 2층 집에 살았는데,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와의 추억이 많다고. 나중에 편찮으시던 할머니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던 때, 면회를 갔었는데 그때가 고3이었단다. 피곤하고 잠이 모자란 시절이라, 할머니를 뵙고 나서 차에 가서 잠을 좀 자고 오겠다고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탄 순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그 잠깐. 그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그의 얘기를 애써 무덤덤하게 들으려고 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변우석의 얘길 들으면서 울지 않았다. 그냥 나는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티브이를 끄고, 물 한잔을 마시고, 불을 끄고 침대로 가서 휴대폰 웹툰을 열었다. 아... 재밌다... 재밌다... 나는 안 울 거야....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때는 코로나가 좀 완화된 시기였다. 병원에서 가족들이 세 명씩 들어와 30분씩 면회를 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우리 가족은 줄줄이 짝을 지어 면회를 기다렸다. 멀리서 남편은 달려오는 중이었고.


저마다 면회를 가서 아빠와의 마지막을 카메라에 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둘째 조카와, 내 아들과 함께 아빠 면회를 갔다. 가자마자 카메라를 켜고 아빠와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다.      


증명사진을 찍을 때조차도 얼음이 되던, 카메라를 낯설어하던 아빠였는데. 한 달 만에 만난 딸이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어대니 얼마나 낯설었을까. 그때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온통 자신을 보고 눈물을 글썽이는 가족들을 보며. 아빠는.     


차례로 면회를 끝마치고, 우리는 말 잘 듣는 학생처럼 30분이 지나 병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늦게 도착한 남편이 면회를 들어갈 때, 세 명까지는 들어갈 수 있으므로 누가 함께 들어갈 것인지를 의논했다. 언니와 나는 서로 들어가라며 양보를 하고 있었지.      


나는 들어가기 싫었다. 그냥 그 순간을 회피하고 싶었다. 아빠의 마지막을 한번 더 경험할 자신이 없었다. 아마 언니도 그랬을 것 같다. 우린 다 바보였다. 


형부가 남편과 함께 들어가 아빠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멀리서 왜 왔냐. 시원한 커피나 한잔 해” 

남편에게 농담한 아빠. 그게, 아빠의 마지막 말이었다.      


남편과 형부가 면회를 마치고 나온 후, 우리는 집으로 가 있어야 할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일단 근처 커피숍에서 좀 기다려보자고 했지.  생각해 보면 아빠가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서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이 참 똥멍청이 같아서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난다. 


"아빠의 마지막을 제발 가족들이 함께 있게 해 주세요." 

간호사에게 빌어 봤으면 어땠을까.  코로나고 병원방침이고 뭐고. 모르겠고 그냥 아빠 마지막인데, 평생 볼 수 없는데, 모른 척해 달라고. 제발 아빠의 마지막을 함께하게 해 달라고. 관계자에게 떼쓰고 엉엉 울어 봤으면 어땠을까.     


언니와 나는, 아빠 생각만 했지. 평소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하던 아빠가. 자신의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그런 생각만 했었지... 바보. 그건 배려가 아니라, 똥 멍청이 짓이었어. 


그래도 마지막에는, 함께 했어야 하지 않을까? 아빠의 속마음은. 조금이라도 우리를 더 보고 싶지 않았을까?



'선재 업고 튀어'처럼 타임슬립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는 아빠와 끝까지 인사 나눌 수 있을까? 아니, 아빠를 암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었을까.

    


자다 깨서 문득 생각이 나도. 그때의 우리가 너무 바보 멍청이 같아서. 가슴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라서. 아무리 울어봤자 소용없는 일이라서. 


나는 평생을 가슴에 한으로 그 순간을 기억할 것 같다.     


같은 후회를 가진 이 청년, 변우석이 그래서 앞으로 더 잘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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