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날' 기념 나의 어린이 '마르고' 이야기
아침에 눈을 떴다. 깨톡 깨톡- 가족 단톡방에 사진들이 올라온다. 일곱 빛깔 무지개 풍선 앞에서, 추억의 까무잡잡한 옛날 교복을 입고, 캠핑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앙 깨문 조카가 해사하게 웃고 있다. "높이높이 날아라 행복한(하트) 너희들"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눈에 띈다. '아, 오늘 어린이날이구나.' 나는 눈곱을 떼다 말고 오늘이 어린이날이라는 걸 상기한다.
어린이날. 어린이들이 올바르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고 어린이에 대한 애호사상을 앙양하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출처는 네이버 사전). ‘앙양이 뭐지?’ 읽다 말고 ‘앙양하다’를 사전에서 또 찾아본다. 아, 사기 따위를 드높이고 북돋우다. 어린이에 대한 사랑을 북돋우는 오늘. 어린이날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이탈리아에도 어린이날이 있느냐 물으니, 여긴 그런 기념일 없다며 재미있어한다. 20여 개월 된 밀라노 조카에게 뭐라도 챙겨줄까 하다가 그냥 말았다. 가다 말고, 오다 말고 요즘의 나는 사람에게 자꾸만 주춤거린다.
SNS에는 까르르 웃고 있는 어린이들 사진으로 한가득이다. 한국의 많은 부모들이 아이 손을 붙잡고 숲으로, 강으로, 키즈카페로, 놀이공원으로, 참 많이도 뛰쳐나간 것 같다. 한국에 있는 조카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났다. 다들 고생이다. 그래도 신나 보여! 이어서 친애하는 팔로워들의 반려견, 반려묘들 어릴 적 사진이 차례로 쏟아진다. 꼬맹이들의 천진함에 신이 나서 구경을 하다가 나는 마르고의 꼬맹이 시절이 훅- 그리워졌다.
우리는 2015년 가을에 처음 만났다. 비자 갱신 문제로 한국에 잠깐 들어가 있던 그 해 여름, 바르셀로나에서 한 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우리 이 녀석이랑 같이 살까?"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사진 한 장.
‘와- 그놈 참 개구지게 생겼네-‘
생각하는 찰나.
“이름은 마르고 Margot.”
“2015년생 잉글리시 불도그래"
“이 녀석, 벌써 내 침대 위에 올라왔어!"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마르고에 대한 문자 폭탄이 쏟아졌다. 아, 내 인생은 이제 이 개와 함께 하는 건가!
그 시절에 쓰던(사실 아직도 씀) 아이폰 SE를 파우치에서 꺼냈다. 오른쪽 상단 귀퉁이가 금이 간 채로 깨져있다. 홈버튼을 눌러보았지만, 묵묵부답. 검은 화면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내 얼굴에 화들짝 놀라 얼른 충전 케이블을 찾아 꽂아둔다. 인스타그램을 연다. 종종 스토리는 올렸지만, 내가 올린 포스팅을 둘러보는 건 오랜만이다. 아래로 아래로- 쭈욱 내리다가 2015년 무렵 사진들을 발견했다. 나의 첫 포스팅이 마르고였구나. 2015년 10월의 어느 날, 빨간 패브릭 소파 위에 무심한 듯 고고하게 여왕처럼 엎드려있는 녀석, 나의 마르고. 그 뒤로 보이는 기나르도 Guinardó 집의 거실 풍경. 모든 그리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때의 나는 SNS에서 쏟아졌다가 흩어지는 말들에 꽤 지쳐있었다. 그 시절에 유행하던 SNS 계정을 모두 끊었다. 그러다가 마르고를 만나면서 고심 끝에 다시 시작한 게 인스타그램이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까? 내 생애 처음 이렇게 개구진 녀석을 만나서 나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그게 벌써 7년 전 일이다.
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밀라노 삼촌네를 거쳐 바르셀로나로 온 녀석. 나이를 물으니, 태어난 지 6-7개월쯤 되었을 거라고 한다.(물론, 그때는 몰랐다. 이 말의 어마무시함을!) 거실에서 빛나던 빨간 패브릭 소파는 사방에 솜털을 풀풀 흩날리다가 얼마 못가 앙상한 다리뼈를 드러내며 처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가 나기 시작한 마르고는 집에 있는 온 가구의 다리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논밭을 떠도는 들개나 집 마당에 묶여있는 강아지들을 보며 어린 시절을 멀뚱하게 보낸 나는, 어린 개와 한 집에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정말 무지했다). 하루 종일 온 집안을 헤집어 놓고 숨을 헥헥 거리며 웃고 있는 녀석의 기개에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마음으로 마르고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얼마 전에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을 읽다가 이런 문장을 만났다.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계속 읽다 보니 같은 의미의 문장들이 몇 번 더 나온다.
"행복만이 유일하게 과거를 이길 수 있어요."
요즘 내가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으면 마르고는 어슬렁어슬렁 책상 밑으로 다가와 내 무릎 사이를 제 얼굴로 비집고 들어온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나는 의자 높이를 최대한 낮추고 앉아있던 바닥을 톡톡 두드린다. 마르고가 폴짝 뛰어 내 엉덩이 뒤 쪽으로 자리를 잡고 눕는다. 마르고 무릎에도, 내 허리에도 안 좋은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어쩔 수 없이 또 당하고 만다. 머지않아 사춘기 남자아이가 낼 법한 코 고는 소리가 들리고, 동그란 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기운을 위안 삼아 나는 안심하고 다시 일에 몰두한다.
살면서 이런저런 사람들과 나눈 추억이나 경험, 마음과는 단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마르고와 정말 많은 것을 함께 했다. 내가 가장 밑바닥에서 뒹굴 때, 타지에서 먼지처럼 떠돌 때, 정처 없는 마음을 나도 잘 몰라서 울고만 있을 때, '이런 게 행복인가' 충만한 마음을 어색해하며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에도 늘 곁에서 손등을 핥아주던 녀석. 그렇게 7년을 함께 했다. 우리는 큰 배를 타고 지중해도 여러 번 건넜지. 용감하고, 용감해서 늘 나에게 용기를 주는 친구. 지금도 내 엉덩이에 앞발을 붙이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마르고를 보면서 나는 다짐한다.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긴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