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1~2년 전부터 농민신문을 구독하고 있습니다. 아직 귀농귀촌도 하지 않았는데 웬 농민신문이냐고요? 귀농귀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후부터 줄곧 드나들던 인터넷 귀농귀촌 카페가 하나(네이버 '지성아빠의 나눔세상') 있는데, 어느 날 그곳에서 예비 귀농귀촌인은 무료로 농민신문을 구독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귀농귀촌 장려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 중 하나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반갑고 감사한 마음에 신청을 하게 되었죠.
농민신문은 농협중앙회의 기관지로 매주 3회 발행이 되며, 우리나라의 농업 전반에 관한 소식부터 먹거리, 건강 등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디지털로도 구독이 가능하지만, 종이신문을 구독하면 여러모로 도시농부에게도 유용합니다. 가장 유용한 건 물론 귀농귀촌에 앞서 우리나라 농촌과 농업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기능이 있습니다.
우선, 종이신문은 작물 재배 시 친환경 멀칭 재료(3겹 정도를 붙여 작물 주변을 덮어주고 분무기로 뿌려준 후 흙이나 돌로 고정시켜 줍니다)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추나 무, 배추와 같은 작물 수확 후, 채소를 종이신문에 싸서 냉장고에 보관하면 더 오래 신선한 상태로 보관할 수 있습니다. 장마철 습기 제거에도 유용하고요.
잠깐 말이 옆길로 샜는데요.
농민신문을 구독한 후 열악한 우리 농촌과 농업 현실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예비 귀농귀촌인의 한 사람으로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바로, 점점 줄어들고 있는 *농가소득에 관한 소식이었습니다.
*통계청에서 말하는 농가소득은 농가가 일년(1.1~12.31) 동안 벌어들인 소득으로 순수하게 농업으로만 벌어드린 농업소득에 농외소득, 이전소득(국민연금, 농지직불금 등)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2023년 5월 21일 자 농민신문에 따르면, 2022년 농업소득은 948만 5000원으로 2021년(1296만 1000원) 대비 26.8%(347만 6000원)나 하락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1000만∼1200만 원선을 유지해 왔던 농업소득이 900만 원대로 떨어진 건 2012년(912만 7000원) 이후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네요.
(출처: 한국농어민신문 2023.8.4.)
기사를 읽자마자 '헉'소리가 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힘들게 일하고도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이 한 달 80만 원이 되질 않는다고요? 물론 농가마다 규모에 차이도 있고 농민 대부분이 이미 고령인 탓도 있겠지만, 순수하게 농업에만 종사해서 벌어들일 수 있는 돈으로는 터무니없이 작아 보였습니다.
통계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농민신문에는 귀농귀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분들이 정기적으로 기고 하는 칼럼란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비슷한 어려움을 토로하시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농촌에서는 순수하게 농사만으로 먹고살기 힘들다', '농업 외 소득으로 부업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등등.
농촌에서 산다고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 먹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기른 만큼 식비에서 어느 정도 절약은 되겠지만,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차는 굴려야 합니다. 아파트보다 난방비도 더 많이 들지만 보일러도 틀어야 하고요.
하지만 돈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모건 하우절의 <돈의 심리학>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는 두 가지를 좋아한다. 부를 만들어 내는 것과 부러움을 만들어 내는 것. 아마 두 가지는 함께 갈 것이다. 또래들을 넘어서고 싶은 마음은 더 힘들게 노력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삶은 아무 재미가 없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결과에서 기대치를 뺀 것이 행복이다."라고 합니다.
물론 지방으로 내려가더라도 크게 농사를 지어 많은 돈을 벌어보겠다는 분도 계시겠지만, 귀농귀촌을 희망하시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도시의 치열한 경쟁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떠나 소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길 소망하실 테니까요. 저도 그중 하나입니다.
여기 그 소망을 직접 실행에 옮기신 분이 한 분 있습니다.
도시농부학교에 다닐 때 강의를 오셨던 많은 분들이 아마도 이미 그러한 삶을 살고 계신 분들이겠지만, 제게는 아무도 그 비밀을 세세하게 공유해주질 않으셨으니 저는 책으로 밖에 그 비밀을 파헤칠 수가 없습니다.
<도시인의 월든>을 쓴 박혜윤 님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4년간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가족과 함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 시골에 들어갔다. 미국 북서부 작은 마을의 오래된 집에서 두 아이와 남편과 산 지 8년째를 맞았다. 실개천이 흐르고 나무가 잘 자라는 넓은 땅에서 살지만 농사는 짓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기적인 임금노동에도 종사하지 않는다."
가족 모두 정기적인 소득 없이 8년째 살고 있다고? 그게 가능해?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제 현실에 생각이 닿았습니다. 3년 전만 해도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대안적 삶을 살아보겠노라 호기롭게 외쳤던 저였는데, 그 사람은 대체 어디 가고 지금의 저는 줄어든 농가소득 통계나 보며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발전이나 목표 없이 대강 살아가면서 이 방식을 지속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결국에는 돈을 더 벌거나 남들이 인정하는 일을 찾아서 발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지금도 그런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꽤 오래, 멀쩡히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이런 방식을 우리보다 더 적극적으로 멋지게 실험하는 이들도 있다."
- 박혜윤 <도시인의 월든> 중에서
경험이 쌓이고 견문이 넓어지며 제가 귀농귀촌을 몇 년째 고심하는 이유가 점점 더 명확해지는 듯합니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나 박혜윤 님처럼, 저 또한 생계를 정직하게 꾸려나가면서도 나 자신을 위한 일들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잃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럴 수 있어서 반농반X의 삶이 좋았던 거고요.
재미나게 책을 읽고 있는데 지나가는 아내가 한 마디 하네요.
"또 그런 책이야? 당신 같은 책만 빌렸네?"
암, 이게 나지. 이게 나야...
<일하는 마음>이라는 책을 쓰기도 한 제현주 님은,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란 책을 번역하고 소개하면서 옮긴이의 글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다른 세상은 가능할까? ... 마치 다른 세상이 가능한 듯이 요구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존재할 때만, 비로소 다른 세상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귀농귀촌의 미래는 불투명합니다. 제가 언제, 어디로 내려가게 될지도 불확실하고, 내려가서는 또 어떻게 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서 상상의 나래만 펼칠 뿐이죠. 아내의 마음도 아직 100% 얻지 못했습니다. 80만 원은 말도 안 되게 너무 적은 액수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저는 귀농귀촌을 꿈꾸는 것만은 멈추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야 또 다른 세상의 가능성이란 문이 제게도 열릴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