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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수토 Oct 01. 2021

비둘기

강아지는 귀가 가려우면 자기 뒷다리로 귀를 긁을 수 있다. 비둘기도 그걸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프랑스 와서 알았다. 여기는 어디에나 비둘기가 탑골 공원만큼 많다. 생긴 건 한국 비둘기와 똑같은데, 성격이 많이 다르다. 막내 말에 의하면 한국 비둘기는 잘 뛴다(?)고 하는데 - 아마도 애들이 위협을 가하면 뛰어 도망갔는가 보다.  그렇지만 이 프랑스 비둘기들은 위협을 가해도 약간 도망가는 시늉을 하고 만다. 도착한 첫날부터 비둘기 시체를 두어 구 봤는데 아마도 그 여유로운 품성 때문에 교통사고도 많이 당하는 것 같았다. 물론 새니까 날긴 한다. 그렇더라도 닭보다 조금 높이 더 뛰는 수준으로 낮게 날아서 얼굴 옆을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나는 비둘기와 부딪힐 각오를 하고 있다.


내가 온 건 8월 말이었고 이제 9월이 막 지나간다. 날이 좋아 그런가, 길에서 바게트를 먹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 이 도시가 아주 지낼 만 한지 수컷 비둘기가 자기 몸을 부풀리고 암컷에게 구애하는 것도 너무 많이 봤다  그 뾰족한 한 발로 서서 다른 한 발로 자신의 목덜미를 긁는 비둘기도 나를 놀라게 했지만 가끔 알 품은 것처럼 다리가 안 보이게 주저앉아 있는 비둘기도 참 낯설었다. 한국과 여기는 비행기로 날아도 12시간이 걸리니, 도무지 비둘기들의 유전자가 섞일 리는 없고 함께 사는 사람들의 행동 또한 이토록 다르니, 같은 동물이라도 이렇게 다른 문화를 가졌으려니 한다.


이곳은 날씨가 퍽 변덕스럽다  오늘도 해가 나다가도 갑자기 천둥도 치고 비가 막 내리길래 신기해서 내다보는데, 비둘기들도 파리의 오스만식 건물 처마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비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나는 만약 한국 비둘기가 이곳에  도착한다면 느낄 낯설음을 생각해봤다. 바게트는 참 맛있는데 동료들은 참으로 게으르구나.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저러게 돌아다다니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구나. 목덜미를 긁는 연습은 나도 좀 해봐야겠다. 더 적응하면 친구도 만들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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