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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수토 Dec 11. 2021

아보카도

지난해에 아보카도를 길렀다. 아보카도 씨에 싹을 틔우는 방법은 이렇다. 일단 아보카도 씨의 얇은 껍질을 벗긴다. 그리고 이쑤시개 두 개를 찔러 넣어서 마치 팔이 달린 것처럼 만든 다음, 물이 담긴 컵에 반쯤 잠기게 걸쳐놓아야 한다. 수 일이 지나면 껍질이 갈라지면서 뿌리가 삐죽 나오는데 그때 화분에 옮겨 심으면 된다. 작년엔 코로나 때문에 집에 처박혀서 안 한 게 없다.


8개 정도 시도했는데 그중에 5개는 싹이 안 나서 버렸다. 싹이 난 3개는 아파트 단지에 화단에 버려진 큰 화분을 주워다가 심었다. 심기만 했는데 쑥쑥 자랐다. 어디서 듣자니 물을 아주 많이 먹는 식물이라 했다. 나는 게을러서 이따금씩 들이부었다. 그래도 잘 컸다. 30cm 정도 컸을 때 겨울이 왔다. 화분이 너무 무거워서 감히 들여놓지 못하고 베란다에 그냥 두었더니 줄기가 까매지면서 죽어버렸다. 뒤늦게 들어놓았지만 살아날 생각을 안 했다. 괜히 섭섭했다.


일단 집에 들어온 화분은 또 너무 무거워서 감히 내놓지 못하고 집구석에 방치됐다. 그러던 어느 날, 싹이 다시 났다. 죽어버린 검은 줄기 옆에 초록색 줄기가 다시 나왔다. 세 개 씨앗이 다 그랬다. 약속한 것처럼 비슷한 시기에 나타나더니 다시 열심히 크기 시작했다. 식물의 생로병사를 가지고 삶의 은유로 삼는 것처럼 비논리적이고 진부한 게 없어 보이더니, 이 소생을 목격하니 누구든 붙잡고 이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에게도 새로운 삶이 가능할지도 몰라요. 


새로 나온 아보카도들도 잘 자랐다. 그렇지만 우리는 프랑스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아보카도 화분을 프랑스로 가져올 수는 없었다. 아파트 화단에 유기할까 생각을 했다. 우리 아파트엔 그런 화분들을 거두어 길러주는 관리실 아저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곧 겨울이 올 것인데, 두 번 씩이나 얼어 죽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시댁에 보냈다. 아보카도 성장 과정을 아이들에게 듣곤 하셨던 아버님이 잘 길러주신다고 했다. 잘 있나 모르겠다.  


프랑스에 오니 사람들이 식물을 참 많이 기른다. 테라스에 화분을 가져다 놓은 집이 아주 많다. 거리에 꽃집도 많다. 마트에서도 꽃을 판다. 참으로 잉여로움을 즐기는 사람들. 나는 없이 사느라 길러본 식물이라곤 아보카도뿐이어서, 아보카도 생각이 났다. 여기서도 한번 길러볼까. 


시장에서 사온 아보카도가 참 튼실하기에 2개를 먹고 씨를 물에 담가두었다. 하나는 실패하고 하나에서 뿌리가 나왔다. 그럼에도 그 씨는 그대로 한참을 물속에 있어야만 했다. 내가 이 나라에서는 흙을 어디서 파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꽃집 앞을 지날 때마다 고민이 많았다. 내가 만약 들어가서 묻는다면 '에스크 부자베 뒤 테흐?' 해야 하는지 '들 라 테흐?' 해야 하는지 '떼흐'인지 '테흐'인지, 이렇게 말한들 알아는 들은 것인지. 등등. 결국 돌아와서 그냥 아마존으로 주문했다. 여긴 택배 받을 때 집에 사람이 없으면 안돼서, 배송지를 신랑 회사로 했더니 신랑이 쌀 포대 만한 흙을 끌고 퇴근했다. 참으로 쉬운 게 없다. 그렇지만 비로소 오늘 그 흙을 한 컵 떠서 씨를 심을 수 있었다. 


학교 끝나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화분을 보여주며 여기서도 우리 아보카도를 기를 거야,라고 자랑했다. 아이들은 심드렁하게 화분이 너무 작다는 의견만 던졌다. 나는 말했다. 당연히 더 자라면 큰 화분으로 바꿔줘야지. 그럴 것이다. 흙은 이미 아주 많고 큰 화분은, 여기 어딘가 팔겠지. 지금은 추우니까 안에서 기르지만 봄이 오면 테라스에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쑥쑥 자랄 것이고, 그럼 우리 집 테라스도, 여기 파리의 이웃집처럼, 식물이 있는 테라스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보카도를 쳐다보며 나도 잘 지내고 있다고 진부하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는 은유로 위안받을 것이다. 오늘 아이들 겨울방학이 시작됐다. 첫 학기를 무사히 마쳤다. 정말이지 한 학기 동안 많이도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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