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을 유지하며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야 하는 이유
오랜만에 본 지인이 만나자마자 얼굴을 빤히 보더니 말했다.
요즘 다이어트해요? 얼굴이 갸름해요.
그 말을 듣고 의아했다.
제가요? 살이 빠져요?
며칠 전, 요가 수업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려고 하니 비가 쏟아졌다. 습관처럼 입었던 레깅스 대신 헐렁한 긴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내리치는 빗물에 축축하게 젖은 바지 밑단을 신경 쓰느라 요가에 집중 못 하는 것보다 반바지가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날의 선택은 탁월했지만 예기치 못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레깅스를 입고 요가를 할 때는 탄력 있는 옷감이 군살들을 잡아줘 잘 느끼지 못했는데, 맨다리에 셀룰라이트가 슬라임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아! 이래서 레깅스를 입는 거구나! 출렁이는 셀룰라이트 신경 쓰느라 요가에 집중하지 못했다. 다음번에는 반바지를 입고 가서, 레깅스를 챙겨 와 갈아입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중년이 시작되면서 이곳저곳에 변화가 생긴다. 흰머리, 주름, 탄력 저하, 곳곳의 통증... 그중에서도 나를 제일 괴롭히는 건 군살이다. 신진대사가 느려지면서 한창때에 비하면 식사량을 반으로 줄였는데도 곳곳에 살집이 붙는다. 20대까지만 해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축복받은 체질이구나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살았다. 늘 저체중이었고, 옷은 XS나 S에서만 골랐다. 그런데 마흔이 넘으며 알게 됐다. 난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 아니었다. 게다가 근육은 없고 지방만 몽실몽실한 체질이었다. 본격적인 노화가 시작된 후 기초대사량이 떨어지면서 S 사이즈를 벗어나 M 사이즈 옷이 늘어나고, 몸무게 앞자리 수가 바뀌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떡볶이, 치킨 같은 좋아하는 음식을 멀리하고 운동도 시작했다. 하지만 효율이 떨어진 몸뚱이는 현상 유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몇 달 전부터 간헐적 단식을 시도했다.
저녁을 먹은 후 다음 날 점심때까지 그 어떤 음식도 먹지 않는 18:6 단식을 기본으로 종종 24시간 단식도 병행했다. 숫자에 일희일비하지 않기 위해 매일 체중계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만 몸무게를 확인했다. 먹는 양도 줄이고, 채소와 단백질 위주의 건강한 식사를 하며 운동까지 병행하니 금방 결과가 나타날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주인을 닮아 미련한 몸뚱이는 쉽게 군살을 떨어내지 못했다. 먹는 양은 줄었는데, 공복 시간이 이토록 긴데 체중계의 숫자는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0.1kg이 늘었다 빠지기를 반복했다. ‘그래 조금 전에 먹은 물 때문일 거야.‘, ’ 그래 화장실을 안 다녀와서 그런 걸 거야 ‘ 실망하는 나를 다독였지만, 기대만큼 줄어들지 않는 체중계 숫자에 자포자기 상태가 됐다.
그런데 나의 이런 노력과 실망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의 눈에 결과가 보였다니 놀랐다. 매일 거울을 보며 눈으로 체크하는 나는 느끼지 못하지만, 오랜만에 본 사람의 눈에는 그 차이를 느꼈나 보다. 눈에 보일 만큼 체중이 확 빠진 게 아니니 지금은 정체기라고 생각했다. 정체기라고 하던 것들을 멈추고 나자빠지기보다는 느리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 까마득한 미래의 결과를 열망하는 대신 눈앞 하루하루의 루틴을 유지하고, 가던 길 가기. 이렇게 영원할 거 같은 정체기를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했다.
어디 체중뿐일까? 요즘 내 삶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정체기’다. 커리어도, 인간관계도, 글쓰기도, 통장 잔고도, 하다못해 브런치 구독자 수까지... 대부분 제자리걸음이다. 모든 게 얼어붙은 듯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는 것처럼 막막하고 갑갑한 상황이다. 답 없는 문제를 푸는 답답함이 매일 나를 덮친다. 그래도 루틴을 유지하며 가던 길 가기로 한다. 다이어트 정체기를 빠져나온 것처럼 멈추지 않고 뭐라도 하다 보면 어느새 정체기에서 벗어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안고 오늘도 그냥 이렇게 쓴다. 지금은 제자리걸음처럼 보여도 먼 훗날 돌아보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이라는 걸 이제는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