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입문자들 관찰기
매년 그렇듯 8월이 시작되자 요가 센터는 신규 회원으로 붐빈다. 마치 새해 첫 주의 헬스클럽처럼 새 얼굴들이 가득하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 맨 앞줄 오른쪽 끝에 앉아 거울로 신규 회원들을 관찰하는 게 요즘 내 즐거움이다. 초보였던 시절을 지나 4년 넘게 이곳에서 수련 중이다. 파도처럼 밀려왔다 수증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무수한 신입을 봤다. 다른 센터에서 수련하다가 온 사람을 제외하고 요가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 슬쩍 미소가 퍼진다. 그 재미에 빠져 꾸준히 요가 꿈나무들을 관찰하다 보니 공통점이 보였다.
이제 막 요가에 입문한 사람 중 처음부터 복장을 갖추고 오는 사람은 드물다. 나도 그랬다. 안 맞아 그만둘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요가 전용 옷을 사기 애매해 일단 집에 있는 옷을 입고 온다. 넉넉한 트레이닝복, 면 티를 입은 채 수업을 들으러 오니 살짝 민망하다. 동작을 따라 하다 보면 너덜거리는 옷자락이 거추장스럽고, 땀에 젖어 축축하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발목이 조이는 가벼운 요가 팬츠를 제외하면 레깅스에 브라톱이나 몸에 붙는 기능성 티셔츠를 입고 있다. 처음에는 그렇게 입는 게 멋을 부리려고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요가를 해 보면 안다. (물론 몇몇은 SNS 업로드용 옷차림도 있겠지만) 자세가 바로잡혔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몸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땀 배출이 잘 되는 옷이 좋다는 사실을. 처음 한 주 정도 집에 있는 편한 일상복을 입고 오던 사람도 어느새 스포츠 브랜드 레깅스와 탑 차림으로 앉아 있다. 그건 어느새 요가에 슬며시 빠졌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센터 분위기나 선생님 방식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다니는 센터는 수업 전 20분 전에 가도 문이 열려 있다. 여유 있게 온 회원들은 매트 위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명상을 겸한 쪽잠을 자기도 한다. 수업 시간이 다가오면 대부분 느긋하게 몸을 풀며 수업을 준비한다. 새로 온 회원들은 막상 일찍 와도 뭘 해야 할지 모르니 핸드폰도 봤다가 거울로 워밍업 하는 다른 회원들을 흘깃 훔쳐봤다가, 깨작깨작 스트레칭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얼굴에는 이 말이 쓰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난 누구? 여긴 어디?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다” 자기 집 안방처럼 편안하게 몸을 풀며 각자의 방식으로 수업 준비하는 숙련자들 사이에서 초보의 존재감을 뽐낸다. 병아리 회원들은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둥둥 뜬 채로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발라아사나, 마카라아사나, 말라아사나, 사바아사나? 북쪽 마녀가 외우는 주술 같지만 놀랍게도 요가 자세 이름이다. 이 마법 주문 같은 단어가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면 기존 회원들은 자동으로 자세를 바꾸지만 초보 입장에서는 감히 어떤 자세인지 상상도 안 되는 명칭이다. 친절한 선생님들은 신규 회원이 많은 수업의 경우 시범을 보이면서 아기 자세, 악어자세, 화환 자세, 송장 자세 같은 한국식 이름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름만으로 어느 정도 어떤 자세인지 유추가 되는 효과가 있다. 그래도 갓 입문자들에게는 이름만 들었다고 뚝딱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왼발, 오른발이 헷갈리기도 하고, 몸을 앞으로 폴더처럼 접으면 분명 발바닥 앞에서 손목을 잡을 수 있다고 하는 데 안간힘을 써도 발끝도 잡을 수 없다. 눈에 쥐가 나도록 선생님과 옆자리 숙련자들의 자세를 훔쳐보며 따라 해 보지만 허둥거리는 손발과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를 원망하기 바쁘다. 그래서 신규 회원들이 많은 수업은 멀리서 보면 몸 개그지만 가까이서 보면 처절한 몸부림이다.
요가가 운동이 될까? 나도 직접 하기 전까지 요가는 명상과 스트레칭이 주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운동 강도가 있다. 특히 요가의 한 종류인 ‘아쉬탕가’는 근력운동으로 다져진 울끈불끈 한 근육인들도 수업이 끝나면 곤죽이 되어 요가 매트에 널브러질 정도다. 그런데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근육 제로 물살인들은? 단, 1시간의 수업을 마치면 4시간 정도 찜통에 들어앉아 있던 찐빵이 된다. 땀을 내뿜다 못해 흐물흐물해진 상태로 거의 기다시피 해서 센터를 탈출한다.
4년 넘게 요가하면서 무수한 신규 회원을 봤다. 짧게는 1~2번, 보통은 한 달에서 석 달 사이면 결판이 난다. 요가를 계속할지 말지. 100일의 고비라고 할까? 첫 시작을 한 후 석 달 넘게 수련하면 장기 수련생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대부분 그전에 나가떨어진다. 8월 시작과 함께 밀려든 요가 신입생 중 과연 몇 명이나 마의 고비, 3개월을 넘길까? 사람이 많아 매트 간격이 좁아도 좋다.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로 센터 안이 찜질방이 되어도 좋다. 요가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연말에도 요가 센터가 북적이길 바란다. 좋은 건 같이 하면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