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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변잡기

나 같은 사람이 머리 서기를 한다고요?

망상 과잉 인간의 머리 서기 도전기

by 호사


사람에겐 양다리가 멀쩡히 달려 있는데 왜 굳이 머리로 서야 할까? ‘머리 서기 회의론자’였던 나는 남들이 거꾸로 서는 모습을 멀찍이서 구경만 했다. 요가 초보들이 ‘꿈의 자세’라 부르는 머리 서기는 내게 완벽한 남의 일이었다. 자격증을 딸 것도, 강사를 할 것도 아닌 내가 머리서기는 전혀 필요 없는 동작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요가하는 이유는 ‘스트레칭’과 ‘이너피스’였으니까 욕심을 낼 필요가 없었다.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수업 내내 선생님들이 반복하던 말을 충실히 따랐다. 그렇게 3년을 요가에 쏟아부었다. 별 욕심 없이, 조심스럽게. 그러다 오래 함께했던 선생님이 센터를 개원하며 떠나고, 상황이 달라졌다. 의욕이 넘치고, 관찰력이 날카로운 새 선생님은 나를 묘하게 자극했다.


“이 정도 실력이면 머리 서기 하실 수 있는데...

왜 주저하실까?

잡아드릴게요. 시도해 보세요.”


“제가요? 지금? 머리 서기를요?”


순간 내 머릿속에선 무수한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데 겁 없이 시도했다가 쿵 떨어지면? 허리 나가고, 민망해서 여기 다시는 못 나오는 거 아니야? 이제 겨우 정 붙인 이 센터를 떠나 또 다른 요가장을 찾아 헤매야 하는 대장정 시작? 파워 망상인은 상상회로를 과열시킨 채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베테랑 선생님은 나 같은 회원을 수없이 봐왔는지, 이미 다 계획이 있었다.

거절할 틈도 없이 잽싸게 내 팔목을 잡더니, 양손을 깍지 끼게 하고, 어깨너비로 팔을 벌려 자세를 잡아주었다. 깍지 낀 손 사이로 머리를 넣고, 양 팔뚝을 삼각 지지대 삼아 받치고 복근에 힘을 주고 다리를 끌어올리라고 했다. 문제는 내 몸에 복근이 거의 없다는 사실. 아무리 힘을 주려 해도 버둥거릴 뿐, 다리가 들릴 기미가 안 보였다. 그때 선생님이 내 발목을 잡아 자기 어깨에 걸쳤다.


“등이 굽지 않게 쭉 펴보세요.”


영혼까지 끌어모아 척추를 폈다. 등이 펴지자 다리는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해 들렸다. 선생님의 어깨 없이, 오롯이 내 몸뚱이만으로.


“어? 이게 되네?”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 머리로 지구를 들어 올렸다. 요가 시작 3년 만에 머리 서기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채 5초도 버티지 못하고 우당탕 내려왔지만, 5초라도 성공의 맛은 달콤했다. 머리 서기로 거꾸로 본 세상은 참 신기했다. 정수리를 바닥에 대고 다리를 하늘로 뻗으니, 주변 사람들이 손뼉 치며 진심으로 기뻐하는 게 보였다. 소극적인 수강생의 첫 머리 서기 성공에, 선생님의 어깨와 입꼬리는 하늘로 날아갈 듯 올라갔다.

나는 대체로 자기 확신이 없는 편이다. 망할까 봐, 창피당할까 봐, 실패할까 봐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그런 나의 가능성을 먼저 알아본 건 전문가였다. 도전에 인색하고, 변화에 두드러기가 돋는 인간 곁에서 멱살을 잡고, 변화의 시작점으로 끌고 가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안락함을 깨야, 진짜 변화는 시작되니까.


그날 이후 나는 머리 서기를 피하지 않는 사람이 됐다. 물론 여전히 시도 전엔 망상이 폭주한다. 쿵 떨어지면 어떡하지, 민망하면 어쩌지, 괜히 자신만만하게 시도했다가 후회하면 어쩌나 싶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물러서진 않는다. 이상하게도 그 경험이 다른 고난도 자세를 할 때도 자꾸 나를 밀어줬다. 안 될 거라는 확신이 먼저 떠올렸던 내가 ‘한 번 해볼까?’를 입에 올리게 된 건, 정수리를 바닥에 대고 다리를 들어 올리던 그 순간부터였다. ‘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말을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이해했다. 그 후로 나는, 가끔 실패하면서도 계속 올라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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