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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쏭쏭계란탁 Nov 02. 2020

기나긴 겨울의 시작, 썸머타임

글과 그리움

아침에 눈을 뜨니 벽시계는 열시를 가리키고 있는데 폰시계는 아홉시다.


아...썸머타임 끝났구나.


한국에 살 때는 아예 개념조차 없었던 썸머타임. 3월에 시작해 10월 마지막날부로 해제되는 썸머타임은 해가 길어지는 여름에 시간을 한 시간 앞당겨 긴 해를 이용하자는데서 시작됐다. 그러니까 얘네 기준에서는 썸머타임이 해제되는 11월-2월까지가 진짜 시간대인 셈이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집 시계를 한시간 뒤로 돌려놓는데 괜시리 울적해졌다. 어제의 9시가 오늘은 8시가 됐는데, 한 시간을 벌었다는 기쁨보다는 깜깜한 보스턴의 겨울이 시작됐구나라는걸 진짜 확인해서랄까.

10월 30일 가을의 끝자락에 첫눈이 내렸다. 가을은 이제 그만 잊으라는 듯.

또 하나, 썸머타임이 해제되면 한국과의 감정시계가 더 멀어진다. 그동안 한국과 보스턴의 시차는 13시간. 밤낮만 바꾸면 1시간만 빼면 됐다. 그니깐 한국이 밤 10시면 여긴 아침 9시. 물론 내가 활기찬 아침이면 울엄마는 깊은 밤의 시작이고 내가 오밤중 한껏 멜랑꼴리해질 때 울엄만 힘차게 하루를 시작해 그 감정의 결이 반대였지만, 그래도 거꾸로 한시간 차이는 접선할 수 있는 영역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14시간차. 까딱하다 전화할 타임을 놓치면 이미 울엄마는 잠든 후다ㅠ 아차 하는 순간 한국이랑 접선할 기회는 사라진다. 썸머타임제도가 Daylight을 세이빙하건 말건 노관심이고 나에겐 그저 이게 해제되면 한국과 더 멀어져서 싫을 뿐이다. 몸은 미국이지만 내 정서는 여전히 한국을 향해 있나보다.


오늘은 썸머타임이 해제돼 유난히 빨리 어두워진데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한껏 가라앉는 날이었다. 이런날은 독서를 해야지 암. 책장으로 가 제목부터 땡기는 ‘가끔은, 격하게 위로워야 한다’는 책을 꺼내 들었다. 한참 방송에 자주 나오시던 뽀글머리 김정운 교수가 쓴 책인데 중간중간 와닿는 내용이 많았다.


글과 그림, 그리움=긁다


그 중에 오늘 내 가슴을 때렸던 말. ‘글과 그림, 그리움’ 이 세 단어는 어원이 모두 같은 ‘긁다’란다. 즉, 활자로 긁으면 글이 되고 선이나 모양으로 긁으면 그림, 마음에 긁으면 그리움이라는 거다. 크...기가 맥힌 해석이다. 이 그리움이 현실 가능한 일이 되면 그 감정은 ‘설렘’으로 바뀌는데 설렘과 그리움이 공존하는게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이 그리 위대한가보다.

오늘따라 북적거리는 울 가족이 그립다.

그림은 젬병인 내가 요즘들어 자꾸 글을 쓰고 싶어지는게 아무래도 그리워서가 아닐까 싶다. 엄마가, 아빠가, 언니가, 친구들이, 동료들이, 곱창이, 백순대가, 애플하우스군만두가, 제주흑돈가가, 해운대암소갈비가, 우래옥평양냉면이 그리운 오늘이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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