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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Apr 16. 2017

욕망이라는 그 이름

#5 미스 슬로운

영화 ‘미스 슬로운(Miss sloane)’은 슬로운이 로비스트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시작한다. ‘로비는 통찰력에 관한 것이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승자는 상대보다 앞서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상대방을 놀라게 하고 상대가 당신을 놀라게 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곧 국회 청문회 장면이 나오고, 무슨 일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슬로운은 변호사의 조언대로 ‘수정헌법 5조에 따라 말하지 않겠다’라고 뻐꾸기처럼 반복해서 말하다가, 결국 자신의 사적인 부분에 대한 공격이 들어오자 무너지듯이 버럭하고 만다. 변호사는 이후 슬로운에게 엄청난 분노를 쏟아내며 일종의 ‘넌 이제 망했으니 너 알아서 해라’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그리고 이야기는 3개월 전으로 돌아간다.


여성 로비스트는 실제로도 존재한다

초반의 이야기는 약간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로비스트’라는 직업이 공공연하게 존재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저런 직업이 있을 수 있나??라는 의문과 함께, ‘로비=뇌물=범죄’라는 인식을 지울 수가 없어서 저 사람들이 뭘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나도 로비스트의 일을 정확하게 전부 알고 있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동안의 영화, 드라마 등에서 파악한 것들을 통해 알고 있는 미국에서의 로비스트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로비를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물론 다 합법적이라고 보장을 할 수는 없지만). 정경계를 아우르는 인맥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슬로운의 경우처럼 어떤 임무를 가지고 그것을 성공시키기 위해 상대와 전략 싸움을 한다. 친분 쌓기를 위한 같이 골프 치기부터 후원 행사를 진행하거나 모임을 주최하고 참여하는 등의 행위부터 현 상황에 대한 분석, 통계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일까지 전방위적인 일들을 하는 것이다.


딱 듣기만 해도 일의 강도가 장난 아니겠다 싶은데, 실제로 이 일을 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정경계를 오랫동안 남성들이 통치해 왔지만 그 상황이 점점 바뀌고 있는 것처럼 ‘늙은 남성들의 클럽’(Old boys club)이었던 로비스트의 세계도 그 지형이 바뀌고 있다. (2012년 자료에 의하면) 등록된 남성 로비스트는 7720명, 여성 로비스트는 4141명으로 아직 반 정도로 비율적으로는 턱없이 낮긴 하지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로비스트의 평균 계약 금액에 대한 비율인데, 여성 한 명의 경우 $33,289, 남성 한 명의 경우 $26,229, 여성 두 명의 팀의 경우 $23,542, 여성, 남성 한 명 씩인 팀의 경우 $22,992, 남성 두 명의 팀의 경우 $17,855으로 여성 혹은 여성이 포함된 팀의 성과가 남성에 비해 월등히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3년 자료에 의하면) 여전히 여성 로비스트들의 평균 연봉은 남성들에 비해 $600,000나 낮다. 성과는 여성이 더 좋은데 월급은 남성이 더 높다. 아무리 뛰어난 전략가라고 한들 남녀라는 젠더 벽 앞에서는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것인가 싶어 슬퍼진다. 로비스트의 세계에서도 유리천장은 강철 천장인 걸까.


그래도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하니,,, 그리고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슬로운이 유리 천장을 두고 상사와 변호사가 하는 이야기를 입술로 읽어 낸 장면에서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자신의 이야기를 떠벌리고 내세우기 좋아하는 (대부분의) 남성들에 반해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능력이 뛰어난 (대부분의) 여성들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과연 통찰력이란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미스 슬로운의 강력한 매력, 욕망

동일하지 않은 남녀 임금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난 ‘미스 슬로운’ 만큼은 그 법칙을 벗어났을 거라고 강하게 믿고 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니까. ‘이기기 위해서 나를 고용하지 않았냐’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는 분명 자신 있게 최고 연봉을 불렀을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겸손해하지 않으며 자신 있게 최고 연봉을 요청했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만이 그녀의 매력의 전부인 건 절대 아니다.


슬로운의 매력은 영화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더 많아지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2가지만 말해보자면 일단 첫 번째,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라는 점이다. 잘 나가는(업계 최고 수준의 회사인 것으로 보이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작은 회사로 옮기는 것은 엄청난 대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기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도, 낯설어 하지도, 숨기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이기고 싶다는, 이겨야 한다는 그 욕망을 위해서 팀원을 배신하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윤리적인 잣대로 비난할 수도 있는 방법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슬로운 성적 욕망에 대해서도 참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남성 에스코트를 이용하며 자기의 욕구, 어떠한 스킨십을 통해 관계를 만들고 그것으로 인해 안정감을 느끼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언가를 분출해 내고자 하는 성적인 욕구를 표현하고 그것을 해결한다. 그리고 그것의 선을 안다. 철저히 자신의 욕망에만 집중하는 그 모습이 강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리고 두 번째, 슬로운은 ‘자신을 안다’. 자신의 상태, 자신의 장단점, 자신의 성격, 자신의 가치, 자신의 능력 그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컨트롤한다. 그녀가 지속적으로 약을 먹는 걸로 나오지만, 영화 초반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 호텔에서 준비를 하던 슬로운이 약을 다 버리는 장면이 기억나는가? 그녀는 어느 상황에서는 그것에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걸 컨트롤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본 사람들을 알 것이다. 청문회에서 그녀가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정말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계획하고 있었다. 나는 그게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경외심을 느꼈다.



여성들이여, 우리 자신을 ‘무기화’하자

영화 마지막에 변호사가 슬로운에게 ‘당신 자신을 무기화했군요’라는 류의 말을 했는데 난 그 말이,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귓가에 남아있었다.


보통 여성들이 무언가의 역할을 하는 건, ‘희생’이 바탕이 된다. 엄마의 희생, 누나의 희생, 여동생의 희생, 부인의 희생.... 희생을 해야만 어떤 가치를 부여받는다. 피눈물을 흘리며 참고 고통을 감내하며 기다리고 그리고 자신이 아닌 타인의 누군가가 어떤 것을 이루어 내는 것을 지켜본다. 이런 경우가  아니고 무언가의 역할을 위한 ‘무기화’가 되려면, 그동안의 수많은 이야기에서 그려졌듯이, 굉장한 힘과 능력을 가져서 남성과 육체적인 대결을 할 수 있어야 하거나 혹은 ‘성적인 매력’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으로 남성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미스 슬로운’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무기화’했다. 그녀는 엄청난 노력을 통해 자신을 파악하고 타인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뛰어난 통찰력과 치밀한 계획으로 자신을 엄청난 무기로 만들어냈다. 그녀는 육체적인 힘으로 남성들을 제압시킬 필요도 유혹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슬로운은 그 ‘무기화’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무기화는 자신의 욕망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벽하게 성공했다.


모든 여성들이 슬로운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슬로운은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긴 했지만 완벽한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 그녀처럼 삶을 살기란 굉장히 힘들 것 같기도 하다. 모두가 그녀와 같은 엄청난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도 하고.


내가 슬로운에게 배운 점이 있다면 나의 욕망, 나의 목표에 대해서 자신 있게 덤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다른 누구 것이 아닌 ‘나의 욕망, 나의 목표’를 명확히 가지고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윤리적, 도덕적 잣대를 무시해 버리라는 건 아니지만 그 윤리적, 도덕적 잣대란 무엇인가? 무엇을 기준으로 두고 있는가? 그것은 올바른 기준인가?라는 물음을 계속 던질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미스 슬로운이 영화 속의 어떤 캐릭터로만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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