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과를 하기로 결심했다.
선생님은 전과자
흔히 고등학교 이과에서 문과로 바꿀 때 '전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한 사람을 '전과자'라고 한다. 필자는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과 과학'만' 좋아했던 뼈 속까지 이과였던 학생으로 영어나 사회는 영 잼병이라 고3 때 담임 선생님이 불러다 '이제 영어 공부만 해라'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다. 근데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것을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결국 본인은 어찌어찌 수학교육과를 나와 임용을 거쳐 평범한 수학 교사가 되었다. 당시 경쟁이 치열했던 임용고사는 3차까지 치러졌고, 긴 수험 생활의 상흔으로 20대 후반에야 교사가 된 나에게 지루한 쳇바퀴와 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쉽게 모든 것을 다 얻는 분들이 있더라. 쉽게 시험에 붙고 쉽게 무언가를 얻고... 능력의 문제도 있겠지만 일단 한 번의 시험으로 좌지우지되는 고시의 영역에서는 '운'의 작용이 필수적이다. 필자는 운이 '지지리'도 없는 편이고 때문에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일이 그렇게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긴 터널을 지나 그래도 무언가 얻는 것은 있다. 그 긴 터널 사이에 넘어지고 깨지고 아파하던 나는 아무도 볼 수 없지만 단단하게 굳어 내 삶이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게 해주는 것 같다. 다만 주변에 누군가 긴 고시를 준비한다면 '시험'에 잘 맞는 유형의 사람이 있으므로 본인이 일단 그에 적합한지 알아보고 준비하라고 해주고 싶다. '시험'보다는 '실전'에 유리한 사람들은 어쩌면 바로 취직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서론이 길었다. 여하튼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얻은 자리는 '교편'을 잡은 자리라기보다는 학교 내의 행정 업무를 하는 일반 직장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직급이 없으니 나이로 상명하복이 정해지고 초임은 밥이 되어 엄청난 일복에 시달렸다. 그것이 4-5년 갔던 것 같다. 그 뒤로는 어려서 일하라는 이야기는 잘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밥값을 하는 교사라는 이유로 일이 적은 적은 없었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애교 있고 적당히 휴직 쓸 줄 아는 교사가 사실 이 바닥의 가장 노른자가 아닐까, 8년 차 교사가 되니 보이는 교직의 세계는 그렇더라. 그런데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학교는 쓸데없는 업무가 많다. 그것은 몇십 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교과일수록 심하며 그런 교과가 모두 뭉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승진 가산점을 위한 교사들이 모이면 어떻게 되는지 조금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 같다. 잘해야 하는데 잘하지 못하는 고만고만한 일을 엄청나게 만들어 내어 실적을 찍어내었다. 그 안에서 정말 학생을 위한 연구나 교육은 찾을 수 없고 그냥 서로의 실적과 인맥을 위한 작업만 보일 뿐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소위 '선배'라는 분들이 만들어 둔 청소년 단체, 아무도 보여주지 않는 참관 수업, 서류에만 거창한 뜻 모를 행사들... 반면에 수업은 반드시 교과서대로 해야 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나 새로운 시도는 '인맥'이라는 것이 받쳐주지 않으면 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었다. 감히 튀어서도 안 되고 감히 새로운 것을 시도해서 주변의 교사들의 능력을 시험에 들게 해서는 안 된다.
시험의 영역이 사라진 교직에서는 온갖 정치만 난무하고 있었다. 어차피 무엇을 하든 월급은 같으니 월급 받는 일에는 적당히 하고 몇 자리 없는 교감을 위한 승진 가산점을 위해 손을 비비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이왕 사는 인생이라면 내가 거치는 시간들이 라면 남들에게는 똑같은 가치라도 나에게는 더 가치롭고 싶다. 이용만 당하고 맞지도 않는 정치질 말고 '교사' 답게, '사람' 답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전과를 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