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전과자
수학에서 컴퓨터로 전과를 결심한 나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첫번째, 컴퓨터 교육과 대학원을 나온다.
두번째, 개발자를 하든 컴퓨터 교사를 하든 선택한다.
호기롭게 계획을 세운 나는 여기 저기 대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한 법. 당시 컴퓨터 교육과에서 2급 정교사를 주는 조건은 컴퓨터 관련 학부를 나와야 하는 것이었다. 대학원마다 다소 다르긴 했지만 교원대도 이화여대, 대부분의 대학교가 대동소이했다. 결국 '학부'를 바꾸지 않는 한 내 앞길은 막힌 거나 다름 없었다. 대학 때 컴퓨터 부전공 신청이라도 할걸... 나는 왜 당시 컴퓨터를 안 좋아했던 걸까.
후회는 항상 느리고 나는 후회보다는 빠른 실행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대학이 있고 굳이 휴직을 하지 않아도 학사 학위를 딸 수 있는 제도가 있다. 바로 사이버 대학과 방송대였다.
나는 곧바로 사이버 대학교에 편입을 했고 곧바로 실망을 했다. 백여만원이나 낸 등록금이 아깝게도 평가를 온라인으로 하는 것이었다. 평가의 난이도나 강의 질을 볼 때 '공부'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다 더 알아보니 한 학기에 30만원 밖에 되지 않는 '방송통신대'가 있었다. 4년제 대학교 멀쩡하게 나와서 방송대에 진학하다니 남들은 참 별종이다 생각했지만 나는 사이버 대를 버리고 방송대에 편입했다.
방송대 컴퓨터 과학과, 다들 시간 낭비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자료구조'와 '알고리즘' 같은 컴퓨터 학문 분야를 채워 주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참 고마운 곳이었다. 무엇보다 방송대에서 나는 어느 교육기관보다도 선진적인 원격 수업의 진수를 경험했던 것 같다.
현재 연세대 공학대학원에 다니고 있지만 이제 막 시작한 연세 사이버(?) 대학원의 강의 퀄리티는 수십년의 노하우를 가진 방송대의 시스템을 따라갈 수 없다. 전문 촬영 장비와 스튜디오에서 녹화하고 온라인 강의에 최적화된 강의 노트와 평가 방법은 지금 줌으로 실시간한다고 자랑하는 우리의 수준을 부끄럽게 만든다. 교수님들의 모든 강의는 사이버에 특화되어 있고 서버와 학습과의 연동도 매우 훌륭하다.
방송대의 가장 좋은 점은 평가는 반드시 오프라인으로 한다는 철칙이다. 현재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 과제로 모두 대체했다고 한다. 문제는 온라인 과제도 그렇게 만만하게 내주지 않는다. 물론 시험 보다는 과제가 점수 따기가 좀 더 편하긴 한다.
방송대는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기 때문에 다양한 직업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현직 개발자들이 많은데 HTML 시간에 웹 개발자가 앉아 있고, DB 시간에 DB 개발자가 않아 있는 경우도 종종, 아니 많이 있었다. 그래서 C, Java, HTML 같은 개발자가 많이 포진된 프로그래밍 언어 과목은 시험 문제가 정말 정말 어렵다.
하지만 성적우수자들의 커트라인이 매년 높은 것을 보면 한국은 넓고 열공하는 방송대인은 많다. 나도 엄청 열심히 공부한 학기에 성적 증진 장학금을 받기는 했지만 전액을 주는 우수 장학금은 못 받아 보았다. 뭐 30만원 정도 밖에 안 하므로 받아도 안 받아도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받으면 열심히 공부한 것에 대한 격려를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중국어 공부할 때는 심심해서 방송대 중국어 강의를 들었는데 강의 퀄리티도 너무 좋아서 한번 놀라고 오프라인 강의 영상에서 나오는 수강생들의 연령대와 그 열의에 두번 놀랐던 것 같다. 실제 중국어과에 다니셨던 분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중국에 몇 년 살다 오셨음에도 방송대에서의 성적을 받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웬만한 학원보다 좋은 컨텐츠가 많으니 공부하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 도전해보기 바란다.
방송대의 강의를 맛보고 싶다면 유노 캠퍼스(https://ucampus.knou.ac.kr/)에서 2만원만 내면 신청할 수 있다. 굉장히 좋은 강의가 많으니 학부 수준의 퀄리티 있는 강의를 수강하고 싶은 분들에게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