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 수업 대응기, 열네 번째 이야기
오래간만에 원격 수업 대응기를 쓴다. 그동안 원격 수업 장비를 사는 문제 때문에 정말 정신이 없어서 다른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한 것 같다. 필자는 1학기에 원격 수업 장비를 사기 위해 1천8백만 원의 예산을 사용하였다. 우리 부서의 예산뿐 아니라 다른 부서에서 가지고 오고 추경하면서 정신없이 물건을 샀다. 그렇게 1학기 동안 피 터지게 싸우면서 예산을 끌어 왔는데 2학기 말에 난데없이 1천6백만 원의 예산이 뚝 떨어져서 쓸데가 없는데 당장 집행해야만 하는 비운에 봉착했다.
1학기 때 뭐하고 이제 줘서 골머리를 이중으로 썩히는지 모르겠지만, 나라 행정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게 아니겠는가. 돈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야지. 그런 마음으로 넙쭉 받았지만(받지 않을 수 없었지만), 한 달째 장비 때문에 씨름하다 보니 심신이 피폐 해지고 있다. 다른 학교에서는 담당자가 그냥 대충 수요 조사하고 커뮤니티에서 조금 상담한 후 그냥 사던데, 우리 학교는 뭐가 그리 불편한지 수요조사부터 소협의회까지 완벽한 논의를 마쳐야 한단다. 예산을 쓰는데 행정실은 또 얼마나 프로 불편한지 매일 전화통에 불이 났다. 그냥 내가 죄인이다 생각하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피폐한 심신은 방학 때 쉬어 주자.
그래도 결론적으로 여러 테스트와 협의회, 사전 조사를 거쳐 선정한 물품들은 꽤 괜찮은 것 같다. 다 된 밥상을 다시 차리는 것 같아 좀 그랬지만 다시 좋은 밥상으로 바꾸기 위해 이리저리 알아보다 보니, 생각보다 잘 된 밥상에서도 맛없는 반찬이 있더라. 덕분에 심신이 고되기는 하지만 실시간 쌍방향 원격 수업을 한 학기 동안 수행해보니 어떤 장비가 좋더라 하는 노하우 정도는 정리가 되었다. 그래서, 실시간 수업 장비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현실적인 제언을 남겨 볼까 한다.
초등학교와 같이 교실에서 한 사람의 교사가 관리하고 사용한다면 무선 장비도 괜찮다. 하지만 아무리 무선이 좋아도 '배터리 교체/충전'이나 '무선 연결'에 대한 난제가 발생한다. 본교에서는 3-4월에 블루투스 헤드셋을 도입한 적이 있었는데(산 건 아니고 마침 있었다) 윈도우즈 운영체제의 특성상 블루투스 연결을 잡기가 어렵고, 블루투스가 내장되지 않은 본체의 경우 동글을 사용 해도 디폴트가 아니다 보니 연결이 잘 끊어지는 애로사항이 속출하여 결국 모두 유선으로 교체하였다.
무선 키보드나 마우스도 무선은 정말 비추천이다. 블루투스 형이 아니라 동글형이라도 배터리 문제나 분실, 관리의 문제가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혼자 쓰거나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유선을 쓰자. 게다가 무선은 다른 무선 통신 지대(와이파이 등)에서 무선 장애가 자주 발생한다. 열심히 수업하는데 키보드와 마우스 렉 걸리면 정말 한 시간 수업이 악몽이 된다. 그래서 나는 업무용부터 연구용 키보드, 마우스까지 무조건 유선으로 사용한다. 괜히 무선이 좋아 보여서 돈 낭비하지 말고 저렴한 유선 키보드와 마우스를 여러 대 사서 마음껏 사용하다 버리는 것을 추천한다. 의외로 키보드와 마우스는 1-2만 원 대의 저렴한 제품이 오래가고 사용감도 좋더라.
기존 칠판식 수업 때문에 많은 교사들이 분필 가루로 '폐병'을 앓았던 것처럼 원격 수업에서는 교사들이 '귓병'을 앓게 된다. 뉴스에서는 헤드셋을 쓴 교사가 웹캠 앞에 앉아 손을 흔드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그건 원격 수업을 오래 안 해본 교사들의 모습니다. 생각해보자, 통상 교사는 하루 4시간의 수업을 하게 되는데, 그 4시간 내내 헤드셋을 쓰고 수업을 하면 귀님은 괜찮을까? 귀의 모양에 따라서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귀가 헐어서 병원에 간다. 게다가 헤드셋을 여러 명에서 쓸 경우 위생 문제도 발생한다. 따라서 소리는 헤드셋보다는 이어폰을 사용하게 하고(사람마다 귀 모양이 달라서 헤드셋이 나은 경우는 헤드셋을 쓰게 한다) 마이크는 어느 정도 거리에서도 수음이 가능한 방송용 마이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원격 수업에서 가장 난제는 바로 '수음' 문제이다. 결국 강의 전달을 마이크로 해야 하는데 온라인 수업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결정적으로 마이크가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헤드셋이나 이어폰에 내장된 마이크의 경우 수음도 떨어지고 소리가 너무 작다. 결국 강의 내용이 너무 작거나 잡음에 묻혀서 학생들의 귀까지 잘 전달되지 않는다. 한 번은 실시간 수업 자체를 헤드셋을 끼고 수업한 상태에서 그냥 녹화해서 수업을 놓친 학생들을 위해 온라인 클래스에 올렸는데 무척 좋은 헤드셋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잡음이 많아서 강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그 후로는 그냥 좋은 마이크로 다시 녹음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전달력이 좋은 마이크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결국 '(단일) 지향성 방송용 마이크'로 결론이 났다. 마이크에 대해서는 무척 할 말이 많은데 다음에 좀 더 자세히 하기로 하자.
교실에는 초록색 칠판이 있다. 이 칠판과 분필은 교사들의 오랜 벗이자 교편의 상징으로 원격 수업인 요즘도 칠판에서 수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초반에는 칠판 수업을 찍어서 실시간으로 내보낼 수 있는 장비 세팅을 요구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나는 그분들을 위해 장비를 사는 대신 PPT와 PDF, 영상을 이용한 수업 방식을 연수해주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칠판 수업을 학생들이 만족할 만큼의 화질로 찍고 소리까지 제대로 녹음하기 위해서는 교실 당 1천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금액이 필요하다. 한정된 예산으로 모든 교사에게 편리하고 적당한 장비를 보급해주는 것이 정보부의 일인데, 어느 한 교사를 위해 FHD 카메라에 개인용 무선 마이크까지 지원해주는 것은 학교가 EBS 스튜디오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다음에야 불가능하다.
온라인은 온라인, 오프라인은 오프라인대로 적합한 수업 기술과 콘텐츠들이 있다. 결국 본인이 어떻게 취사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헤드셋 하나로도 양질의 수업을 할 수 있고 천만 원짜리 고가의 자비를 갖추어도 이도 저도 안 되는 수업이 될 수도 있다. 시대가 이러니, 교사들도 이제 칠판에서 벗어나 컴퓨터 온라인 상에서 좋은 수업을 만들기 위해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