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 수업 대응기, 열세 번째 이야기
정 부장, 혹시 A고 교감 아나?
방송실 스튜디오 설치 건으로 열나게 회의 중인데 난데없이 교감 선생님의 전화다. 용건인즉슨 A고에서 우리 학교 원격 수업 시스템을 모델로 삼고 싶다는 것이다. 그즈음 담임에, 방송 스튜디오에, 원격 수업 기자재 선정까지 엄청나게 많은 일이 한꺼번에 몰려서 정신없던 나는 '바빠서 힘들 것 같으니 교무나 연구 부장님께 이야기해보세요'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난 건 나 혼자였는지, 자리에 돌아가자마자 A고 정보부장에게 연락이 와서 한번 학교에 와도 되냐 물어본다. 곧 학교 축제에, 무엇보다 어마어마하게 바쁜 시기에 학교에 오다니 아니 될 말이다. 나는 본교의 원격 수업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을 전화로 열심히 설명한 후 오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답을 주었다. 언제 와도 별로 상관은 없지만, 지금은 방송 스튜디오 건이 우선이다. 돈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데 정신없이 노 젓는 타이밍에 남의 노까지 저어줄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남의 배의 사정도 급하다는 것이다.
손님께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나?
방송실 건과 기자재 건으로 교감 선생님께 갔다가 엄청 깨진 것 같다. 집안일 열심히 하고 왔는데 손님 좀 안 받았다고 혼나다니... 지금 몸이 10개라도 부족하니 다른데 맡겨 달라고 말해보았지만 택도 없었다. 원격 수업 세팅을 한 사람은 나이고 그 노하우는 누구도 모르니 나보고 손님을 맞이하라는 것이다. MX 레코드 받아서 메일 서버 구축해 가상 계정 만드는 그걸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인터넷에 찾아보면 다 나오는 걸 왜 여기서 물어보나. 너무 오래전에 했던 일이라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역시나 다시 생각해도 억울하다.
하지만 억울한 건 내 사정이고 나중에는 교장실 회의에까지 불려 가 천정을 보며 일장 연설을 들었다. 다들 말이 길었지만 '외부에서 손님이 오는 것은 학교에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니 너의 한 몸 희생하여 학교를 이롭게 하여라'라는 것이었다. 별로 이 한 몸 희생해 학교를 이롭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더 볶이면 몸과 마음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받기로 했다. 근데 그 사이 혹이 더 붙어서 두 학교가 더 온다고 한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게 이런 심정일까... 게다가 몇 시간 뒤에 오신다는데 준비 시간도 촉박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다음 주에 오시라 하는 건데... 결국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눈물을 머금고 열심히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MX 레코드 받아서, 메일 서버 구축해, 가상 계정 만드는, 그게 얼마나 쉬운데...'
그런 줄 알았는데 다시 해보니 생각보다 복잡한 스텝을 거치더라.(그래서 해달라고 했겠지...) 다시 물어보지 않도록 최대한 자세히 캡처해 자료를 만들어 보니 20 페이지가 넘는다. 클릭하는 곳마다 강조 표시라도 해야 하는데 벌써 마감 시간이 다 되었다. 마지막 페이지 캡처가 끝나기 무섭게 손님이 들이닥친 것이다. 게다가 동아리 시간이라 당장 문 열어 달라고 달려온 아이들까지 정말 정신이 없다. 다른 동아리 선생님께 아이들을 맡기고 손님들을 빈 실습실에 넣고 열심히 노하우를 전수해주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아직도 EBS 온라인 클래스에 직접 찍은 강의를 올리거나 EBS 강사 강의를 쓰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그런데 2학기 개학 전에 갑자기 실시간 쌍방향 원격 수업을 늘리라고 하는 바람에 학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모든 시간을 실시간으로 하기보다는 조례만 실시간으로 하거나 부분적으로 실시간 수업을 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초반에 Zoom으로 한 학교 중 상당수는 매 시간 학생들이 서로 다른 선생님 수업에 접속해야 하는 귀찮음 때문에 흐지부지 되었던 것이다. 우리 학교는 학급 전용 가상 계정을 만들어 교실에 수업 방 호스트를 고정시키는 방법으로 운영하므로 학생들이 옮겨 다닐 필요가 없다. 이런 편리함 때문에 EBS 온라인 클래스에 밀리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결국 같은 기술도 어떻게 시스템을 만드느냐에 따라 활용도가 달라진다. 이런 우리 학교의 원격 수업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손님께서 질문을 한다.
선생님들이 실시간 수업을 거부하지는 않나요?
실시간 수업 방을 열어 놔도 선생님들이 직접 수업하기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많이 하는 핑계가 '완벽한 환경'이 아니라는 것인데, 사실해보면 필요한 것은 헤드셋 하나이다. 수업 자료도 PPT나 PDF, 영상으로 제작하면 칠판도 엄청난 해상도의 카메라도 필요 없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이렇게 원격 수업에 맞추어 스스로 자료를 제작하고 수업을 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의 연수가 필요하다. 우리 학교의 경우 원격 수업 시작하기 전부터 10시간이 넘는 원격 연수를 열어 교사를 참여시켰다. 원격 수업 후에도 IT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선생님들을 위한 오프라인 연수를 열거나 모든 회의를 원격으로 진행하는 등 교사들을 원격 환경에 적응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었다. 결국 실시간 원격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사 연수'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임을 깨달은 손님들은 나에게 그동안 한 원격 연수 자료들을 달라고 요구했다.
사실 1학기 초에도 Zoom을 이용한 실시간 원격 수업을 병행했던 학교들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EBS 온라인 클래스만 살아 남고 나머지는 다 죽어 버렸다. 우리 학교를 제외하고... 우리 학교가 실시간 Zoom 수업이 성공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는 실시간 수업에서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모두 편한 시스템을 고안해 잘 구축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교사 교육에 무척 많은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무엇보다 선생님들의 협조적인 자세가 가장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과 기자재도 안 쓰면 땡이니까. 이러나저러나 결국 사람이 문제고 사람이 답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