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k Display
‘나의 이북 단말기 변천사 (1)’에서 기대와 실망이 가득했던 초창기 이북 단말기에 대해 알아보았다.
당시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점점 전자책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고, 스타트업 리디북스를 위시해 예스 24, 알라딘, 올레이북, 북큐브, 메키아, 교보문고 등 전자책(. epub/. pdf) 공급업체가 늘어나고 있었다. 대부분 스마트폰 어플을 이용하여 콘텐츠를 소비했는데, 사람들이 E-ink 디스플레이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이었고 짧은 소설류는 LCD 스마트폰으로 보는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여전히 E-ink 디스플레이 방식의 단말기에 대한 공급은 전무한 실정이었다. 인터파크 비스킷 이후 한국의 전자책 시장은 콘텐츠는 늘어 가는데 그것을 담을 단말기는 일반 스마트폰뿐이었고 다른 대체 단말기에 대한 수요도 공급도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E-ink 단말기를 간절히 원하던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암흑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암흑기 속에서도 선구자가 나오는 법. 그것은 일반 E-ink 단말기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올리는 것이었다.
당시 아마존 킨들과 함께 라쿠텐에서 이북 단말기인 Kobo 시리즈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저렴하고 적당한 디스플레이를 가진 코보 글로는 운영체제를 Micro SD카드에 심어서 사람들이 쉽게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었다. 외국 커뮤니티에서는 이 코보 글로에 안드로이드 이미지를 심고 커스터마이징 해서 안드로이드 전용 이북 단말기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곧 한국의 커뮤니티에서도 선구자 분이 이를 전파하였다. 당시 눈 아프게 LCD/AMOLED 스마트폰에 코를 박으며 이북을 보느라 고생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편안한 디스플레이로 책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 열광했었고, 다소 복잡하긴 했지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올리는 데 어렵지는 않았다.
당시 코보 단말기는 아마존 킨들만큼 인기는 아니었지만 일본에서 저렴하게 풀리고 있었고 꽤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었다. 한국에는 없는 품목이라 배대지로 사시는 분들도 있었고 일본에 출장 가시는 분들은 필수로 여러 개 쟁여서 오곤 했다. 나도 후자 중 하나를 중고로 사서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를 깔아서 보았다. 하지만 역시 디스플레이 전환속도가 느리고 램도 작고 배터리도 작은 이북 단말기 특성상 딱 맞는 앱을 찾기가 어려웠다. 버전 문제도 있었는데 운영체제를 업데이트해주는 업체가 없이 자가로 모든 걸 해결하다 보니 안드로이드 앱들의 버전은 올라가고 우리의 운영체제 버전은 그대로라 튕기는 문제도 많았다. 그것 말고도 자잘한 문제 때문에 가볍고 최적화가 잘 된 앱들만 설치 및 구동이 가능했는데, 가장 잘 되는 앱이 리디북스 앱이었고 가장 최악의 앱이 교보이북이었다.
리디북스가 지금은 단말기도 팔지만 그때는 안드로이드 어플과 콘텐츠로만 승부하는 스타트업이었는데 이북 단말기에 리디북스만큼 잘 돌아가는 앱이 없다 보니 다들 리디북스 단골이 되는 수밖에 없었고 리디북스를 그렇게 쑥쑥 성장해갔다. 리디북스 외에도 북큐브, 메키아 앱도 준수한 편이었다. 나의 경우 졸업한 대학교 전자도서관을 통해 북큐브를 많이 이용을 했었고 북큐브와 코보 글로로 정말 많은 책을 보았던 것 같다. 물론 그 와중에 야금야금 리디북스 책을 사긴 했지만 그렇게 많은 수준은 아니었다.
이런 앱들 말고도 올레이북 같은 어플들도 사람들은 많이 썼는데 이 올레이북이 통신사랑 연계되어서 꽤 많은 사용자를 점유하고 있었다. 나의 경우 이북 단말기로만 책을 보는 편인데 올레이북은 최적화가 잘 안 되어 있어서 코보에는 잘 돌아가지 않아서 사용하지 않고 가끔 스마트폰으로 무료 콘텐츠를 다운로드하여 TTS를 주로 들었다. 근데 올레이북에서도 사건이 터졌는데, 이북 콘텐츠 사업을 접기로 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올레이북이 리디북스나 인터파크보다 훨씬 규모가 큰 기업에서 운영하는 것이라 그렇게 쉽게, 갑자기 철수를 결정한 것에 기함하며 분노를 표출하였다. 게다가 인터파크는 이북 콘텐츠가 아닌 단말기 사업만 접은 것이었는데 올레이북이 콘텐츠를 접는다니? 이북 커뮤니티에서는 이제껏 본 적 없었던 격렬한 논의들이 이어졌고, 커뮤니티의 대부분이 책을 많이 보신 분들이라 글도 잘 써서 관련 게시글과 댓글들이 재미있고 유익해서 읽다 보면 하루가 다 갈 정도였다.
인터파크와 올레이북 사태를 겪었던 우리들은 ‘이북’을 여태껏 없었던 다른 콘텐츠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이북 같이 DRM이 해제된 이북의 경우 ‘소유’의 개념이 성립하지만, 일반 기업에서 판매하는 이북의 경우 DRM이 걸려 있어서 다른 어플로 볼 수 없으며 이 기업이 망하면 영영 볼 수 없다. 결국, 데이터로 이루어진 이북의 특성상 ‘소유’의 개념은 성립하지 않으며 애초에 우리는 모두 이북 콘텐츠를 ‘대여’ 한 것이었다. 해당 기업에서 인정하는 순간부터 그 기업이 망하거나 인정한 기한까지만 우리는 이 콘텐츠를 ‘소비’(소유가 아니다)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 것뿐이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소유할 수 있는 종이책과는 완전히 다른 콘텐츠가 되며 우리가 읽는 행위를 할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해당 이북을 소비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개념 정의를 하면서 이북의 방향은 결국 아마존 킨들 언리밋과 같은 대여의 형태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지적하였다. 아직 대여 서비스가 발달하지 않은 때라서 그러한 개념이 나에게도 많은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새롭게 다가왔던 것 같다.(향후 그것은 구독 서비스로 현실이 되고….)
리디북스에서도 이를 의식했던 것인지 50년 대여나 100년 대여 같은 사실상 살아 있는 동안 영구적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하되 ‘대여’라는 명목으로 헐값으로 책을 뿌리기 시작했다. 아니 헐값 정도가 아니라 페이백이 되어 그대로 포인트로 받아서 다른 장서를 또 구매할 수 있었다. 사실상 10만 원이면 1천 권의 책을 살 수 있어서 사람들이 미친 듯이 책을 샀던 것 같다. 대부분 잘 안 팔리는 장서류(세계 전집, 대하소설, 역사, 철학 등)들이었는데 그때 나도 몇 백 권씩 책을 저렴하게 사서 아직도 보고 있다. 이런 공격적인 마케팅이 결국 리디북스에게 이득이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소유와 다름없는 영구 대여로 많은 장서들을 보유하게 되는 순간 리디북스가 존속해야 하는 이유가 생기며 이를 위해 보이지 않는 제3의 리디북스 직원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마치 주식을 보유한 마음이 된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렇게 많은 책들을 가지게 되었는데 평소 전자도서관을 이용하던 나도 점점 이북을 사는 데 매우 관대해져서 한 달에 10-20만 원 정도 책을 사는 플렉스 한 여자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