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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츠 Apr 15. 2024

선물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이 멋지다

관계 맺음의 수단

요즘 한창 그림 그리기에 빠져있는 아들이다. 한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에 열광을 한다. 그런데 유튜브 시청을 하루 30분~1시간 내외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외에는 캐릭터를 따라 그리고 색칠하는 데에 온통 신경이 빠져있다. 몇 달 전까지는 레고 블록과 로봇 합체 장난감에 빠져 있었는데 요즘 한두 달은 그림 그리기에 열중이다.


최근에 추가된 행동이 하나 더 있다. 자기가 그리고 색칠한 그림을 오려서, 친구에게 줘야 한다고 꼭 챙기는 것이다. 알고 보니 유치원 친구에게서도 그림을 받는 모양인데, 자기도 답례를 줘야 하는 것인지 또는 먼저 주고 싶어서 그런 건지 참으로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선물을 줘 본 적이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선물을 준 적은 있을까? 좋아하는 친구의 마음을 얻기 위해 챙겨주고, 뭘 좋아할지 고민하는 시간들... 다 큰 성인이 되어서는, 이성에게 주면 무슨 플러팅처럼 보일 것이고 동성에게 하자니 그냥 술이나 사거나 밥이나 사면 되지 선물을 사주는 건 거창한 느낌이다. (생일 선물을 주고받거나, 고마움에 대한 답례 표시 같은 최소한의 것은 당연히 한다. 근데 선물을 먼저 주고-받는 경우는 잘 없긴 하다. 받고-주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하다.)


또는 선물을 주지 못하는 기저에 깔린 생각에는 이런 것도 있지 않을까? 내가 선물을 주고 기대한 정도의 리액션을 받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고민. 다치기 싫어서 먼저 소극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니면, 순수하게 어떤 사람과 더 친해지고 싶다는 의지가 별로 없었던 탓일 수도 있다. 십 대~이십 대 한창 새롭게 교우 관계를 확장하던 그 시기에도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고, 챙겨주는 건 서툴렀던 기억이다.


그래서 아들이 멋있고, 부럽다. 나와는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서 가져다준다-.


친구가 그림을 받고 좋아했는지 물었던 기억이 있다. 딱히 막 엄청 신났다고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지만, 아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내가 좋아해서 한 건데 뭘, 나처럼 안 좋아할 수도 있지 뭐. 이런 걸까?


아들의 선물에는 내가 이렇게나 그림을 잘 그리고, 색칠을 잘한다는 것을 친구에게 자랑하려는 목적도 담겨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선물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친구와 더 친하게 지내고 싶은 수단으로써의 선물에 더해, 자기의 자랑도 조금은 보탤 수 있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자기가 원하고 재미있는 것을 뛰어넘어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것을 챙겨주는 사람으로 커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계속 응원해야겠다.



Image by mamewmy on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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