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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먼아프리카 Sep 16. 2022

미신에는 미신으로

12. 미신에는 미신으로12. 미신에는 미신으로

  잔지바르 지역의 주요 종교는 이슬람교이다. 99% 이상의 잔지바르 사람들이 이슬람 신자일 정도로 이슬람교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잔지바르 시내를 걷다 보면 정해진 시간에 맞춰 이슬람 사원에서 흘러나오는 아잔 (이슬람에서 신도들에게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특히 라마단 (이슬람 신자가 지켜야 할 5대 종교적 의무 중 하나로 한 달 동안 일출에서 일몰까지 금식을 해야 하는 종교행사)을 철저하게 지킬 정도로 이슬람교를 빼고는 잔지바르인의 삶과 문화를 논할 수 없다. 


  잔지바르가 속해있는 동아프리카는 부족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고유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융합되어 스와힐리어 문화가 탄생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토속 신앙이 더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시골 지역으로 갈수록 한국의 무속 신앙과 유사한 주술 문화가 널리 퍼져있다. 그리고 여전히 은밀한 곳에서 주술 의식이 빈번하게 행해지고 있다. 


  음강가(Mganga)는 스와힐리어로 주술사를 뜻한다. 가족 중에 질병이나 불행한 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으면 음강가를 찾아가 그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 음강가에게 닭이나 염소와 같은 동물을 제물로 바치고 특정인을 향해서 저주를 빌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면 법적인 처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음강가를 통해서 영적으로 본인의 원수를 갚기도 한다. 그만큼 음강가의 주술 의식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가면 ‘알비노’라고 선천성 유전 질환을 가진 백색증 환자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케냐의 오지마을에서 백색증 환자를 처음 마주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이 아프리카에 봉사하러 온 유럽인이라고 생각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들이 사회적 소수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알비노들은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지역의 주민들로부터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변변한 일자리를 쉽사리 구하지 못한다. 남들에겐 지극히 평범한 사회 활동조차 그림의 떡일 뿐이다. 심지어 내가 가르치던 시골 마을의 학교 아이들조차 길을 지나다가 알비노를 마주치면 다짜고짜 놀리거나 주먹으로 때리기까지 했다.


  일부 지역에는 알비노의 신체 부위를 갖고 있으면 행운이 깃든다는 미신이 존재한다. 그래서 어린 알비노들의 멀쩡한 신체를 아무 일 없다는 듯 잘라 가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종교적 신앙과는 전혀 상관없다. 오히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인간의 나약한 심리와 관계가 깊다. 종교인의 신분을 떠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우리가 유명한 철학관이나 용한 점집을 찾아가 자신의 미래 운명을 알아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유한한 존재의 인간은 숙명처럼 삶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 사무소 직원들 모두가 신실한 무슬림이었다. 사무실에서 회의하는 중간에라도 이슬람 사원에서 아잔 소리가 흘러나오면 끝날 때까지 모든 행위를 중단해야 했다. 외부에 중요한 업무를 처리하는 도중에도 아잔 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이슬람 사원에 가서 기도하고 올 정도로 종교적 믿음이 강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대부분의 잔지바르 사람들이 ‘참 신앙심이 깊다.’라고 생각했다. 


  바라카의 공금 횡령 혐의를 포착하고 나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른 직원들과 면담을 진행했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도움 없이는 시도조차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가 자주 찾던 시내의 한 음식점에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직원들이 나를 믿고 지지해준다면 함께 손발을 맞춰 의외로 쉽게 바라카의 비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사무소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어. 압둘라의 도움으로 바라카가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너희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바라카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신뢰 관계가 무너진 이상, 바라카와 이전처럼 일할 수는 없을 거 같아. 내 생각에 동의하니? 너희들 의견을 말해줘.”

  나는 바라카의 비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우리도 바라카의 비리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이브라힘이 다른 직원들을 대신해서 말을 꺼냈다. 직원들 대부분이 바라카의 비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아프리카잖아. 너희들이 열심히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덕분에 이해관계자들이 매우 만족해하고 있어. 나한테 고맙다는 말도 자주 하더라. 그러나 정작 현지 직원하고 갈등이 불거지면 종국에는 내 편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이번만큼은 너희들과 한마음이 되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같은 동료 직원의 비리를 파헤쳐야 하는 난처한 처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내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바라카의 행동이 아주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주마가 힘겹게 입을 뗐지만 말을 더 이어가지 못한 채 말끝을 흐렸다.


  특정 직원의 부적절한 행위가 우리 사무소에 유무형의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걸 직원들도 잘 알고 있었다. 나의 문제 제기에도 모두 동의했다. 그러나 선뜻 나와 함께 행동하는 것에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문제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 절대 해결할 수가 없어. 경찰서도 같이 가야 하고 너희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 나랑 함께 행동할 수 있겠지?”

  직원들의 동의를 재차 구했지만 쭈뼛대는 그들의 모습에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행동하기는 힘들 거 같아요.” 

  주마의 사슴 같은 눈에 잠시 걱정과 불안의 눈빛이 내려앉았다.


  “무엇 때문에 나를 도울 수 없다는 거니? 너희들한테 직접 나서서 해결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잖아. 그냥 내 옆에서 힘을 보태달라는 거잖아. 내가 과한 요구를 하고 있는 거니? 너희들의 솔직한 심정을 말해줘.”

  내 감정은 실망을 넘어 좌절로 바뀌어 있었다.


  “어.......저기.......음강가........음강가 때문에 도와줄 수가 없어요.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가 우리를 해코지할지 몰라요.”

  주마의 얘기를 듣는 순간 잠시 내 두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음강가라고? 음강가 때문에 나를 도울 수가 없다고?” 


  우리 사무소에서 가장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인 주마였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처음으로 주술사를 위시한 토속 신앙의 존재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실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종교적 색채 이면에 숨어있는 주술 문화에 기반한 잔지바르식 토속 신앙의 강력한 힘을 직접 목격한 것이었다. 이 일이 아니었다면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이슬람 종교의 프리즘으로 잔지바르 사회를 단순하게 바라볼뻔했다. 


  “그러니까 바라카가 음강가를 찾아가서, 너희들에게 저주를 내려달라고 요청할지도 모른다는 거지?” 

  두려움에 찬 직원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 직원들은 나를 도왔다가 자칫 자신들에게 불어닥칠지도 모르는 주술사의 저주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바라카가 이번 일로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기라도 하면 용한 주술사를 찾아갈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저주를 통해 자신들의 인생을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술사가 저주를 통해 너희들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고 진짜로 믿는 거니?”

  그들은 대답 대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토속 신앙이라는 강력한 믿음에 굴복해서 이번 일을 시작도 하지 못한 채 그냥 포기할 순 없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 직원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이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 묘수를 동원해야 했다. 


  “너희들은 내가 어떻게 해서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왔는지 아니? 나도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한국에서 무당이라고 불리는 용한 주술사를 찾아갔어. 나도 보이지 않는 미래가 두려웠거든. 미래 운명을 물어보니까 그분이 올해에는 내가 무조건 아프리카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더라. 그리고 보다시피 나는 아프리카에 와서 너희들과 일하고 있잖아.”

  모두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한국의 주술사가 나를 아프리카로 보냈다는 말에 깜짝 놀란 눈치였다. 


  “한국에도 음강가가 있어요?”

  이브라힘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잔지바르나 한국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다.

  “당연히 한국에도 음강가와 같은 무속 신앙이 존재하고 있어. 한국의 음강가는 과거는 물론이고 미래까지 내다볼 정도로 엄청난 신통력을 지니고 있어. 아프리카의 음강가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신력이 강해. 잔지바르의 음강가는 한국인 음강가 앞에선 명함도 내밀지 못할 거야.”


  한국인 음강가의 예언에 따라 아프리카에 왔다는 사실이 직원들에게 제대로 힘을 발휘한 듯 보였다. 어두웠던 직원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묻어 나왔다. 분명, 우리 직원들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고 있었다. 


  “너희들은 한국인 음강가가 꽤 강한 신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니? 행여라도 바라카가 주술사를 찾아가거든,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한국인 음강가에게 전화해서 너희들을 향한 저주를 막아달라고 요청할게. 그러니까 너희들은 지금부터 나에게 힘을 실어주기만 하면 돼.”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미소 짓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마디 말을 더 보탰다.


  한국인 음강가가 강력한 주술로 그 어떤 저주도 막아줄 보호막을 제공해 줄 거라는 말에 직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까지 역력했던 불안한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결국 그들은 사무소를 정상화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음강가의 저주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직원들을 종교의 이름을 빌려 비난만 했다면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까? 한때 나는 이방인이라는 우월감이 내 의식을 지배했다. 오만과 편견에 빠져 아프리카 지역주민들의 일상적인 문화와 행동을 천박하다고 무시했다. 그들의 고유한 지역문화를 저급하다고 간주하기도 했다. 대대손손 내려오는 그들의 소중한 문화는 존중받아 마땅했다. 내 인식의 저열성이 문제였던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아프리카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 현지 직원들과의 정서적 일체감이 중요했다. 강한 주술적 믿음은 한국에도 존재한다. 이러한 사실은 부정한 채 우리 직원들이 그런 믿음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편협된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겼다는 사실에 지금도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토속 신앙과 얽힌 직원들과의 소통은 내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해주었다. 다시 한번 사회문화적 맥락과 환경을 고려하여 지역사회를 이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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