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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먼아프리카 Sep 26. 2022

난생 처음으로 고소를 당하다

13. 난생 처음으로 고소를 당하다

  관급공사를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을 보도하는 신문 기사를 접하고는 한다. 그야말로 ‘비리백화점’을 방불케 하는 관급공사는 어디서든 항상 부당한 이권 개입이 도사린다. 대개 수준 미달인 업체가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 2년 안에 마무리되어야 하는 사업이 5년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공사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이 과정에서 건축 인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뇌물을 수수하기도 한다. 그만큼 건축사업을 무탈하게 마무리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어찌 알았는지 돈이 있는 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아프리카의 관급공사도 복마전과 다를 바 없다. 현지에서 건축사업은 관리하기가 매우 어려운 분야 중 하나이다. 그런 연유로 공정한 관리를 위해 현지의 한국 NGO 기관들은 해당 전문가를 직접 채용해서 사업을 진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직원들은 현지 감리사 또는 건설사와 짬짜미를 해서 사익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의도치 않게 건설사업이 난관에 봉착하기도 한다. 성공적인 사업수행을 위해서는 사업관리자의 투명한 관리 감독과 지역 사정을 면밀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리스크를 인식하고 점검해야 한다. 만에 하나 리스크가 발생한다면 현지 정부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시의적절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사업의 최종 수혜자인 지역주민들만이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된다.


  잔지바르 사무소에서 담당한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콰라라초등학교 건축사업 관리였다. 추후 이 사업 모델은 아프리카에서 대표적인 건축사업의 성공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우리는 1단계 사업을 담당했다. 1단계는 1층짜리 교실 14개와 2층짜리 행정동을 건축하는 것이었다. 보통은 주어진 예산으로 1단계를 마무리 지어 현지 정부에 학교를 이양하는 절차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잔지바르 대통령은 한 층을 더 증축해서 추가로 교실 14개를 완공하는 2단계 사업을 지시했다. 추가로 발생하는 공사비를 현지 정부가 조달하는 과감한 결정이 내려졌다. 이렇게 해서 공여국인 한국 NGO 기관과 수원국인 잔지바르 정부가 공동으로 건축비를 분담하는 이상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그야말로 개발협력사업의 성공적인 남북협력(선진국-개도국) 모델이었던 것이었다. 현장에서의 평범한 일조차 일사천리를 허락하지 않는 곳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아름다운 협력모델이었으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때로는 정의와 불의의 싸움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불의의 편에 서면 마음은 불편하지만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신속히 도착할 수 있다. 보고서상에도 문제점이 딱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가려진 진실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정의의 편에 서면 길고 힘든 싸움의 길을 걸어야 한다. 단호한 의지와 담대한 마음가짐은 필수 요소이다. 지름길을 그냥 두고 자진해서 돌과 바위로 가득한 가시밭길을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업을 수행할 때마다 나의 모든 판단 기준은 단연코 최종 수혜자의 혜택 여부였다. 건축 현장에 대한 관리가 소홀해지면 공사 기간도 늘어나고 이와 비례해서 건축 예산도 증가한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책상이나 의자 확보에 쓰일 집기구매비가 현지 건설업자들의 주머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가시밭길의 길이와 범위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내 몸을 내던지기로 했다. 

아프리카의 관급공사 중에서 특히 건축사업은 복마전과 다를 바 없다.

  초등학교 건축사업은 꽤 큰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건축공사를 담당할 건설사는 건축사업 경험이 있는 잔지바르 업체 중에서 입찰을 통해 선정하였다. 하지만 잔지바르에서 감리 업무를 담당해줄 마땅한 감리회사는 찾지 못했다. 결국 잔지바르가 아닌 다른 외부 지역의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사무소의 내부 절차를 거쳐 선정된 건설사와 감리사는 각자 맡은 바 임무에 따라 1단계 초등학교 건축사업을 마무리하였다.


  콰라라초등학교 건축사업은 잔지바르 대통령의 관심 사항이었다. 1단계 건축사업이 끝나자마자 2단계 건축사업을 바로 진행해야 했다. 2단계 건축비는 잔지바르 정부가 지원했지만 사업 관리는 계속해서 우리 사무실이 진행해 나가는 걸로 약속이 되었다. 2단계 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잔지바르 교육부 관계자들과 1단계 사업이 마무리된 현장에 갔다. 학교가 제대로 완공되었는지 학교 내부 시설을 꼼꼼히 점검했다. 투입된 예산에 비해 우리가 예상한 만큼의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아니었다. 시설 내부 곳곳에서 설계도와 부합하지 않는 하자가 발생했다. 


  건축사업의 세부적인 업무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특히 감리사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지를 점검했다. 감리사는 건설 현장을 관리 감독하는 중요한 주체였기 때문이었다. 이따금 불시에 건축사업 현장을 방문해서 진행 상황을 점검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현장에 감리사 측 관계자는 보이지 않았다. 건설사에서 고용한 인부들만이 사업 현장을 분주히 뛰어다녔다. 감리사가 본연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고 업무에 소홀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감리사의 사무실은 잔지바르에서 비행기로 2시간이 넘는 므완자라는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교통비, 체재비 등 행정경비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현장에서 회의를 개최하는 날에만 잔지바르를 방문했다. 실질적으로 현장에는 감리사 측 관리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우리 사무소 직원을 현장 감리 요원으로 활용한 사실을 적발했다.


  현재의 감리사에게 2단계 건축사업을 계속해서 맡길 수 없었다. 2단계 사업은 잔지바르 지방정부의 예산이 투입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다. 사무소 직원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결국 1단계 공사를 마무리한 감리사에게 계약 종료를 통보하는 공문을 보냈다. 감리회사 측도 본인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그렇게 계약은 해지되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잔지바르에서 대규모의 관급 건설 경험이 있는 감리사와 계약을 진행했다. 


  어느 날, 우리 직원이 내 앞으로 도착한 한 통의 서신을 들고 왔다. 평상시에 채용 관련된 일이 아니고서는 서신을 받을 일이 없었다. 봉투를 살펴보니 법률사무소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로부터 온 서신이었다. 서신의 핵심은 계약 해지가 부당하고 손해배상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초등학교 건축사업 관련해서 귀하가 감리사 앞으로 발송한 계약 종료 공문은 조건의 불성취로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계약이 합의에 따라 해지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계약 종료를 통보함으로써 감리사에게 유무형의 손해를 끼쳤다. 따라서 부당한 계약 종료 통보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서신을 접수한 날로부터 2주 이내로 136,000,000실링 (한화 7천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서신을 읽고 난 후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얘지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한국에서도 구경해 본 적 없는 송장을 아프리카에 와서 받아 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뇌가 잠시 멈춰버린 것처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동안 아프리카에서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스스로가 대견할 정도로 잘 버텨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처음 겪는 엄청난 금액의 소송에 그만 정신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아프리카에 오기로 한 지난날의 내 결정을 한탄하고 있었다.


 언젠가 나의 잔지바르 경험담을 전해 듣던 한인 선교사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잔지바르에서 10년 정도 지내야 겪는 일들을 선생님께서는 7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경험하고 계시네요.”

  힘든 문제를 하나 해결하면 약속이나 한 듯 새로운 유형의 문제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 과정에서 고통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이상하게도 살고자 아등바등 몸을 움직일수록 더욱 깊은 곳으로 몸이 빠져들었다. 


  '그래도 이 길의 끝에는 희망이 기다리고 있겠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보며 수십 번 되뇌었다. 나를 위한 주문이었다.


  우선 법률사무소에서 내 앞으로 보낸 서신의 신빙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 직원을 통해 확인한 결과, 잔지바르 법률사무소에서 보낸 서신이 맞았다. 직원에 따르면, 그 법률사무소는 잔지바르에서 큰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현지 정관계를 대상으로 두터운 인맥과 힘을 자랑하는 법률사무소였다.

생애 처음 받아 본 변호사의 송장에는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금이 적시되어 있었다. 

  아프리카에 진출한 대기업의 주재원으로 일하는 상황이라면 체계적인 대응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무소는 그들처럼 엄청나게 큰 규모를 자랑하는 법률사무소를 통해 법적 대응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감리사 측에서 공문서를 보내왔기 때문에 우리 또한 공문서로 대응을 해야 했다. 잔지바르의 사법 문화를 모르는 상황에서 함부로 공식 서한을 작성할 수는 없었다. 


  잔지바르 교육부 공무원의 도움으로 잔지바르 정부의 국선 변호사를 소개받았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서 이번 일과 관련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특히 우리가 수행 중인 초등학교 건축사업의 공공성과 당위성을 강조했다. 초등학교가 완공되면 현지 교육부로 이관되어 지역사회의 교육 환경 개선에 활용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국선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공식 서한을 작성했다. 문서를 통해 계약 종료 통보에 대한 근거의 타당성을 주장하고 상대방의 논리를 반박했다. 두세 차례의 서한을 추가로 주고받으면서 치열한 공방을 이어갔다.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야 승리하는 치킨 게임이 계속되었다. 이 일이 진행되어 가는 동안 현지 교도소에 잡혀 들어가는 악몽으로 밤잠을 설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감리사는 영향력 있는 변호사를 고용하여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전가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질겁하여 뒤로 물러설 거라 판단한 듯 보였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싸움을 걸어왔는데 지레 겁을 먹고 패배를 선언할 수는 없었다. 뒤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대응을 해나갔다. 설령 법정에 불려 가 구속되는 한이 있어도 불의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잔지바르 법정을 구경해보자. 내 인생에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될테니까.'라는 마음이었다. 


  감리사 측 변호사는 다섯 번째 서한을 통해 양측이 직접 만나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해왔다. 우리 측 국선 변호사도 상대방의 제안에 동의하였다. 감리사 측 법률사무소에서 모여 서로의 입장을 조율해나가기로 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양측 변호사가 크게 웃으면서 떠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잔지바르처럼 좁은 지역사회에서는 변호사들끼리 거미줄처럼 인맥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감리사는 잔지바르의 유명 변호사를 선임했으나 그는 잔지바르 출신이 아니었다. 나는 지역문화를 하나씩 빠른 속도로 이해해가고 있었다. 현지 상황 파악 능력만큼은 남들보다 빨랐다. 결코 이 싸움이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리사가 원하는 건 결국 돈이었다. 그는 당연히 2단계 건축사업에 배정된 감리 업무를 자신이 계속하리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던 그의 계획이 모두 헝클어졌다. 그의 입장에서 공돈을 챙겨갈 좋은 기회였는데 생각지 못한 일이 발생하는 바람에 열불이 치밀어 올랐던 것이었다. 


  2단계 사업의 건축 설계를 담당한 비용과 더불어 정신적 손해배상까지 청구했다. 2단계에 배정된 감리비의 50%를 요구했다. 우리는 그의 주장에 모두 동의할 수 없었다. 건축 설계 부분에 대해서만 어느 정도 동의한 상태였다.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2단계 건축사업에 배정된 30%의 감리비를 감리사 측에 지급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30%는 받아들일 수 없다. 2단계 건축사업 감리비의 50%를 나에게 지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가겠다.”

  감리사는 나를 면전에 두고 사무실이 떠나갈 정도의 큰 목소리로 말했다. 


  “30%를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이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가도록 하세요. 흔쾌히 고마운 마음으로 잔지바르 법정을 경험할게요.”

  나 또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대응했다. 그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가는 초등학교를 언제 완공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2단계 전체 감리비의 30%가 협상의 마지노선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한바탕 격한 감정을 주고받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변호사들이 다양한 옵션들을 제시하면서 우리를 중재하기 시작했다. 수개월에 걸친 지루한 공방을 끝내고 협상을 타결했다. 2단계에 책정된 감리비의 30%를 지급하는 내 제안을 감리사가 받아들인 것이었다. 

초등학교 건축사업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협력모델로 발전하였다.

  며칠 후, 잔지바르 교육부 차관보가 나를 사무실로 호출했다. 뜬금없이 우리 사무소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특히 초등학교 건축사업이 예정된 일정보다 늦어지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왜 이번 2단계 사업에서 열심히 일하던 감리사를 교체했나요? 국회의원한테서 전화를 받았는데 건축사업이 엉망이라고 들었어요. 제대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나요? 대통령 특별 지시사항이기 때문에 예정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당신이 책임져야 할 거예요."

  차관보가 협박조로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건축사업이 계획대로 진행이 안 되면 제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무덤덤한 말투로 대응했다. '국회의원'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감리사의 전방위적인 로비가 눈에 또렷이 들어왔다. 감리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나를 굴복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이미 양측은 합의 계약서에 서명했기 때문에 모든 걸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번 초등학교 건축사업의 감리사가 잔지바르 출신이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나에게 불리한 게임의 양상으로 상황이 흘러갔을 것이다. 나는 정확히 그 점을 역으로 이용했다. 잔지바르 문화에 비춰볼 때, 내가 상대하는 사람이 잔지바르 대통령의 지인이 아니고서는 무조건 지는 게임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방인인 내가 타지 출신인 감리사보다 유리한 입장이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잔지바르 지역주민들을 위해 다양한 공공사업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무소에서 추진하는 사업을 도와줄 수 있는 외부 지원군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현지에서 안정적인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중요한 순간에 힘이 되어 줄 우군을 많이 만들어야 했다. 소송사건은 본격적으로 현지에서 전략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동기부여를 제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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