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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먼아프리카 Sep 04. 2022

믿었던 직원의 배신

믿었던 직원의 배신

  사무소에는 전통이 하나 있었다. 선임 매니저인 바라카가 파견을 온 한국인 직원들에게 스와힐리어로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봉사 정신이 투철했던 한국인 자원활동가에게 ‘무니라’라는 이름을 작명해주었다. 스와힐리어로 ‘생기발랄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너무나 신기할 정도로 바라카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잘 살린 현지 이름을 지어주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미스터 박! 당신은 스와힐리어 이름을 가지고 있나요?”

  바라카는 나에게 스와힐리어 이름이 있는지 물었다. 


  ”당연히 스와힐리어 이름을 안 가지고 있죠. 줄리어스라는 영어 이름만을 가지고 있어요.“

  탄자니아의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대통령의 이름이 ‘줄리어스 캄바라게 니에레레’였다. 탄자니아의 독립과 국가 통합을 위해 그가 걸어온 길을 알게 되었다. 이후로 존경의 의미를 담아 ‘줄리어스’라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잔지바르에서는 영어 이름보다 스와힐리어 이름을 쓰는 게 좋을 거예요. 현지 사람들한테 친근하게 다가가기가 좋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스와힐리어 이름을 하나 만들어 줄게요.“

  그는 현지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려면 현지 이름을 사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꺼이 나와 어울리는 이름을 작명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다른 건 몰라도, 스와힐리어 이름을 갖고 활동하다 보면 지역주민들과 좀 더 친밀하게 소통할 수 있을 거라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단어가 있나요?“

  ”그런 건 딱히 없어요. 내 성격과 특징을 잘 살펴보고 나서 내게 잘 어울리는 멋진 스와힐리어 이름을 하나 지어줘요.“

  며칠이 지나고 나서 바라카는 뭔가 큰 숙제를 하나 끝낸 홀가분한 표정으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는 장고 끝에 나랑 어울리는 이름을 하나 만들었다면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나에게 ‘아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딜은 스와힐리어로 ‘정의’를 뜻했다. 나를 ‘정의감이 가득 찬 강한 사람’으로 특징짓고 아딜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낸 것이었다. 내 마음속에 꽂힐 정도까지의 이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느낌의 이름도 아니었다. 그렇게 '아딜'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 


  바라카는 나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주면서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일을 상상이라도 해봤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그와 나는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생긴 모양새나 성격의 특성에 따라 아는 사람에게 별명을 지어주기도 한다. 오히려 반대로 주어진 이름에 따라 자신의 성격이나 말본새를 맞춰 나가기도 한다. 현지의 많은 사람이 나를 ‘아딜’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딜로 불리고 나니, 마음 한편에서 왠지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부담감이 나를 짓누르기도 했다. 


  사무소는 잔지바르 교육사업의 수행 업무 활동 중 하나로 한국 정부에서 지어준 콰라라미디어센터 운영을 지원했다. 센터 직원들은 영어 공부에 부담을 느끼는 탄자니아 어린이들을 위해 유익하고 재미있는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중이었다. 영상 제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무소에서는 센터 직원들에게 주중에 매일 점심 도시락과 간식을 제공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디어센터 담당 직원을 대신해서 신입 직원인 압둘라가 점심 도시락 배달을 가게 되었다. 그는 점심 도시락 한 개와 식당 영수증을 들고 헐레벌떡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센터에 배달하고 남은 도시락 하나를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점심 도시락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생각한 우리 직원의 용감한 행동 덕분에 더 큰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우리가 센터에 제공하고 있는 점심 도시락 가격이 너무 비싸요.“

  압둘라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처음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압둘라는 며칠 전에 우연히 점심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는 식당에 들러 똑같은 메뉴의 음식을 시켜 먹었다고 했다. 그리고서는 사무소에서 지불하고 있는 9천 실링(한화 4,500원)의 점심 도시락 가격과 그가 계산한 4천 실링(한화 약 2,000원)의 음식 가격에 차이가 난다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 결국 사무소에서 똑같은 음식을 2천 원이나 더 비싸게 지불하고 있다는 걸 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현지에서 하나씩 업무를 익혀나가는 중이었다. 현지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사무실에서는 밀린 문서를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그렇다 보니, 사무실 밖에서 일상적으로 돌아가는 업무는 현지 직원들이 주로 담당하고 있었다. 압둘라의 얘기를 처음 듣고 나서는 ‘음식 가격에 차이가 날 수도 있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었다. 


  그러나 압둘라의 말을 곰곰이 반추해보았다. 어느 순간 도시락 값을 둘러싼 작금의 상황을 그냥 수용하자니 너무나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주문 도시락 개수가 많을수록 단가가 하락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우리는 거의 매일 20개가 넘는 도시락을 고정적으로 주문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의 도시락 값이 압둘라가 낸 음식값보다 저렴했어야 했다. 과거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압둘라를 대동하고서 손님으로 가장하여 그 식당을 방문했다. 무엇보다 그가 한 말의 신빙성을 확인하고 싶었다. 평상시에 우리가 미디어센터에 제공하는 점심 도시락과 똑같은 음식 메뉴를 주문했다. 압둘라의 말대로 음식 가격은 4천 실링이었다. 단체 도시락 주문 고객을 가장하여 식당 사장과 대화를 시도했다. 


  ”사장님! 단체 점심 도시락을 주문하고 싶어요. 기본적으로 매일 도시락 20개를 주문하려고 하는데 단가를 얼마까지 낮춰줄 수 있나요? 음식은 밥, 콩, 야채샐러드, 치킨 4분의 1마리로 구성하면 좋겠어요.“

  식당 사장을 상대로 점심 도시락 주문 개수, 음식 메뉴 구성, 도시락 가격에 대해 꼬치꼬치 물었다.


  “기본 세트 메뉴 가격이 4천 실링(한화 2,000원)인데, 일정 정도의 도시락 수를 맞춰주면 3천 실링(한화 1,500원)에 공급해줄게요.”

  도시락 1개당 이천 원의 차익, 매일 20여 명분의 도시락을 월 단위로 계산해보았다. 신입 직원 월급의 3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어마어마한 돈을 매달 누군가가 횡령하고 있었다. 스와힐리어 이름을 지어주던 바라카가 점심 도시락 식당을 선정하고 계약의 물꼬를 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확인해보니 그 식당과 6개월 이상을 거래해오고 있었다.


  사무소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사무실 밖에서 벌어지는 일은 현지 선임 매니저인 바라카가 주도적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그가 월급 동결을 애로사항으로 토로했을 때까지만 해도 최선을 다해서 그의 월급을 인상해주려고 마음먹었었다. 원활한 사업 수행을 위해서 예산 집행을 요청하면 특별한 경유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의 의견을 수용해주었다. 


  바라카가 사무실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왔던 만큼 누구보다 그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그야말로 제대로 발등을 찍혀버렸다. 바라카는 본인의 이익을 챙기는 데 혈안이었고 나는 그런 그를 방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며칠 동안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결국 바라카가 지어준 ‘아딜’이라는 이름의 고귀한 뜻을 받들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을 분명히 정리하고 갈 필요성을 느꼈다. 바라카의 비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사무실에는 바라카의 가족 두 명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바라카의 여동생은 청소부였고 그의 남동생은 운전기사였다. 그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직원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덧붙여 내가 모르는 바라카의 부적절한 행동이나 처사가 있다면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사무소 직원들은 바라카와 바라카 가족 직원들과 관련한 비리를 하나둘씩 공유해주었다. 


  “직원 점심용으로 사놓은 음식 재료들이 자꾸 사라지고 있어요. 바라카의 여동생이 퇴근할 때 몰래 가져가는 거 같아요.”

  “바라카와 바라카 남동생이 가짜 주유비 영수증을 만들어와서 사무소 주유비를 빼돌리고 있어요.”

  “미디어센터 직원들에게 제공하고 남은 음료수나 과자를 바라카가 자기 집으로 가져가는 걸 봤어요.”

  “우리 사무실의 임대인이 바라카의 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라고 들었어요. 주변 사무실 시세에 비해 우리가 비싼 임대료를 지불한 거 같아요.”

  직원들의 제보가 하나둘 쏟아지기 시작했다.


  10년을 넘게 일한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아프리카로 발걸음을 향할 때 마음 한쪽에 이상적인 업무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현지 직원들의 역량도 키워주고 즐겁고 재미있게 일하는 사무소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힘든 고난과 역경도 원팀 정신으로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 기대와 달리, 나의 꿈과 희망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일할 직원도 부족한데 대충 넘어가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프리카에서 이방인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칫 잘못 나섰다가 지역사회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결과적으로 지역사회 주민들은 현지인 편에 서지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이방인을 돕지 않기 때문이었다. 케냐에서 그런 경험을 이미 해본 나로서는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일을 크게 확산시키지 않으려고 ‘자기 합리화’라는 달콤한 유혹을 계속 붙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어물쩍 넘겼다가는 바라카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에게 ‘비리를 저질러도 괜찮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겼다. 센터에 배달하는 점심 도시락을 빌미 삼아 바라카가 사업 예산을 횡령하고 있다는 것은 직접 확인했다. 그렇다고 다른 직원들이 알려준 바라카와 관련한 다른 비리 제보를 기정 사실화하지는 않았다. 우선 바라카와 면담을 진행하고 나서 다음 절차를 결정해도 늦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라카를 따로 불러 진솔한 대화를 나누면서 자초지종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바라카!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주세요.”

  그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점심 도시락 예산을 빼돌린 적이 있나요? 식당 주인과 아는 사이인가요?”

  바라카가 내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가 솔직하게 잘못을 뉘우치는 태도를 보이면 횡령 금액만 반납시키고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다. 예상과 달리, 내 모든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전부 “아니오.”였다. 그는 모든 걸 부인했다.


  대답과는 달리, 그의 부자연스러운 행동과 흔들리는 눈동자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현지 문화와 관습에 부합하는 선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의 질문에 대응하고 있었다. 나 또한 아프리카 현지에서의 경험을 살려 나만의 방식으로 이번 사건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사무소 직원들에게 수소문한 결과, 압둘라의 삼촌이 현직 경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삼촌과의 저녁 식사 자리를 주선해달라고 요청했다. 약간의 현금을 준비했다. 저녁 장소에 나가 압둘라와 그의 삼촌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저는 잔지바르 사무소를 책임지고 있는 아딜입니다. 안타깝게도 얼마 전에 사무소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우리 직원 중 한 명이 잔지바르 지역주민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국가 예산을 횡령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해 선량한 잔지바르 아이들만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삼촌께서 꼭 이번 사건을 해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개  사무소의 일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잔지바르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걸 강조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개인적인 일로 접근하다 보면 확실한 동기부여가 부족한 경찰의 입장에서 이번 일을 맨 뒷전으로 미룰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정중한 부탁과 함께 삼촌에게 개인적으로 약간의 착수금을 건넸다. 아프리카에서 가까운 경찰서에 비리를 접수한다고 하여 모든 경찰이 정의감을 가지고 내 사건처럼 일을 처리해주지 않았다. 따로 돈을 찔러주지 않는 이상 본전도 못 건진 채 시간만 허송세월 날릴 가능성이 컸다.


  며칠 후, 압둘라의 삼촌이 공식적으로 사무소를 방문했다. 사무소 전 직원을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시작했다. 이미 식당을 방문해서 현장 조사까지 마쳐둔 상태였다. 며칠 후 압둘라의 삼촌은 경찰서에서 추가 조사를 이어나갔다. 사무소 직원들은 생전 처음 경찰 수사를 받다 보니, 동요하기 시작했다. 바라카 또한 좌불안석하는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도시락 비용 횡령 건으로 우리는 경찰서에서 추가 조사를 받았다.

  어느 날 바라카가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서는 잔지바르 교육부 차관 명의의 공문을 보여주었다. 바라카는 자신이 근무하던 중등학교에 고용 휴직을 내고 파견 형태로 사무소에서 일하던 중이었다. 바라카는 다음 달까지 사무소 업무를 마무리하고 학교 현장으로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경찰 수사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마무리되면 자신의 커리어에 오점을 남길지 모른다는 것을 걱정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끝끝내 자신이 저지른 비리에 대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압둘라의 삼촌한테 수사를 의뢰했을 때부터 누군가를 처벌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사무소에 있는 동안만큼은 잘못된 일을 해도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귀찮다는 이유로 현지 직원의 비리를 용인하고 눈 감아 준다고 해보자. 그럴 경우, 그 직원은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에만 골몰하지 않을까.


  항상 현지 직원들에게 하는 말이 있었다.

  “나를 평범한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아프리카에 있는 동안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당신과 똑같은 아프리카인이다.”


  잔지바르 지역사회에서는 법적인 처벌보다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에 오점을 남기는 걸 더욱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바라카의 부적절한 행위에 나는 지극히 현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응했던 것이었다. 또다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불미스러운 일을 예방하기 위한 매우 현실적인 조치였다고 생각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은 오랫동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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