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 걸까...
"마크, 그쪽 팀에서 사람 뽑던데 내가 지원해도 될까요?"
팀원 한 명이 퇴사한다. 그 자리는 평소 노리던 직원들이 많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포지션이었다. 경력직 채용 공지가 떴고 곧이어 내부 채용 공지도 올라왔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 직원들이 나에게 사내 메신저로 티타임을 요청했다. 다들 속 얘기까지 털어놓을 정도로 친했고 평소 꾸준히 그 자리에 관심을 보였던 직원들이었다. 그들이 궁금한 건 두 가지, '내부 채용 가능성'과 '본인이 지원 가능한 스펙인지 여부'였다.
잘 안다. 그들이 얼마나 그 자리가 공석이 되길 기다렸는지를. 그때마다 나는 때를 기다리라며 응원의 말을 건네곤 했다. 하지만, 막상 나와 친한 직원 중 한 명과 같은 팀에서 일한다고 상상해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나 스스로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정상인 걸까? 아니면 내가 나쁜 놈인 걸까?
회사 1층 별다방에서 만난 직원 A는 날 보더니 멋쩍은 듯 웃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는 표정이었다. "마크, 얼른 와서 앉아 봐요." 사실 A는 해당 포지션에 맞는 경력은 아니었다. 다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포지션이 여러 부서로부터 협조를 받아야 하는 자리인데 A는 회사에서 최고의 인맥을 자랑한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나는 관련 경력이 없어도 지원 가능한 포지션이니 우선 지원하고 채용 매니저를 만나보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사실 내 마음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나와 정말 친한 직원이어서 좋은 소식은 늘 먼저 전하고 힘든 일 있으면 서로의 편에 서서 응원했던 관계였다. 그런데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같은 팀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친한 직원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불편했던 감정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친한 직원과 같은 팀이 되기 싫은 세 가지 이유를 발견했다.
하나, 우리는 일로 친해진 사이가 아니다
회사에서 진짜 친한 직원들은 일로 가까워진 사이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로 가까워졌다면 할 수 없는 얘기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다. 때론 팀장이나 팀원들에 대한 본인의 솔직한 생각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서로가 서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어떤 얘기도 자기중심으로 각색하는 것이 허락된다.
무엇보다 일로 가까워진 사이가 아니어서 한 사람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한걸음 떨어져 객관적인 조언을 해줄 수가 있다. 친한 직원에게서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마크,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정상이죠? 내가 이상한 거예요?" 내가 그 직원이 만족할만한 대답을 해줄 수 있는 건 일로 친해진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의 상황에서는 내가 도움을 받는다.
친한 직원과 같은 팀에서 일한다면 더 이상 이런 도움을 주고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친한 직원이 계속 친한 직원으로 남아 주길 바라지, 팀원이 되어 주길 바라지 않는다. 차라리 밖에서 채용하길 바라는 것이 내 솔직한 마음이다.
둘, 친한 직원이 최고의 업무 파트너는 아니다
솔직히 말해보자. 나와 친한 직원들 모두가 일을 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들 모두가 평판이 좋은 것도 절대 아니다. 일을 잘 못해도, 평판이 조금 좋지 않더라도 친해질 수 있다. 내 업무와 상관없기 때문이다. 친한 직원 B가 일을 좀 못하더라도 내 업무에는 지장이 없다. 물론 다른 부서 사람들로부터 '마크, B 때문에 요즘 속 터져 죽겠어'라는 말을 들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B는 여전히 내 친한 직원이다.
그런데 B가 같은 팀이 되고 싶어 한다면? 이건 다른 얘기다. 서로 친하기에 B의 커리어 고민 상담을 자주 해줬다. 여러 조언을 해줬지만 우리 팀 포지션을 추천해준 적은 없었다. 상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하더라도 나는 업무 파트너로서는 더 실력 있고 경력을 충분히 갖춘 직원과 일하고 싶다.
팀에 공석이 생겼을 때, 외부에서 경력직을 채용하는 것과 내부 채용하는 과정을 비교해보면 결론이 명확해진다. 경력직은 채용 과정을 통해 제로 베이스에서 그 사람을 여러 측면에서 평가한다. 회사 문화에 맞는 사람인지, 해당 포지션에 대한 경력이나 지식은 충분한지, 태도나 인성 측면에서 문제가 없는지 등을 살핀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업무적인 면에서는 실패 확률이 높지 않다. 하지만 내부 채용은 다르다. 해당 직원이 어떤 사람인지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채용 과정이 단순하다. 경력직에 비해 해당 포지션과 흔히 말하는 핏(fit)이 딱 맞지 않는다. 그래도 회사는 투자 측면에서 내부 채용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래도 난 업무 능력이 경력직보다 떨어지는 친한 직원 B와 같은 팀이 되기 싫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B와 같은 팀이 되었을 때 계속 지금처럼 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다행히 그 자리에는 외부 경력직이 채용되었고 나는 평소처럼 B와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셋, 친한 직원에게 내 약점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사실 이 이유가 가장 크다. 같은 팀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나의 약점이 있다. 나는 친한 직원들이 내 약점을 몰랐으면 좋겠다.
회사 생활에서 친한 직원과 어쩔 수 없이 같은 팀이 될 때가 있다. 바로 특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TFT(태스크포스팀) 또는 프로젝트팀에 같이 합류하게 되는 경우다. 한 번은 국제 인증을 받기 위한 프로젝트에 친한 직원 C와 같이 합류했다. C는 해당 업무 담당자여서 프로젝트를 리드하는 입장이었고 나는 특정 분야를 서포트하는 위치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서로의 약점을 보고야 말았다. C는 아직 프로젝트를 이끌어 갈 만한 역량이 부족했다. 그게 너무 눈에 보여서 안타까웠다. 나도 내 약점을 들켰다. 당시 난 내가 잘 드러나는 업무에는 열정적이었지만 내가 서포트하는 정도의 업무에는 최소한의 노력만 했다. C는 본인이 리딩 하는 것도 벅찬데 내가 서포트를 수동적으로 해줘서 말은 안 하지만 서운한 눈치였다. 서로에게 비친 각자의 모습은 원래 알던 모습이 아니었고, 프로젝트 종료 후에도 관계를 회복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친한 직원 중에는 '내가 이 사람과 같은 팀이었다면 지금처럼 친했을까?'라고 생각하게 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친해지고 나서 본인의 약점이 들킨 경우다. 뭐 괜찮다. 같은 팀만 아니면 말이다. 회사라는 공간은 공적인 공간이지만 회사에서 인간관계는 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가 공존한다. 친한 직원과의 사적인 관계에서 업무가 차지하는 영역은 제한적이다. 그렇기에 때론 팍팍하고 삭막한 직장 생활 중에 우리는 친한 직원들을 통해 숨을 돌리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친한 직원들과 같은 팀이 되기 싫다고 생각하는 내가 나쁜 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의 깊은 곳에는 친한 직원들을 잃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