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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입장에서 생각하기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달라지듯, 영화에 관한 글을 찾아보는 것도 관람 전과 후가 다르다. 관람 전에는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일까?’에 대한 궁금함이 앞선다.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 극장에 간다면 재미있는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 이럴 때 원하는 글은 이 영화가 재미있는지 아닌지 알려주는 글일 것이다.     


관람 후에는 자기가 느낀 감정이나 생각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글을 찾는다. 남들도 나처럼 재미있게 봤는지, 나와 느낌이 비슷한지 그런 공감을 느끼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를 나쁘게 보았다면 비슷한 의견을 지닌 글에서 공감을 느낀다.     


복잡한 영화의 경우 해석하는 글을 찾게 된다. <기생충>을 예로 들자면 이 영화에 숨겨진 상징적인 의미에 대한 호기심이 작용한다. 내용은 이해했는데 몇몇 장면에서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남아 있다면 이 호기심을 해결하고 싶은 갈증을 느낀다. 궁금증이 풀리는 글을 발견하면 가려운 곳이 긁히는 기분이다.     


내용 자체를 파악하기 힘든 영화의 경우 이런 쾌감은 더 강해진다. 최근 유럽영화의 경우 난민문제가 화두가 되면서 이와 관련된 코드를 작품에 심어둔다. 2019년 개봉한 스웨덴 영화 <경계선>은 트롤의 모습을 한 두 주인공을 통해 난민 문제를 다뤘다는 점을 파악하기 힘들다. 이 베일에 감춰진 정체를 알려주는 순간, 추리소설보다 더 큰 짜릿함을 얻게 된다.     


글을 읽는 독자에게는 그 목적이 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좋은 영화인지 알아보고 싶은 목적이, 보고 난 후에는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낀 이들이 많은지 알아보고 싶다. 어려운 영화의 경우 해석이 목적이다.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세세한 검색이 가능한 시대에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목적의 글을 찾고자 한다.     


목적 없는 글은 보는 재미를 주지 못한다. 돈 또는 시간을 사용해서 글을 읽는데 어떤 목적도 충족되지 않는다면 만족을 느낄 수 없다. 연인과 데이트를 할 때면 상대가 무얼 원하는지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걸 남도 좋아할 것이라 여기면 사랑의 기차는 철로를 이탈하고 만다. 내가 정성스레 쓴 글이라는 게 마냥 남이 좋아해줄 이유가 되지 않는다.     


평론과 칼럼에도 트렌드가 있다.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할 자신이 없다면 타인의 글을 보면서 트렌드를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글, 좋아하는 글에는 이유가 있다. 요식업에 있어 내가 안 먹는 음식이라도 남들이 좋아하면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야 하듯 많이 읽히고 사랑받는 글을 쓰고 싶다면 그 입장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이해라는 단어를 택한 이유는 흉내 내기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SBS 예능 ‘골목식당’에서 요식업의 대부 백종원이 비법을 알려준다 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관심이 없고 더 기술을 연마할 생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트렌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사람들이 왜 이 글을 선호할까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있어야만 이에 맞는 글을 쓸 수 있다.     


리뷰와 프리뷰, 평론과 오피니언, 칼럼과 에세이에는 각 독자가 요구하는 요소가 있다. 이 요소를 작가가 아닌 독자의 입장에서 이해할 줄 알아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평론이라고 썼는데 오피니언의 요소만 갖추고 있다면 환영받을 수 없다. 리뷰인 줄 알고 봤는데 프리뷰처럼 정보만 가득하다면 흥미를 잃을 것이다.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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