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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영화의 소재

유럽영화는 유독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다. 유럽영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지루하고 철학적이고 높은 수준의 해석을 요구할 것만 같다. 어떤 사람을 어렵게 느끼는 건 그 사람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해석할 수 있는 영화는 남들이 어려워도 쉽게 느껴지는 반면, 해석할 수 없으면 높은 수준의 철학을 담은 작품처럼 느껴진다.     


소재를 어렵게 만드는 건 표현이다. 표정이 뚱하거나 차가워 보이는 사람에게는 접근하기 힘든 거처럼 생소하거나 낯선 표현을 선보이는 영화는 어떻게 접근해야 좋을지 어려움을 지니게 만든다. 수학문제를 풀 때 설명이 긴 문제는 어렵게 느껴진다. 이런 평소에 풀어본 적 없는 문제를 푸는 방법은 배운 공식을 하나씩 대입해 보는 것이다.      


시험이 배운 내용 안에서 나오는 거처럼, 유럽영화 역시 우리가 알고 배운 지식 안에서 소재를 찾고 표현한다. 유럽영화는 아래에 소개하는 몇 가지 소재를 대중적으로 담고 있다. 각 국가마다 반복되는 소재의 영화가 있는 거처럼 유럽영화도 몇 가지 소재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재들을 대입하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찾을 수 있다.     


① 성경     


유럽의 역사는 성경에서 시작한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로 인한 전쟁이 있었고, 일상생활을 교리에 따랐을 만큼 성경은 유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성경의 내용을 가공해 영화로 창작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신성모독적인 이야기를 통해 종교가 지닌 모순을 이야기하는 영화도 있다.     


전자의 예는 <행복한 라짜로>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예수가 죽은 나사로를 사흘 만에 되살린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시골마을에서 살던 라짜로는 후작 부인의 아들 탄크레디와 친구가 된다. 어느 날 라짜로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마을 사람들은 지금이 귀족이 존재하는 중세가 아닌 계급이 없어진 현대임을 알게 된다. 알고 보니 후작 부인은 한때 홍수로 외부와 연락이 끊긴 마을 사람들을 속이고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 다시 깨어난 라짜로는 마을 사람들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의 얼굴은 그대로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을 사람들은 나이든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은 자유를 얻고 도시로 왔지만 빈민층으로 살아간다. 마을에서 행복했던 라짜로는 불행한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슬픔을 느낀다.      


이 작품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성경의 이야기를 통해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사로와 라짜로 사이의 연결성은 죽은 후의 부활을 통해 나타난다. 과거의 나사로가 예수의 기적에 경이로운 기쁨을 느꼈다면, 현대의 라짜로는 불행을 얻는다. 성경을 코드로 마술적 리얼리즘을 지닌 작품을 창조해내는 힘을 보여준다.     

후자는 루이스 브뉘엘 감독의 <비리디아나>를 예로 들 수 있다. 비리디아나는 숙부에게 상속받은 막대한 재산으로 거리의 걸인들과 범죄자들을 불러들인다. 그들을 개도하겠다는 열망을 지닌 비리디아나이지만 타락하고 망가진 그들은 오히려 그녀를 파멸로 이끈다. 이 작품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하는 장면은 당시 신성모독 논란을 일으켰을 만큼 다소 파격적이다.     


감독은 이런 표현을 통해 과연 현대에 예수가 다시 나타난다 하더라도 인류에게 구원을 줄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진다. 예수를 통해 가르침과 깨달음을 얻었던 열 두 제자처럼 물질욕에 취한 현대인들이 구원을 택할지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이런 종교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한 번쯤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② 제2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은 유럽의 패러다임을 바꾼 커다란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럽은 집단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느끼게 되었고 사유의 개념을 중시하게 됐다. 제국주의가 멸망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세계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때문에 유럽의 역사에 있어 제2차 세계대전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 중 가장 많은 소재는 유대인이다. 아우슈비츠를 비롯해 독일 나치가 유대인을 감금하고 학살한 역사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 소재는 현재까지도 할리우드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유대인을 소재로 한 작품이 다루는 주 감정은 휴머니즘이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피워내며 삶을 향한 용기를 보여준다.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어둠 속의 빛>이란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이런 감정을 전달한다.     


폴란드 리버포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하수구로 도망친 11명의 유대인 가족을 보여준다. 우연히 이들을 발견한 하수구 수리공 소하는 그들을 지켜주는 길을 택한다. 어둡고 냄새나는 하수구 안에서 언제 되찾을지 모르는 자유와 생존을 꿈꾸는 모습은 깊은 휴머니즘의 감정을 표출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인 독일이 만드는 작품의 경우 나치의 잔혹함과 그 아래에서 겪는 아픔을 다룬 작품들이 지배적이다. 나치를 비판하는 전단지를 뿌리다 처형을 당한 대학생 소피 숄의 이야기를 다룬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이나 탈영병이 나치 간부 군복을 발견한 후 간부 행세를 하며 수용된 탈영병들을 잔혹하게 학살한 <더 캡틴>이 그러하다. 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하며 독일 내에서 벌어진 나치의 만행에 초점을 둔다.     


③ 마녀사냥     


마녀사냥은 명확한 근거 없이 의심과 모함만으로 그 사람을 몰아가는 걸 의미하는 단어다. 중세 기독교 사회의 구조에서 정상적인 범주에 벗어나는 이들이나 공동체를 망가뜨리려는 이들이 마녀란 오명을 쓰고 죽음을 맞이했다. 이 소재는 현대에는 한 개인을 명확하지 않은 이유나 오해로 매장시키려 할 때 사용되는 단어다.     


마녀사냥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매즈 미켈슨이 주연을 맡은 <더 헌트>를 들 수 있다. 고향에 내려온 유치원 교사 루카스는 한 소문에 의해 마을에서 매장 당한다. 친구의 딸이 루카스가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말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는 이유로 루카스를 몰아가고, 친구들마저 그에게 고개를 돌린다.      


마녀사냥을 다룬 작품은 집단의 폭력성과 광기에 주목한다. 이 폭력성은 유럽사회가 경계하는 집단주의와 연관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기도 한 집단주의는 사건이나 주장에 대해 그 진위를 판별하거나 사유의 자세를 지니기 보다는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추종하는 경향을 보인다. 집단을 움직이기 쉬운 건 감정이다. 애국심과 분노, 집단의 유지를 중시하며 이에 반하는 개인을 공격해 집단을 더욱 공고하게 다진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개인과 사유는 당시 유럽 젊은이들이 자신의 생각이 아닌 누군가의 주장과 생각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현상을 비판한데 있다. 마녀사냥도 이런 현상의 일부다.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누군가의 주장으로 인해 ‘마녀’로 몰린 이를 두려워하고 기피하고자 한다. 나치가 유대인에게 가한 탄압과 폭력도 그들을 악마처럼 묘사한 마녀사냥의 효과에 있다.     


④ 삶에 관한 관조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있다. 이 주인공을 필두로 사건을 그려내기에 삶을 주체적으로 바라본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인 주동인물과 이런 주인공과 대적하는 반동인물을 통해 개인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만족을 줄 만한 대중적인 영역으로 확대시킨다. 그런데 몇몇 작품들의 경우 타자의 시점으로 주인공을 바라보는 영화가 있다.     

이런 시점은 몰입이 힘들 뿐더러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하게 파악이 되지 않는다. 인물이 많이 등장해도 이들 사이에 마땅한 관계가 없고, 사건이 발생해도 그 결론이 없어 이걸 사건으로 봐야하는지 의문이 든다. 앞서 설명한 인물관계나 사건으로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 유럽영화가 어려운 이유는 이런 삶에 관한 관조를 다룬 작품의 양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주제의식을 파악하기 힘들 뿐더러 진행이 더디니 보는 재미가 떨어진다.     


이런 작품의 경우 흐름이 아닌 현상에 집중해야 한다. 저게 뭐지? 무얼 이야기하는 거지? 라는 생각으로 머리를 계속 굴리기보다는 영화가 내게 주는 감정, 장면이 주는 느낌에 중점을 둔다. 따뜻한 느낌이라면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이고, 어두운 느낌이라면 어둡게 바라보는 것이다. 다양한 감정이 느껴진다면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     


카메라를 우리의 눈이라고 생각해 보자.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장면에는 영화의 시나리오처럼 명확한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면 생명력이 느껴지고, 아기를 안은 노인을 보면 따스함이 피어오른다. 관조는 이런 것이다. 카메라는 타자의 시선으로 장면을 비추고 이를 바라보는 관객은 이해보다는 감정을 느끼면 된다. 이때 쌓인 감정 하나하나가 해석의 근거로 작용한다.     


특정한 흐름을 지닌 스토리를 가져온 게 아니기 때문에 따라갈 수 있는 줄기가 없다. 관조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해석은 관객의 마음이다. 감독은 이런 감정을 전해주는 표현에 집중한다. 영화의 장면에는 세 가지 중 하나가 담겨야 한다. 전개, 이해, 감정이다. 전개와 이해가 사건의 흐름과 연관되어 있다면 감정은 정서의 영역이다.   

  

영화는 시각의 예술이다. 시각을 통해 감정을 유발한다. 장면이 이야기 없이 감정만 담고 있더라도 그것은 영화가 된다. 이런 시도는 누벨바그 이후 영화의 흐름과 연관되어 있다. 누벨바그 이전 영화는 소설이나 희곡을 스크린에 재현하는데 중점을 뒀다. 연출자는 기술자의 위치에 가까웠다. 전개나 이해에 중점을 둔 것이다.   

  

누벨바그 이후 작가주의 감독들이 등장하면서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고, 자신의 시나리오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표현법을 찾게 된다. 이런 표현의 문제는 현대에 와서 영화란 무엇인가란 질문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이야기를 영상을 통해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면 영상이 주는 느낌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인가. 이 문제는 흐름에 중점을 둔 이야기가 아닌 영상의 표현을 우선시 하는 감독의 등장을 이끌어냈다.   

  

삶의 관조는 후자에 해당한다. 우리의 삶은 영화처럼 명확한 흐름을 지니지 않는다. 하루에도 행복과 불행, 우울과 환희가 몇 번이고 반복된다. 단편적인 조각으로 삶은 구성되고 흘러간다. 이런 삶의 모양과 가까운 영화를 만들면서 카메라가 보여주는 색과 감정을 통해 정체를 드러낸다. 화면과 감정에 집중하면 완벽한 이해는 아니더라도 글을 쓸 수 있는 단서를 찾게 될 것이다.     


⑤ 난민문제     


유럽의 난민문제는 2015년 절정에 이른다.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의 규모가 커진 건 물론 사망 사건사고가 증가하면서 불안이 가중됐다. 이 해에 발생한 프랑스 파리 테러사건은 난민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을 유럽에 던졌다. 그리고 난민문제는 최근 유럽영화계에서 중요한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2015년 이후 유럽영화는 이런 현상이 더욱 짙다. 파리 테러사건으로 난민문제에 대해 유럽 내 경각심이 높아졌고, 몇몇 국가는 정치권에서 극우세력의 인기가 올라갔다. 난민에 대한 반감은 유럽 내 인종차별 문제로 번질 우려를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영화는 난민문제를 부드럽게 포용하고 끌어안자는 움직임을 보인다. 영화는 사랑, 정의, 연대 등의 가치를 지향한다. 영화가 극단적인 폭력이나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 내용을 담는다면 대중매체로의 영향력을 지닐 수 없다.     


난민문제를 다룬 작품들은 난민에 대한 포용과 이해를 말한다.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의 <트랜짓>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난민의 모습을 통해 현재 난민의 모습을 바라보게 만든다.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의 <공포의 보수> 등의 작품을 보면 당시 폐허가 된 유럽을 떠나 남미로 이주를 한 유럽인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들의 모습은 중동의 정치적 혼란을 피해 유럽으로 온 난민들과 다를 바가 없다. 유럽인들 역시 과거에는 난민의 위치였다.     


<트랜짓>은 이런 점을 상기시키며 현재 유럽이 직면한 난민문제는 과거에도 있었고, 또 미래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암시한다. 때문에 영화는 나치를 피해 도망치는 인물들의 모습을 현대적인 모습에 담아내며 시대적인 배경을 피하려 한다. 그래서 장르에 SF가 들어간다. 미래에도 난민문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경계선>은 트롤이란 존재를 통해 난민을 말한다. 작품의 주인공 티나는 후각으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기묘한 능력을 지녔는데, 외모 역시 남들보다 작은 키에 인간과는 다른 외형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고 소외감과 고독을 느낀다. 이런 티나의 감정은 이란에서 태어나 스웨덴으로 이민을 온 알리 아바시 감독이 느꼈던 감정이라고 한다.     


난민은 문화와 생활양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별점은 외모다. 감독은 인간 세상에 사는 트롤을 통해 이런 난민의 감정을 표현한다. 티나와 같은 트롤인 보레가 지닌 인간을 향한 분노는 어쩌면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이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사회의 문제를 다뤄온 다르덴 형제의 신작 <소년 아메드> 역시 중동 이민자 가정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난민문제는 현재 유럽영화를 읽는 키워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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