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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보다 영상

인터넷을 보면 영화 리뷰어가 정말 많다. 한 영화가 개봉하면 긴 평론부터 짧은 관람평까지 다양한 글이 쏟아진다. 영화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영화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영화 리뷰에 도전하는 걸까. 영화가 대중매체이기 때문일까. 우리가 보는 영화 리뷰의 대부분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스토리 분석이다.     


영화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리뷰는 쓰는 방법이 어렵지 않다. 학창시절 지겹게 내줬던 독후감 숙제를 바탕으로 내용을 파악하고 정리하는 능력을 누구나 익혔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화는 책보다 적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책은 능동적으로 읽지 않으면 한 페이지도 이동하기 힘들다. 인내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만 있으면 아무리 길어도 시간이 끝이 난다. 그 시간 안에 펼쳐진 이야기를 정리하고 내가 느낀 감정만 더하면 된다.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못하는 친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부모는 머리는 좋은데 열심히 안 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학생을 더 채찍질하고, 학생은 점수가 오르지 않는 자신에게 좌절한다. 줄거리 파악이 용이하고 주제의식이 확고한 영화라면 이런 스토리 분석을 통해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반대라면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게 될 것이다.     


영화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기에 스토리가 중요한 건 맞다. 하지만 영화는 책만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하지 못한다. 텍스트는 이해를 위해 많은 시간과 반복을 택할 수 있지만, 영화는 정해진 시간과 일직선으로 흐르는 이야기의 진행 안에 모든 걸 담아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영화는 글과 함께 영상에 이야기를 담는다. 촬영, 편집, 미술, 의상, 음악 등 각 분야마다 상을 주는 건 이 모든 요소가 영화의 이야기를 형성한다는 점에 있다.     


두 번의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를 예로 들자면, 그는 자크 오디아드 감독의 영화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작업 당시 주제의식이 모호한 초반에는 음이 높은 음악을 통해 그 정체성을 확연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반면 주제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후반부에는 음을 낮추며 음악을 통해 극 전체의 분위기를 탄탄하게 조성하는 효과를 보여줬다. 흐름이 음악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색에서도 이런 효과를 엿볼 수 있는데 중국 마지막 황제 푸이의 이야기를 다룬 <마지막 황제>는 황제를 상징하는 노란 색이 점점 변하는 장면을 통해 푸이가 겪을 고난과 역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푸이가 노란 공을 사이에 두고 궁녀들과 노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푸근한 느낌은 황제를 상징하는 노란색을 강하게 보여주며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더욱 아련하게 그려내는 효과를 보여준다.     


배우의 연기도 영화를 파악하는 요소다. <하워즈 엔드>에서 엠마 톰슨은 천민자본주의 의식과 가부장적 억압을 지닌 가문과의 결혼 이후 밝고 자유분방했던 이전의 모습을 잃어가는 마거릿 역을 맡았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마거릿의 표정이 남편인 헨리의 전부인 루스와 닮아간다는 점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헨리의 억압을 보여주며 영국영화 특유의 고풍스런 분위기 안에서 폭력과 슬픔을 표정과 행동으로 표현한다.     


영화는 영상을 통해 이야기를 하는 매체다.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이 열차가 역에 도착하는 모습만을 촬영했다는 점은 스토리보다 장면이 지닌 인상과 효과에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데이빗 린치 같은 감독은 스토리를 통한 텔링보다는 영상적인 표현을 통해 이야기를 표현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어떤 이야기를 어떤 영상으로 보여줄 것인가 하는 ‘표현’의 문제를 고민한다.     


가끔 외국영화를 볼 때 아쉬운 점은 자막을 따라가느라 영상이 보여주는 언어를 놓칠 때가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대화에 있어 언어보다 몸짓이나 손짓, 표정 같은 비언어적 표현에 담긴 의미가 더 큰 거처럼, 이야기보다 영상이 더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영화도 있다. 대화나 서사가 아닌 화면이 지닌 표정을 파악할 때 영화와 더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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