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라

어린 시절 누구나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살면서 느낀 건 공부만큼 정직한 것도 없다는 점이다. 비록 엉덩이 오래 붙여 한 만큼 성적은 안 나올 수 있지만, 나온 성적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는다. 인맥에 편법에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공부는 정직하게 노력의 가치를 보여준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더 뛰어난 글재주를 가진 사람은 있을지언정 오랜 시간 한 글에 노력을 기울이면 그만큼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     


학부시절 교수님이 인터뷰 과제를 내준 적이 있다. 본인이 인터뷰를 하면 그걸 녹취한 뒤 기사 형식으로 적는 것이다. 과제물 중 교수님이 1등으로 뽑은 기사는 무려 8시간이 걸린 글이었다. 그 학생은 몇 번이고 녹취한 걸 듣고 살릴 것과 뺄 것을 구분한 건 물론 읽기 편하게 구성까지 꼼꼼하게 신경 썼다. 글을 보면 티가 난다. 이 글에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아닌지. 시간이 걸린 글일수록 자잘한 실수가 없고 구성이 탄탄하다.     


영화 리뷰를 쓸 때도 많은 시간을 들이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하나의 리뷰를 쓰기 위해 10번 영화를 돌려보며, 어떤 사람은 외국 평론가 글부터 국내리뷰까지 30개에 달하는 글을 읽은 뒤 다양한 생각을 취합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좋은 글을 쓰는 훈련 방법은 세 가지다. 많이 읽고 많이 쓰며 많이 생각해야 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의 특징은 매일 공부를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하루도 곁에서 떨어뜨려 놔서는 안 된다.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좋은 글이 안 나오는 사람이 있다. 주변에서 밤새 공부를 해도 점수가 안 나오는 경우를 봤을 것이다. 그 이유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다. 수많은 교사들이 강조하는 교육방법 중 하나가 목차를 익히게 하는 거다. 목차는 체계다. 학문의 체계를 알아야 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의 지식이 지닌 시야는 생각보다 근시안적이다.     


눈앞에 있는 내용을 이해하고 따라가기 바쁘다 보니 전체적인 맥락에서의 이해가 떨어진다. 방금 배운 내용인데 금세 까먹는가 하면 A B C 각각은 이해하는데 ABC를 합쳐놓으면 알아듣지 못한다. 글을 쓸 때는 전체적인 맥락을 먼저 정해야 한다. 각 단락의 내용을 생각한 후 한 줄로 대략적인 내용을 적어준 뒤 그에 맞춰 글을 써나가야 한다. 책으로 치자면 목차를 먼저 구성하고 각 목차별 내용을 먼저 정리하는 것이다.     


이를 맥락의 파악이라고 한다. 대화를 할 때도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답답함을 느끼거나, 맥락 없이 대화하는 사람을 보면 무슨 소리를 하나 의아함을 느낄 때가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맥락을 잡지 못하면 문단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부드러운 흐름을 갖지 못한다. 영화를 볼 때도 맥락의 파악이 중요하다. 맥락이 빠르게 파악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결말에 이르러서도 흐름을 잡지 못하는 작품이 있다     


이럴 때는 한 영화를 여러 번 관람하는 방법 밖에 없다. 학문의 맥락이 막혀도 같은 내용을 여러 번 읽으면 길을 찾는 거처럼 N차 관람은 해답을 제시한다. 영화에 대한 내용 위주의 리뷰가 있다면 리뷰를 한 번 읽고 다시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모든 영화를 여러 번 관람할 순 없다.      


시사회로 영화를 관람하는 경우 기회는 한 번 뿐이다. 이럴 때는 시험을 본다는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가야 한다. 시험 때 우리의 두뇌는 어떠한가. 글자 그대로 두뇌 풀가동이다.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며 지식을 싹싹 긁어 답을 구하기 위한 고민을 반복한다.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생각을 해야 한다. 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집중력을 갖는다.     


집중력으로 모인 장면을 머릿속으로 조립해 맥락을 찾는다. 그 맥락에 따라 이야기의 주제를 파악한다. 파악과 함께 분석을 통한 비평도 진행된다. 감독의 이전 작품이나 비슷한 소재의 작품과 비교, 또는 자신만의 척도에 따라 작품을 바라본다. 이런 관람 내내 끊임없는 생각은 예기치 못한 답을 찾아내곤 한다. 개인적으로 그런 영화 중 하나가 <사마에게>라는 영화였다. 이 작품은 시리아 내전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다.     


폐허가 된 도시에 남은 알-카팁 부부는 그곳에서 내전으로 부상 입은 사람들을 치료하며 아이를 낳고 사마라는 이름을 짓는다. 이 영화가 특별하게 보이기 시작했던 지점은 반복되는 폭격 장면에서 이것이 그들의 일상이란 걸 인식했을 때였다. 우리는 내전의 공포와 고통을 글로 배우기 때문에 어떠한 포인트를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특정한 사건이 트리거가 되어 감정을 격화시키는 걸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전쟁의 상황에서는 일상 자체가 지옥이고 매 순간이 고통의 연속이다.     


감상과 분석은 다르다. 감상은 현상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표면적인 감정에 집중하지만, 분석은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답을 얻기 위해 현상을 파고들고 어떠한 감정 또는 의미의 끈을 발견하는 순간에 도달한다. 여러 번의 감상은 더 많은 끈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부족할 때는 감상 중 쉬지 않고 생각을 거듭하는 게 열쇠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이 생각하는 거 못지않게 많이 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라는 말처럼 일단 자리에 앉아서 같은 걸 반복하다 보면 외우게 된다. 영어단어를 외울 때 첫 단어만 본다고 하더라도 그 단어만큼은 평생 잊지 않을 만큼 확실하게 기억에 남게 된다. 많은 영화를 보면 그 하나하나가 데이터베이스가 된다. 분석은 데이터에서 비롯된다. 데이터가 많을수록 빠르게 정보가 처리된다. 두뇌라는 컴퓨터를 채울수록 분석은 탄력을 얻는다.     


영화 리뷰를 쓰고 인터넷에 올리는 순간 내 글은 내 것만이 아니다. 감독이 극장에 상영한 영화를 내가 보고 평가하는 거처럼, 내 글을 누군가 평가하게 된다. 이때 몇 번 영화를 봤고,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 번 보고 썼는데 이 정도면 잘 썼다고 평가해줄 사람은 없다.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라. 그래야 빠르게 영화의 정체를 파악하고 완성도 있는 글을 쓸 수 있다.     

이전 15화 영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