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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은 선택이 아닌 필수

자, 이제 영화 리뷰를 어떻게 쓰는지 그 방법을 설명하고자 한다. 앞선 과정들이 다소 부차적이고 지루하게 느껴졌을지 모르겠지만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준비하고 하는 것과 하면서 배우는 건 차이가 크다.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면 시간을 절약하고 수고도 덜 수 있다. 글을 쓰는데 고민하는 시간보다 영화를 보고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얻길 바란다.      


지식에 있어 아마추어와 프로를 가르는 건 그 양이 아니다. 때로는 아마추어가 프로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특히 요즘처럼 지식을 구하기 쉬운 시대에는 시간이 많고 암기력이 좋은 사람이 폭 넓은 지식을 익힐 수 있다. 프로는 이 넓은 지식의 바다에서 중요한 걸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많이 아는 것보다 무엇을 알아야 하느냐를 정확히 가려내고 선택할 수 있어야 프로가 될 수 있다.     


영화 리뷰에는 최적 분량이란 게 있다. 이 최적 분량이란 온라인으로 보았을 때 가독성이 좋은 길이다. A4용지를 기준으로 했을 때 한 장 반에서 2장 정도가 최적이다. 이 분량을 넘어가면 온라인 세대의 집중력은 한계를 느낀다. 글의 재미와는 별개로 지나치게 긴 리뷰는 불필요한 내용이 많다는 생각을 준다. 반대로 리뷰가 너무 짧으면 영화의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아 원하는 정보를 얻기 힘든 경향을 보인다.     


비평은 리뷰보다는 조금 더 긴 3~5페이지를 추천한다. 비평에는 평가와 분석이 담겨야 한다. 짧으면 깊이가 없어 보이고 길면 지루해진다. 본인은 보고 쓸 이야기가 많다며 신나서 10페이지 넘게 쓰겠지만,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응집력이 부족한 산발적인 글로 느껴진다. 요약을 잘 해주는 강사가 원탑 강사로 느껴지는 거처럼 핵심을 잘 짚어주는 비평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리뷰의 분량을 맞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할 말이 많은 영화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쓸 게 너무 없는 영화도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분량을 줄이는 방법과 늘리는 방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소개팅에 나가면 상대가 별로여도 시간은 채우듯 내 눈에 별로인 영화도 분량은 채워주는 예의가 있었으면 한다.      


리뷰가 길어지는 영화는 산발적이다. 이것도 저것도 다 이야기하고 싶다 보니 글이 길어진다. 자기에게 관심이 모아지는 화제가 등장하자 주변 눈치는 보지도 않고 계속 주절거리는 복학생 선배처럼 보이는 게 많으면 이것저것 다 설명하고 싶어진다. 그 설명을 다 읽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통일성 없는 산만한 글에 뒤로가기 버튼을 누를 것이다.      


이럴 때 분량을 줄이는 방법에는 불필요한 내용을 제거하는 가지치기와 핵심적인 내용만 전달하는 압축하기가 있다. 가지치기는 부차적인 내용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상대가 이해할 만큼의 분량만 남기고 다른 부분은 제거한다. 소설처럼 흐름을 갖춘 글이 아니기에 부분을 삭제해도 글은 이어진다. 압축하기는 여러 갈래로 퍼진 분석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것이다. 한 글에는 하나의 생각만 전달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았을 때, 계층으로 대변되는 주제의식, 영화의 다양한 상징적 의미, 결말에 대한 해석 등 다양한 요소를 모두 담으려면 글이 길어진다. 가지치기는 각 파트를 최대한 짧고 핵심적으로 서술한다. 파트를 나눠서 설명하는 방식이 유용하다. 압축하기는 요소 중 하나를 고르고 나머지 요소는 글에 녹여낸다. 전체적인 맥락을 포함하는 게 좋기 때문에 주제의식을 택하는 걸 추천한다.     


리뷰가 짧아지는 영화는 단선적이다. 바라보는 시각이 한정된 단계에 머무른다. 15분짜리 단편영화를 봐도 2페이지의 글이 나올 수 있는데 최소 70분이 넘어가는 장편영화를 보고 쓸 내용이 없다는 건 이 장르와 내용을 늘릴 기술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이럴 때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감독이나 배우의 이야기로 분량을 채우는 것이다. 그들의 필모그래피 속 작품들과 이 영화를 비교하면 쉽게 분량을 늘릴 수 있다.     


그보다 좋은 방법은 다양한 시점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것이다. 리뷰어에게는 최대 A4 2장이지만, 감독은 최소 70분을 채워 넣는 게 영화다. 표현으로 제대로 나타나지 않아도 수많은 생각과 의미가 담겨 있다. 줄거리를 중심으로 서술하다 보면 영화의 이미지가 다시 떠오른다. 그러면 영화를 봤을 때 몰랐던 생각이나 감정을 떠올릴 수 있다. 머릿속에서 한 번 더 영화를 재생하면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다른 리뷰나 기사를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다양한 생각을 흡수해 자신만의 것으로 재생산하는 과정이다. 그 생각을 오롯이 받아들이기 보다는 어떻게 해석했는지 방법에 주목해 영화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려는 배움의 자세가 필요하다. 남이 푼 문제를 보고 감탄하기 보다는 그 과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눈으로 따라가라. 그러면 분량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분량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 남들의 이목을 끌고 싶다면 유명해져라. 유명해지면 짧은 한 줄 평을 기다리고, 긴 비평도 꼼꼼하게 읽어줄 팬을 얻게 된다. 하지만 아니라면 짧은 리뷰는 깊이가 없어 보이고, 긴 비평은 읽히지 않을 것이다. 분량은 내 글을 상대에게 보여주기 좋게 포장하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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