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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중 생각하기, 관람 후 정리하기

영화기자는 시사회가 끝나면 바로 기사를 쓴다. 근처 카페를 향해 커피를 입에 물고 하얀 노트북 화면에 검은 글자를 치기 시작한다. 써야할 기사 양이 많다보니 영화 한 편에 오래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이런 촉박한 시간 때문에 보도자료를 보고 거의 그대로 쓰는 기자들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런 빠른 속도는 블로그나 SNS에 영화를 올리는 리뷰어들 역시 마찬가지다. 빨리 노출이 될수록 내 글을 봐줄 확률이 높아진다. 운이 좋게도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는 시점에 첫 번째로 글이 올라간다면 조회수 폭등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영화를 볼 때 옆에 사람이 공책에 뭔가를 적는다면 그 사람은 기자나 평론가, 아니면 리뷰어일 확률이 높다. 빠른 영화 리뷰를 위해서는 관람 중 생각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준비물은 노트다. 습관이 잡히면 노트 없이 머리로 정리할 수 있지만, 노트를 준비하는 게 편하다. 영화가 시작하면 감상의 마음을 버리고 분석에 집중한다. 관람 후 다시 상기시킨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끝낸다는 생각을 하자. 학교 수업에 집중하면 학원이나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 똑같은 설명을 학교, 학원, 인터넷 강의에서 또 듣는 건 비효율적이다. 한 번 관람할 때 집중해서 보면서 계속 생각하라.     


이때 노트는 모든 내용을 정리하지 않는다. 내가 글에 쓸 내용만 적는다. 짧고 간결하게 핵심적인 문구로만 표시한다. 영화 보면서 생각하기도 바쁜데 쓰는 일에 집중하면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힘들다. 자막이 있는 작품은 놓칠 우려도 있다. 아래는 <우리집>이란 영화를 보고 정리한 내용이다.     


<우리집>     


-하나 12살, 유미 10살, 유진 7살, 찬 15살 : 나이에서 오는 시각의 차이

-섬세한 연출 : 도입부 하나 숨소리

-집 상징적 의미 : 하나 집, 유미 집, 텐트

-계란 : 병아리의 집

-공감 : 이사 문제, <우리들> 언급

-‘우리’ 키워드 강조     


이 작품은 윤가은 감독의 전작 <우리들>과 비교되는 지점이 많았다. 어린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과 섬세한 감정을 다뤘다는 점이 그랬다. 전작이 유명하거나 커리어가 뚜렷한 감독은 사전조사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할지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품고 있으면 영화를 볼 때 빨리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일종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것이다.     


<우리들>이 두 소녀의 우정과 갈등을 섬세하게 다룬 거처럼 이 작품도 아이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이는 아이들의 나이가 다르다. 전작이 인기를 끈 감독은 영화를 비교하는 글이 인기를 끈다. 전작에 반한 팬들이 차기작에 관심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나이가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고, 나이에 따라 각자가 당면한 문제와 이를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나이를 적어둔 건 이 정보가 없을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인터넷에는 영화의 모든 정보가 올라와 있지 않다. 시사회의 경우 다시 영화를 볼려면 개봉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때문에 사소하지만 꼭 적고 싶은 정보는 메모하는 게 좋다. 명대사나 장면과 깊게 연관된 노래 등을 적는 것도 필수다. 인간의 기억력은 생각보다 약해서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전체적인 줄거리를 제외하고 세세한 부분은 대부분 잊어버린다.     


섬세한 연출이란 키워드는 도입부 장면에서 느껴졌다. 하나의 숨소리를 통해 집안에서 벌어지는 부모의 다툼에서 아이가 느끼는 초조함을 밀도 있게 담아냈다. 이렇게 하나의 키워드를 잡으면 비슷한 키워드로 묶을 수 있는 장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가 선행상을 받는 장면이나 도서관에서 고르려는 책의 제목이 가족 갈등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이런 섬세한 연출의 연장선이자 키워드의 예시다. 선행상은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하나의 착한 심성을, 책의 제목은 가족 문제가 하나의 가장 큰 고민임을 나타낸다.     


제목이 ‘우리집’이라는 점에서 집과 관련된 상징적 의미가 있을 것이란 유추가 가능하다. 집을 키워드로 둔 순간 시선은 집에 집중된다. 가족 간의 다툼이 존재하는 하나의 집, 행복이 느껴지지만 곧 이사를 앞둔 불완전한 유미의 집, 세 소녀가 처음으로 안정과 행복을 느끼는 공간인 텐트는 집이란 공통점과 함께 비교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 요리를 좋아하는 하나의 모습에서 자주 등장하는 계란 역시 병아리의 집이라는 점에서 위에 언급한 세 집과 엮을 수 있는 코드로 작용한다. 계란이 깨지는 장면은 계란처럼 깨지기 쉬운 현대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관람할 때 계란을 따로 분리해 둔 건 이 해석에 확신이 들지 않아서다. 확신이 드는 소재는 합치는 게 좋지만, 애매한 소재는 분리시켜 다시 생각하는 게 좋다.     


공감은 영화가 주는 감정적인 키워드다. 윤가은 감독은 전작 <우리들>에서 두 소녀의 우정과 다툼을 통해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우리집> 역시 가족의 불화와 이사라는 소재를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며 공감을 전해준다. 전작과 비슷한 감정을 준다는 점에서 <우리들>에 대한 언급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관람을 끝낸 후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키워드로 뽑은 건 ‘우리’다. 이 키워드를 통해 감독의 정체성과 외연 확장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이런 관람 중 생각하기를 통해 뽑은 키워드를 바탕으로 관람 후 정리를 하면 글 한 편이 완성된다. 노트에 적은 키워드와 짧은 생각을 바탕으로 짜임새를 갖추면 이후 글을 쓰는 작업은 마법처럼 술술 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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