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가장 우선하는 원초적 본능은 종족보존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생식과 번식의 욕구는 필연적이다. 인간 역시 우주를 구성하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걸 감안하면 그 본능의 사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이성과 감성이라는 것을 소유하고 있기에 그것을 적절히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생명체와 다르다. 어쩌면 결혼이라는 제도도 그런 차원에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동물들처럼 힘을 가진 자가 무차별적으로 제가 원하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감정과 조건에 의해 서로 합의하에 배우자를 결정하는 것이 결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 사랑과 결혼을 빼놓을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대부분의 소설들이 사랑과 결혼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는 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19세기 초 영국의 젊은이들이 가진 연애관과 결혼관이 엘리너와 메리앤이라는 두 자매를 통해 아주 상세하고도 세밀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당시의 풍습과 관습에 대해서도 자세히 묘사한다. 덕분에 독자들은 인간성과 도덕적 측면에서 그것들을 현시대와 비교해가며 바람직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의 처음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을 딴 ‘엘리너와 메리앤’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그들의 애정관은 대립적이고,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큰 줄기 역시 그것을 주축으로 한다. 현재의 제목인 ‘이성과 감성’은 그들을 대변하는 대표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엘리너를 이성으로 메리앤을 감성으로 지칭했을 것이다. 그들의 주변 인물들 또한 큰 틀에서 보면 그 두 가지 성향으로 구분할 수가 있다. 그렇게 볼 때 작가는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태도가 그 두 가지로 대별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엘리너와 메리앤의 사랑이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갈등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엘리너의 사랑은 에드워드를 중심으로 갈등이 펼쳐진다. 반면 메리앤은 자신을 중심으로 갈등이 벌어진다. 이러한 플롯은 두 사람의 애정관을 이성적 사랑과 감성적 사랑으로 구분 지으려는 작가의 치밀한 계산 하에서 짜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보다는 타인의 입장을 우선 고려하는 엘리너가 사랑의 상대를 적극적으로 선택하기보다 수동적으로 상대에게 선택당하는 형태를 띠는 것도, 자신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삼는 메리앤이 적극적으로 사랑의 상대를 직접 선택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도 이런 의도 하에 설정된 것이 틀림없다.
엘리너는 이성적 인간의 표본이다. 그녀는 에드워드를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까지 곁들여가며 사랑한다. 앞뒤 재지 않고 급작스럽게 확 불타오르는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상대의 조건과 환경까지 감안하며 그 모든 것을 사랑하려 애쓴다는 말이다. 루시가 에드워드와 약혼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두 사람을 이해하려 드는 것도, 메리앤이 실연을 당했을 때 자신의 실연사실을 숨겨가면서까지 동생의 아픔을 줄이려 노력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성격적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매칭이 된다.
엘리너의 상대인 에드워드 역시 이성적 성향의 소유자라고 말할 수 있다. 크게 욕심 부리지 않은 채 성직자로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성품은 그 배경으로 아주 잘 어울린다. 또 루시보다 엘리너를 더 사랑하면서도 이미 루시와 이루어진 약혼 때문에 엘리너를 향한 감정을 애써 자제하는 모습은 그걸 설명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루시가 로버트와 결혼한 후에야 그가 엘리너에게로 돌아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좋은 예다.
그런가 하면 루시는 이성보다는 감성에 치우친 면이 있어 보이는 지극히 속물적인 존재다. 에드워드와의 사랑도 순수한 감정에서라기보다는 다분히 상속재산을 노린 신분상승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남자를 지키기 위해 우정을 베푸는 엘리너에게 다소 악의적인 방법을 사용해 상처를 입히기까지 한다. 결국 에드워드가 집에서 쫓겨나 한 푼의 상속도 받지 못하자 그녀는 그를 버리고 재산을 상속받은 그의 동생 로버트와 결혼하는 파렴치를 벌인다. 사실 이 두 사람의 결혼은 독자들로 하여금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면이 없지 않다. 극적 반전의 효과를 노린 것이겠지만 누가 봐도 둘의 결합은 상당히 어색할 뿐 아니라 작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페라스 부인이 아들인 에드워드를 무일푼으로 내쫓은 건 천한 신분의 루시와 결혼을 고집한 이유에서였다. 그런 마당에 루시가 에드워드의 동생인 로버트와 무난하게 결혼할 수 있었던 점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것도 로버트가 모든 재산을 상속받은 상태에서.
메리앤의 사랑의 대상은 윌러비와 브랜던 대령이다. 이중 윌러비는 감성적 성향의 소유자다. 그는 첫눈에 사랑에 빠져드는 타입이며 사랑을 쾌락의 도구로 이용하기도 한다. 자연히 그는 사랑의 대상을 아주 쉽게 선택한다. 윌리엄스와는 단지 즐기기 위해서, 그레이와는 돈 때문에 사랑을 나눈다. 메리앤에 대해서는 이들과 달리 일정부분 사랑의 순수성이 엿보이지만 스스로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로 격렬하면서도 급하게 사랑의 감정으로 빠져든다.
이에 반해 브랜던 대령은 아주 이성적이다. 일라이자를 향한 사랑만 봐도 그런 점은 확연하다. 어쩔 수 없이 형수가 되었을 때도 그 상황을 냉철하게 받아들이고 그녀의 딸인 윌리엄스를 책임지는 것으로 사랑의 숭고함을 실현시킨다. 윌리엄스를 망친 윌러비와는 결투를 벌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또한 메리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연적에 대한 적대감에서 벌인 행동이 아니라 한 여성을 농락한 윌러비의 불의에 대한 징치에서 행한 행동이었다. 메리앤에 대한 사랑 역시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상대를 배려하며 끝까지 기다리는 모습을 보인다.
메리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감성적 사랑의 주인공이다. 무엇보다 윌러비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거기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없게 만든다. 하지만 브랜던 대령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물론 엘리너가 끼친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녀의 사랑은 감성의 영역에서 이성의 영역으로 넘어들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런 메리앤의 모습을 통해 작가가 사랑의 본질을 감성보다는 이성이 지배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인 이성과 감성은 ‘이성’과 ‘감성’이라는 낱말이 ‘과’라는 병렬형 접속조사에 의해 연결되어있지만 이 둘은 동등한 지위를 가진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다. 여기서 이성은 감성을 자제하고 절제할 줄 아는 힘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즉 감성의 상위개념이 이성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성적 사랑이라 함은 감성적 사랑에 관습과 도리, 조건들을 죄다 고려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고른다면 메리앤과 브랜던 대령의 사랑이 바로 그런 것이다.
문득 젊은 시절 농담 삼아 친구들과 이런 말을 나누었던 일이 생각난다. 연애는 이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다. 이 책을 읽고 나자 그 말은 이렇게 바뀌어 다가왔다. 연애는 감성이고 결혼은 이성이다. 내뱉고 보니 한마디 독후감으로 아주 적절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