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제임스는 나에게 ‘나사의 회전’ 이라는 소설로 처음 다가왔다. 그의 첫인상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나의 관심사와는 동떨어진 유령이야기를 다룬 것도 그렇고 전반적인 스토리의 얼개가 모호한 점도 그랬다. 이 책을 읽겠다고 결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망설인 건 그에 대한 이런 반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문학이란 취미생활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배움이라는 의미 또한 제공한다. 두 가지 중 어디에 목적이 있느냐에 따라 독서의 자세는 달라진다. 읽을 책을 선택하는 기준도 달라진다. 적어도 책을 통해 배우겠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선호하는 주제의 책만을 골라 읽을 수는 없다. 또 작가들마다 작품을 발표한 시기에 따라 그 유형은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난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지우려 애를 썼다. 책을 소개하는 글은 나의 노력에 힘을 보태주었다. 미국과 유럽의 신구문화 차이를 멜로 드라마적 줄거리로 풀어낸 소설이란다. 마침내 호기심이 팽팽하게 대립하던 반감을 제압하기에 이르렀다.
이 소설은 성공한 미국사업가가 프랑스로 건너가 한 여자와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전통과 관습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이러한 과정 중에 신대륙에서 새로이 꽃피워가는 미국의 문화와, 전통과 관습을 중시하는 구대륙 유럽의 문화가 대비되어 나타나며 미국인과 프랑스인의 가치관 또한 비교된다. 미국을 대표하는 사람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뉴만이다. 그는 근면성과 노력을 바탕으로 성공한 만큼 개방적이며 합리적이고 단순하면서도 이상적이다. 이에 반해 전통을 중시하는 프랑스의 귀족인 벨가드 가문의 후작부인과 어베인은 폐쇄적이며 보수적이고 복잡하면서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들 간의 갈등은 뉴만이 어베인의 동생인 싱트레 부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수면 위로 부상한다.
한 차례 결혼에 실패한 적이 있는 싱트레 부인이지만 뉴만은 그것을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를 이용해 거래의 형식을 빌려서라도 싱트레 부인을 얻으려한다. 실용주의와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미국인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벨가드 집안사람들은 뉴만이 장사치라는 이유로 귀족과는 어울리지 않는 집안이라며 결혼을 반대한다. 몰락하다시피 한 귀족이면서도 겉치레만을 중시하는 그들의 불합리함을 꼬집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싱트레 부인의 첫 결혼 때조차 그들은 본인의 의사를 깡그리 무시한 채 집안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지참금을 원하지 않는 가문과 다분히 정략적인 결혼을 시키기도 했다. 이 또한 화려함의 이면에는 음모와 술수가 도사리기 마련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벨가드 가문 전체가 뉴만을 적대시한 것은 아니었다. 평소 싱트레 부인을 가엾이 여기던 어베인의 동생 발렌틴과 집안 하녀 브레드 부인은 싱트레 부인의 사랑이 결실을 이룰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을 자처한다. 벨가드 가문의 음습한 비밀인 벨가드 후작의 죽음과 관련한 비밀을 뉴만에게 알려 그것을 협상의 무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전통과 관습을 중요시하는 것이 당시 프랑스의 전반적인 흐름이지만 늘 그렇듯 그런 구태와 불합리에 맞서 저항하는 세력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인간사회가 끊임없이 진보를 거듭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아쉽지만 이들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간다. 발렌틴은 이해할 수 없는 결투로 인해 무모하게 목숨을 잃고 싱트레 부인은 수도원으로 떠나 세상과 결별한다. 이런 일련의 사태가 던져주는 교훈은 실로 크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주제요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참다운 의미일는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든 전통과 관습에 저항하는 개혁이라는 과업은 어려울 수밖에 없으며, 부도덕한 방법으로는 가문의 전통과 위신을 절대 지킬 수 없다는 뜻.
스토리의 전체적인 줄거리와 별 상관없이 조연 역할을 떠맡은 듯한 노에미 니오슈 부녀에 관한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노에미 부녀는 몰락한 프랑스의 부르주아 집단을 상징한다. 노에미는 루브르에서 모작을 일삼는 화가지만 뉴만을 상대로 사기에 가까운 행각을 벌이고 나중에는 벨가드 집안의 일원인 발렌틴과 묘한 관계를 유지하는가 하면 그의 사촌인 디프미어 경을 유혹하기까지 한다. 반면 아버지 니오슈는 그런 딸을 보면서도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기만 한다. 부르주아가 몰락하면 염치나 체면보다 먹고 살기에 급급하게 된다는 의미이자 프랑스에서는 더 이상 현재의 난국을 타개할 새로운 동력을 찾을 수 없다는 의미기가 아닐 수 없다. 뉴만이 노에미를 처음 만나는 장소인 루브르 박물관에 대해서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루브르는 구시대 문화가 축적된 장소다. 거기서 뉴만과 노에미 사이의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건 문화적 예술품이라는 것도 그저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는 구매와 투자의 대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점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
뉴만은 자신의 손에 들어온 벨가드 후작의 죽음에 연관된 비밀을 폭로할 수 있는 문서를 끝내 불살라버린다. 이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경제적 성공을 위해 살아온 뉴만이지만 결코 부에만 매몰된 사람이 아니라 도덕성을 겸비한 인간이었음을 알려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은근히 미국사람들의 자긍심을 일깨우려 하는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름 재미있게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덕분에 헨리 제임스에 대한 나의 인식이 조금 바뀌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앞으로 헨리 제임스와 만날 때는 이 책을 처음 대할 때와 달리 호기심과 애정을 가득 담아 보다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으리라 자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