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훌륭한 작가라도 작품마다 매번 모든 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점을 보여주기란 힘들다. 그건 아마도 인간의 삶 자체가 백년이 채 안 되어 경험할 수 있는 폭이 그리 넓지 않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자신이 살아온 특정한 사회의 범주 안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토마스 하디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은 읽는 내내 그의 다른 소설인 ‘테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주드의 불행한 삶에는 테스의 불행이 그대로 녹아있다. 게다가 그 불행의 근원 또한 사회의 인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유사하다. 또 주인공들이 사회적 약자인 것도, 그러면서 모순된 신분제도와 결혼제도에 끊임없이 저항을 하는 것도 비슷한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소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 작가의 작품을 여럿 접하다보면 나름대로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사실 나의 독서습관은 좀 특이하다.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읽게 되면 그 다음부터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자동적으로 내 독서목록에 읽어야할 책으로 기록되어 저장된다. 그러니 한 작가의 작품들이 가지는 약간의 유사성은 나에게 있어 오히려 책을 선택하는 시간을 절약해주는 좋은 점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주드라는 사회적 약자의 삶을 통해 당 시대의 관습이나 제도의 불합리를 고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인공 주드는 부모도 없이 불행한 환경에서 자라지만 그걸 극복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의 노력은 번번이 좌절된다. 자신의 꿈을 성취하지도 못하고 행복한 결혼생활도 영위하지 못하며 심지어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말 그대로 실패한 인생과 실망스런 삶 그 자체다. 그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것은 바로 사회의 체제와 인습이다.
그의 꿈은 학자가 되어 주교로 활동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 꿈을 이루고자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크라이스트민스터로 떠날 결심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크라이스트민스터는 단순히 교육의 도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성과 학문의 중심으로서 주드가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을 상징한다. 크라이스트민스터를 향한 주드의 여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곳곳에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은 크라이스트민스터로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에 봉착한다. 아라벨라라는 여인의 유혹에 빠지면서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아라벨라의 용의주도한 꾐수와 주드의 쾌락추구 욕망이 큰 역할을 한다. 물론 그것이 두 사람의 사악함이나 도덕적 타락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저 인간의 본능에서 발현되는 보편적인 육체적 욕구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럼에도 진정한 사랑에서 출발하지 못한 그들의 결합은 결국 파경을 맞이한다.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이런 파국에서 우리는 아라벨라라는 인물이 의미하는 바가 인간이 살아가면서 접하는 현실적인 난관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결혼에 실패한 주드는 나름 의지를 불태우며 학업의 성취를 통해 고난을 돌파하려한다. 이때 두 번째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크라이스트민스터 바로 그 도시다. 배움에 대한 열정만 있으면 그곳에서는 누구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드의 믿음은 큰 착각으로 밝혀진다. 도시는 물신숭배와 귀신들이 가득한 곳으로서 돈과 일정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진 곳이었다. 주드는 이곳에서 자신의 현실적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실망과 좌절을 실감한다. 신분제도라는 견고한 벽이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아울러 뼈저린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드가 이런 난관을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작가의 의도가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를 비판하는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드의 불행은 사랑에서도 이어진다. 사랑의 장애물 역할은 사촌동생인 수가 담당한다. 주드는 수를 진정으로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 수 역시 주드를 사랑하지만 결혼을 계속 망설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두 사람 모두 첫 번째 결혼이 실패했다는 점, 그리고 자신들의 선조 모두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들이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사랑의 자유가 허용될 때와는 달리 결혼이라는 제도에 흡수되는 순간 사랑이 식어버릴 것이라는 두려움마저 가지고 있는 수였다. 그만큼 결혼이라는 형식이 그녀에게는 강압과 구속이라는 부담을 주는 제도였던 것이다. 작가의 비판적 시각은 여기서도 어김없이 표출된다. 사실혼을 인정하지 않고 형식에만 얽매이는 결혼제도와 사실혼을 불륜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시선으로 두 사람의 사랑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애정관을 살펴보는 것도 당시의 결혼제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은 네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주드와 아라벨라 부부, 필롯슨과 수 부부가 그들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들 사이에 서로 얽히지만 네 사람은 모두 제각기 조금씩 다른 애정관을 소유하고 있다.
먼저 아라벨라는 순간순간 끓어오르는 감정에 의존하는 사람이다. 닥치는 대로 느낌이 가는 대로 사람을 사랑하고 때로는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기도 한다.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지는 스타일이다.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본능적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런 아라벨라와 완전히 대조되는 사람은 필롯슨이다. 그는 합리적인 이성에 의존한다. 수를 사랑하여 결혼까지 하지만 수가 주드에게 가겠다며 이혼을 요구할 때도 그것을 받아들인다. 심지어 주드를 떠나 자신에게 다시 돌아올 때도 모든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취할 수 없는 태도로 나는 이것을 이성적 사랑이라 표현하고자 한다. 아마도 작가는 현재의 결혼제도를 타파하는 인물로 필롯슨을 내세운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 주드는 감정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엄격한 제도가 지배하고 있던 시대라 해도 그는 그것을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앞세우지 않는다. 그렇다고 제도를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는다. 필요하다면 또 할 수 있다면 치러야하는 관례로 여기면서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결코 양보하지는 않는다. 가장 보편적인 인간이 가지는 애정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건 감정적 사랑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수는 다소 복잡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결코 제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결혼이라는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동거를 함으로서 받는 주변사람들의 눈총을 따가워하면서도 형식에 구속되는 순간 사랑의 자유가 사라질 거라는 불안감을 가진다. 이는 인간의 본능과는 달리 본성에 기반을 둔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억지스런 면이 없진 않지만 본성적 사랑이라 표현하려한다.
어쨌거나 작가는 이들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거스르는 사회제도의 문제를 공론화하려 했던 게 틀림없다. 주드의 세 아이가 죽음을 면치 못하고 수가 임신한 아이마저 사산되는 것으로 결말이 나는 것도 문제의 심각성을 보다 확대시키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수가 필롯슨에게 돌아가고 아라벨라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건 현재의 제도를 타파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주드가 사랑도 꿈도 실현시키지 못한 채 이른 나이에 불행한 삶을 마감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굴복이라기보다 체제와 인습에 대한 항거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런가 하면 모든 면에서 자유가 허용된 지금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소설을 통해 또 한 번 대리만족을 만끽한 셈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