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전쟁에 참여한 화자인 나, 찰스라이더가 군사용으로 징발된 한 저택에서 과거를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즉 전형적인 액자소설이다. 회상의 배경에는 젊은 시절 맺었던 그와 저택과의 관계가 자리한다. 저택은 대학시절 절친한 친구였던 서배스천의 집이었으며 그는 당시 그들 가족과 한 식구처럼 지내던 사이였다.
서사는 1인칭시점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시점을 유지하지는 않는다. 초반부가 1인칭 관찰자시점이라면 종반부로 치달으면서는 1인칭 주인공시점에 가깝게 변해간다. 서사의 중심이 어디에 위치하느냐를 두고 보면 그건 확실하다. 전반부에는 분명 서배스천의 삶이 중심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화자와 줄리아의 사랑, 그리고 화자와 브라이즈 저택사람들의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부제도 좀 독특하다. 찰스라이더 중대장의 성스럽고도 불경스러운 기억. 여기서 작가는 종교적 의미가 함축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주제가 종교문제와 얽혀있음을 어렴풋이 드러낸다. 또 자신의 기억을 두 개의 반의어를 동원해 묘사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나 역시 책 표지를 접하자마자 그런 의문을 가졌다. 대체 무엇이 성스러운 기억이며 무엇이 불경스러운 기억일까? 당연히 그건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해소된다. 내가 찾은 해답은 이것이다. 성스러운 기억은 무신론자였던 자신이 신앙인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불경스러운 기억은 방탕하게 살아왔던 대학시절과 종교를 한낱 미신 같은 것으로 치부하며 오만함을 잃지 않았던 시절의 삶이라는 것.
소설의 소재는 대학시절과 종교, 그리고 전쟁 세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이들은 각각 제가 등장할 위치를 잘 지킨다. 한 친구와 연관된 대학시절의 꿈과 자유분방함,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초반부에 집중적으로 다루어지는 반면 종교가 삶에 미치는 영향이라든가 종교적 삶과 현실적 삶의 차이 같은 내용은 전 부분에 골고루 드러난다. 그런가 하면 전쟁에 관한 언급은 양념처럼 중간 중간에 드문드문 이루어진다. 이러한 배분은 적절히 합종연횡의 효과를 발휘하며 주제를 모호함 없이 확실하게 부각시킨다.
대학시절은 친구 서배스천의 불행한 삶을 조명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로도 활용된다. 모든 면에서 밝고 활발했던 서배스천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어둡고 우울한 사람으로 변해간다. 그 계기는 젊은 날의 치기를 감안하면 별 것 아닌 것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음주운전이다. 독실한 가톨릭집안이었던 그의 가정에서 어머니 레이디 마치멘은 그런 사건에 휘말린 서배스천에게 끊임없이 간섭과 감시의 눈길을 보낸다. 자유로운 생활을 추구하던 서배스천은 종교적 억압과 가족들로부터의 구속감을 견디지 못해 탈출을 시도한다. 나, 찰스는 도움을 주려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레이디 마치멘에 가로막혀 실패할 뿐 아니라 오히려 양쪽 모두로부터 오해만 사게 된다. 결국 서배스천은 알코올 중독에 빠져들고 학교와 가족, 친구들로부터 도피해 아프리카 오지를 전전하는 불행을 감수하며 무너져간다. 이런 일련의 스토리 속에는 종교적 교리나 선악의 기준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타인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말라는 교훈이 숨어있다. 사랑과 관심도 지나치면 억압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브라이즈헤드 가(家)는 저택 내에 채플을 지을 정도로 독실하게 신앙생활을 행하는 집안이지만 그 구성원들의 결혼생활을 살펴보면 종교적 교리와는 상당히 이질적인 요소들이 발견된다. 마치멘 후작과 레이디 마치멘의 부부관계는 행복과 전혀 거리가 멀다. 후작은 아내와 별거를 고집하며 해외에 체류할 뿐 아니라 정부인 카라와 동거생활을 유지한다. 레이디 마치멘 역시 종교적 신념과 관계없이 이걸 다분히 인정하는 모양새를 띤다. 렉스와 줄리아의 관계는 더욱 가관이다. 렉스는 줄리아와 결혼 전 이미 결혼 경력이 있는 상태였다. 비록 이혼을 했다고는 하지만 교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이상 그건 중혼금지라는 가톨릭 교리에 엄연히 위배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편법을 동원해 결혼식을 거행하고 줄리아 또한 애정에 눈이 멀어 그것을 받아들인다. 이후 줄리아는 찰스와 결혼하려는 욕심으로 렉스와 이혼하며 또 한 번 교리를 유린하다시피 한다. 브라이디와 베릴의 결합 또한 결코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베릴은 이미 아이를 셋이나 낳은 미망인이었다. 물론 남편이 없으니 혼배 교리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한들 상처한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사람의 결혼에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표리부동한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현실의 삶과 종교생활 사이에 괴리감이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신과의 약속인 신앙조차 인간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춰 합리화를 일삼는 것이다.
신의 존재랄까 믿음의 힘이랄까, 뭐 그런 종교적 신비도 소설은 다룬다. 마치멘 후작과 서배스천, 줄리아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믿음이 옅거나 믿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궁극적으로는 종교에 귀의하게 된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후작에게서 일어난다. 그는 줄곧 종교를 부정해왔을 뿐 아니라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종부성사를 거부하며 신부를 내쫓기까지 한다. 그러나 임종의 순간에는 모든 죄를 회개한다는 의미로 힘겹게 성호를 긋는다. 줄리아의 변화도 만만치 않다.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그녀의 삶은 종교적 교리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임종 직전, 카라나 찰스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더 키울 수 있다며 종부성사를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며 신부를 아버지가 있는 방으로 데려간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 변화다. 성호를 긋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찰스와의 결혼을 포기하는 것도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교리에 어긋나는 삶을 더 이상은 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서배스천에게도 변화가 일어난다. 자세하게 묘사되지는 않지만 아프리카에서 수도회를 찾아가 그곳에서 편안한 생활을 영위한다는 코딜리아의 말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무신론자였던 ‘나’의 변화도 감지된다. 종부성사를 적극적으로 반대했지만 임종직전 후작의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이 그걸 증명한다. 또 후작이 죽은 후, 자신과 결혼할 수 없다고 말하는 줄리아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이런 상황들을 빗대어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앞에 인간은 나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찰스는 이런 생각을 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아름답기만 하던 브라이즈헤드, 젊은 날과 사랑의 추억이 가득한 그 저택이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면서 피폐해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는 혼잣말이기도 하다. 이는 인생이 한낱 덧없다는 것을 한탄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전쟁이 모든 것을 파괴시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 역시 서배스천이나 찰스라이더처럼 아름답고 화려한 대학시절을 보냈다. 이 책은 그때를 돌이켜보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 안타까울 정도로 그리워지는 경험도 했다. 그러다보니 내 입에서도 저절로 이런 말이 새어나온다. 아름다웠던 세월이여, 이제는 안녕. 그러나 그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처럼 미래의 나를 위해서 오늘 역시 열심히 살아야할 것이다.